캣퍼슨
크리스틴 루페니언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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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왜 샀을까? 표지가 야해서 산 건 분명히 아니다. 추리할 수 있는 건, ① 출판사 ‘비채’에서 나온 괜찮은 책을 몇 권 읽고,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특색있는 책을 내는 회사라고 생각했던 점, ② 어떻게 이 책까지 서핑했더니 마침 독자 리뷰가 괜찮았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③ 알라딘의 쿠폰을 사용하기 위해 헌책 한 권은 사야 했던 점이 딱 맞아 떨어졌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 씨보다는 나이가 약간 적을 거 같은 작가 크리스틴 루페니언은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자신의 대표작 <캣퍼슨>이 어떻게 스타덤에 올랐는지 자기 자랑을 약간 하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담 비슷하게 말을 이어간다. 2017년 12월에 <뉴요커>에 발표하고 트위터에서 입소문이 나는 바람에 수백만 명이 읽고, 토론하고 하여튼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며, 작가의 친구 가운데 한 명이 일본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일본인들도 기차 안에서 <캣퍼슨>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는 얘기까지 적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이 책에서 보게 될 몇몇 작품은 21세기의 데이트에 관한 사실주의적인 묘사를 담고 있”단다. 그리고 나는 이어지는 문장들을, 서문을 읽을 당시, 너무나도 가볍게 읽고 지나갔다. “당신에게 익숙하게 읽힐 작품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뭔가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것―더러는 느낌일 수도 있고, 이미지나 농담, 단 한 줄의 대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을 발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스틴이 마음을 담아 쓴 서문을, 책을 읽은 후에 다시 훑어보니, “뭔가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 자신의 작품 속엔 독자는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하나 이상의 진실이 담겨(숨겨) 있다는 말로 읽혔으며, 결과적으로 나는 보물찾기에 성공하지 못한 서툰 독자였는데, 이 순간 정이현이라는 우리 소설가를 머리에 떠올렸으니, 왜 그런고 하면, 그의 장편 <너는 모른다>의 발문에서 “진심을 다해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게 다다.”고 심지어 책의 띠지에까지 써놓은 적이 있고, 그걸 읽은 나는 독후감에 이렇게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진심을 다해 쓰지 않는 작가가 있어? 세 명만 꼽아보시라. 누가 있나.” 마찬가지로 크리스틴 루페니안의 한국어판 서문에 대하여도 이렇게 묻고 싶다.
  “자기 작품 속에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있다면 두 명만 대보시라. 누가 있나.”

 

  물론 표제작인 <캣퍼슨> 하나만 읽었을 때는 공감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재밌고, 웃기기도 했다. 깔끔하게 미소 지으며 끝을 볼 수는 없었어도.
  아, 의문 하나.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은 <Cat Person>이건만 우리말 제목은 왜 <캣 퍼슨> 대신 <캣퍼슨>으로 했을까? 별 것 가지고 지랄한다 생각하지 마시고, ‘cat person’은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키우는 사람”이라고 책 소개에 쓰여 있는데, 우리말 ‘캣퍼슨’은 배트맨과 함께 복면 쓰고 고담의 밤을 지배하는 캣우먼의 서방 같잖아? (우먼woman, 퍼슨person으로 젠더를 구분한 건 악의적 고의가 아니다.)
  이 단편은 서른네 살 먹은 백인 인텔리겐치아처럼 보이는 뚱보 남자와 스무 살 먹은 대학생 사이에서 발생한 끌림과 발전, 사랑으로 오해하고, 젊은 여성 마고가 자신의 의지로, 고이 숙소까지 모셔다드리겠다는 친절 대신 그와 성적 접촉을 유도해, 이 과정에서 남자한테 정나미가 떨어져 이별하기까지, 짧은 연애와 사랑과 잠자리와 이별 얘기다. 무척 솔직한.
  먼저 스무 살 대학생 마고의 성적 특이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로버트가 일곱 번째 잠자리 파트너로 등록될 예정이니, 하이틴 시절에 섹스란 것이 어떤 건지 궁금해 했고, 급기야 그것을 경험해보기로 작정을 한다. 상대방은 2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 남친과 몇 달에 걸친 깊은 토론을 하고, 산부인과를 방문해 전문의의 상담과 조언을 거친 후, 엄마, 친엄마 맞다, 엄마와 겁날 만큼 어색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의미 있는 대화를 거쳐, 엄마가 조식을 포함해 깔끔한 숙소를 예약해주고, 급기야 드디어 딱지를 뗀 아침엔 호텔 프론트에 엄마가 보낸 “내 딸, 딱지 뗀 거 축하해!” 기념 카드까지 받았다는 거 아니냐. 정작 마고는 쓰라려 죽겠는데 말이야.
  이런 마고가 로버트 소유의 생각 이상으로 깨끗한 집으로 가서, 자발적으로 로버트의 깔끔한 침대에 오르며 스스로 판타지의 황홀경에 빠진다. 이 아름다운 여자를 봐, 완벽해, 몸매도, 모든 것이, 겨우 스무 살이야, 피부에 흠 하나 없어, 로버트가 자신을 이렇게 보고 있을 거라고 상상해가며. 그런데 여기에 로버트가 찬물을 한 바가지 뿌려버린다.
  “전에 해본 적 있어?”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갈릴 것이다.
  ① 서른네 살의 남자는 스무 살의 마고가 혹시 아직 경험이 없다면 더욱 조심해서, 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섹스가 좋기는커녕 쓰라리기만 한 경험을 하지 않게 배려를 하려 물었다. 그래 처음부터 조심스레 터치하지 않았느냐.
  ② 웃기지 마라. 로버트는 그냥 썅노무새끼다. 해봤다는 얘길 듣자마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온갖 집을 다 하지 않느냐.
  이건 전적으로 독자 마음이다. 어떻게 해석하든지. 하여튼, 마고는 침대 위에 앉아 있고, 로버트가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내려 벗다가, 아직 풀리지 않은 신발끈을 풀기 위해 몸을 굽히는 순간, 털에 가려진 물렁하고 불룩한 배가 아래로 축 늘어뜨려지는 게 눈에 들어온다. 이 상황이 도래하자, 마고는 속으로, 싫다, 싫어!를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나 먼저 얌전하게 에스코트해서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로버트의 발동을 건 건 마고 자신이라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선반 위에 있던 위스키를 꿀꺽 한 모금 삼켜버린다. 딱 그림이 그려지시지?
  이후 한심한 베드씬이 벌어지고, 새벽 세시에 마고가 주장해서 로버트가 기숙사까지 차를 태워 데려다주고, 한 번의 관계로 정이 뚝 떨어진 마고가 로버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이야기.

 

  이거 한 작품이라면 크게 공감하지는 않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다른 단편들은,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 얘기했다시피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괴기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제 막 습작 시대를 벗어난 좀 덜 익은 단편들을 읽는 듯하기도 했다. 아, 이런 느낌이 물론 <캣퍼슨>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작품에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왜 우리 작가들 대신 번역한 외국 문학을 읽느냐 하는 걸 말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 작가들이 쓴 우리 문학은 아직 검증이 안 된 것들이 많다. 즉, 분명히 문학의 보석들이 있겠지만 많고 많은 원석 속에서 그것들을 찾는 데는 이제 내가 책을 읽을 시간과 돈이 별로 많지 않다. 반면에 번역서는 대체적으로 시간의 검증을 받았거나, 신간이라고 하더라도 출판사 편집자의 필터를 통해 수준 이상의 작품이라서 한국어판이 나왔을 확률이 높다고 믿어서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내 기대에서 벗어났다. 여기서 말하는 나의 ‘기대’는 나의 ‘기호’와 상당히 유사한 단어이니, 《캣퍼슨》을 재미있게 공감하면서 읽으신 분께선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 참 오랫만에 내돈내산을 다 읽지도 않고 덮어버렸다. 부언하건데, 작품의 품질을 별개로 하고, 나와 이 책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서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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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21 09: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 책 처음 나왔을 땐 궁금함에 보관함에 담아두었는데, 그 이후로 궁금함이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살포시 보관함에서도 뺐는데, 이 포스팅 보니 후회는 없을 거 같습니다.

Falstaff 2021-06-21 09:38   좋아요 5 | URL
ㅋㅋㅋ 이런 댓글 읽고 다음과 같이 답글 쓰는 것이 이렇게 뜻깊을 줄은 몰랐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1-06-21 10:08   좋아요 3 | URL
저는 이 책이 안궁금했는데 폴스타프 님 리뷰보고 앞으로도 관심을 안갖는 걸로 하겠습니다. ㅎㅎ

Falstaff 2021-06-21 10:1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뭐라 드릴 말씀이 읎네요. ㅋㅋㅋㅋ

새파랑 2021-06-21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돈내산을 중간에 덮는건 정말 천재지변이 아니면 쉽지 않을턴데 ㅜㅜ 역시 표지에 낚이면 안되겠군요 ㅎㅎ

Falstaff 2021-06-21 09:4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글쎄 표지에 낚은 건 절대 아니라니까요!

잠자냥 2021-06-21 09:54   좋아요 1 | URL
저도 사실 폴스타프 님이 표지 때문에 샀다고 생각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6-21 10:04   좋아요 1 | URL
택배 풀고 표지를 보는 순간, 비슷한 말씀들을 틀림없이 허실 거란 직감이.....ㅋㅋ

coolcat329 2021-06-21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이 이 책을 올리셔서 조금 의외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게 청소년의 성을 그린 청소년 소설이라고 제멋대로 생각, 게다가 전혀 관심이 안 간 책이었거든요. 근데 어른 책이고 단편이군요.
저는 표지에 낚이신건 아니라는 주장 믿습니다! ㅋㅋㅋ

Falstaff 2021-06-21 12:12   좋아요 2 | URL
흑흑... 고맙습니다. 쿨캣님 밖에 읎습니다. ㅠㅠ
완전히 제 생각만으로 말씀드리면, 도서관 가셔서 보여도 고르지 마세요. ;;;

얄라알라 2021-06-2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at person이란 단어는 catwoman이나 catmom 등. cat 돌봄자(?)들을 여성화시키는 표현과 좀 다르네요. 표지 보고, 저 역시 혹했습니다만 ‘내돈내산‘ 평 내려주신 Falstaff님의 조언을 따르기로 합니다^^

Falstaff 2021-06-21 13:08   좋아요 1 | URL
글쎄 제 말씀이 그거 아닙니까. 원래 제목이 cat person 인데 왜 우리말 제목을 캣(떼고)퍼슨이 아니라 그냥 ‘캣퍼슨‘으로 띄어쓰기를 안 하느냐는 거 말입죠.
ㅎㅎㅎ 좋은 선택하신 겁니다.

초란공 2021-06-21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성인이 되고 한참 후에(그렇다고 철이 든건 아니지만요) 책을 읽기시작한 경우라서 유명작가의 작품이 와닿지않으면 그냥 제가 아직 작품의 진가를 파악하기에 부족하구나 생각합니다. 어떤 작가는 소설은 마음에 드는 데, 에세이는 도무지 적응이 안되고, 또 다른 작가는 에세이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소설도 읽어보면...저의 안목이 부족함을 탓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소심한 저는 마음에 든 책에 대해서만 주로 글을 올리니 대체로 칭찬만 하게 되네요. 개인적으로 ‘사지 말아야 할 책‘ 메뉴를 만들어볼까 싶기도 하구요. ㅋㅋ 알라딘과 출판사측의 항의로 활동정지 되는건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개인적인 기호이니 어쩌겠습니까? ^^
=>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감히 ‘사지 말아야할 책‘을 정하고 강요하는듯한 것이 작절하지 않아보이고, 좀 더 소심하게 가야겠네요. ‘사지 않았으면 하는 책‘ 정도랄까요? ㅋㅋㅋ

Falstaff 2021-06-21 14:07   좋아요 5 | URL
아휴.... 마음에 드는 것만 읽기에도 시간과 돈이 부족한 게 현대인입니다.
굳이 적응이 되지도 않는 책을 붙잡고 참선, 면벽기도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시다가 나중에 사리 나옵니다. 안목이 부족한 경우는 세상에 아예 있지도 않습니다. 지깟 것들이 해봐야 시, 소설, 요즘에 바람부는 희곡 밖에 더 됩니까. 마음에 안 드시는 거 있으면, 아놔 나 이거 싫어, 하셔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진짭니다. ㅋㅋㅋㅋ

심지어 저는 이런 페이퍼, ˝지루하고 지루했던 불후의 명작 Top 10˝을 썼었는데 이달의 페이퍼로 선정돼 상금도 받았는 걸요. ㅋㅋㅋㅋㅋ https://blog.aladin.co.kr/729554277/11922276

자랑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크게 외쳐볼까요? 이거 진심입니다.
난, 괴테가 싫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6-21 14:18   좋아요 3 | URL
나도 괴테가 싫다!! (아, 쿨캣 님 지적대로 폴스타프 님하고 또 같이 다니고 있네요 ㅋㅋㅋㅋㅋㅋ)

syo 2021-06-21 14: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네..... 표지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Falstaff 2021-06-21 14:54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저 띠지를 벗기면 더 야해요!

잠자냥 2021-06-21 15:07   좋아요 3 | URL
어머나... 오늘 알라디너 여럿 오프라인 서점 출동하겠네요. 뭔가 이 띠지 벗기고 유심히 보다가 살짝 자리 뜨는 사람들 많겠구먼...(일단 저부터 출동!)

얄라알라 2021-06-22 0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댓글 읽다가 아침부터 커피뿜을 뻔했어요 ㅋ

Falstaff 2021-06-22 09:4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알라디너 수준이 대개 이 정돕니다.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5-14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걸드문트님! 저도 이 책 중반부에서 더 읽지 말까 생각하다가… <좋은 남자>는 읽어보자 싶어서 걍 다 읽었거든요. 후반부로 갈 수록 괜찮더라고요. 다 읽고 나니 작가가 가진 어떤 시선도 보이고.
리뷰 잘 읽습니다. 덜 익은 단편들이라는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Falstaff 2023-05-15 06:14   좋아요 1 | URL
앗, 뒤쪽 단편들은 괜찮군요. 에휴. 그저 참아야 하는데.... 어디 있는지 찾기도 힘들고... ㅎㅎㅎ 고맙습니다. 눈에 띄면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공쟝쟝 2023-05-15 09:33   좋아요 1 | URL
아니오~ ㅋㅋ 걸드문트님은 다른 좋은 거 읽고 더 재미난거 써두시면 나중에 제가 쫓아와서 또 다른 좋은 재밌는 리뷰 읽을게요!
방금 안 사실인데 <캣 퍼슨>의 경우도 문제가 좀 있었나 봅니다. 작가가 남의 사생활을 썼다는 군요?
작가란 무엇인가… 킁… 소설이란 무엇인가…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