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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착한 소설. 잘 읽히고, 읽는 사람에 따라 감정에 이입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심지어 눈물까지 콸콸 쏟을 수도 있으며, 간혹, 세상 산다는 게 뭔지, 한숨 한 번 토할 것 같기도 하고, 아 드런 세상 하긴 다 그렇게 살다 가는 거지 뭐, 하며 검은 비닐 봉지 하나 주머니에 구겨 넣고 GS 편의점에 소주 사러 갈 수도 있겠다. 봉지 한 장에 이십 원이래, 하면서.
1891년 미주리 주 중부의 분빌 마을 근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난 윌리엄 스토너는 여섯 살 때 암소의 젖을 짜기 시작하고(그럼 황소의 젖을 짜겠는가), 이후 차차 돼지 먹이 주는 일, 달걀 가져오는 일을 했다. 나이가 차 무려 8마일, 12.9킬로미터 떨어진 초등학교를 다니느라 만 여섯 살 때부터 왕복 25.8킬로미터를 걸어야 했으니(아 물론 크리스마스 방학, 부활절 방학과 여름방학 때는 빼고), 다른 건 몰라도 아이한테 살 붙을 시간은 없었을 거 같다. 물론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농사일에 열외를 시켜줄 수 없던 살림이라 열일곱 살이 되자 벌써 이 외동아드님은 어깨가 구부정한 체형의 비쩍 마른 사내가 됐단다. 애초에 공부를 시키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타지까지 보내 유학을 시킬 재력이 없었음에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어서,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 때 도착할 수 있는 미주리 주의 컬럼비아에 있는 미주리 대학교에 농과대학이 생겼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 스토너 씨가 심사숙고 끝에 윌리엄을 4년제 농과대학에 보내겠다는 크고 용감한 계획을 세운다.
그리하여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많은 나이인 열아홉 살에 농과대학에 입학한 빌은 2학년이 되어 필수과목인 영문학개론 시간에 영문과 학과장인 아처 슬론 교수에게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배우면서 비록 학점은 형편없지만 국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이후 그는 농과대 커리큘럼 대신 철학, 고대역사 기초 강의, 영문학 전공과목 두 개를 선택해 자연스럽게 전과轉科 과정을 밟는다. 이후 빌은 공부에 몰두하게 되고, 4학년에 올라가자 2년 전 자신에게 형편없는 학점을 부여했던 아처 슬론 교수는 그에게 영문학 석사과정을 권유한다. 그리고 곧바로 박사과정. 교수는 빌 스토너에게 말한다.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자네는 (학문과)사랑에 빠졌어.
이리하여 우리의 키 크고 거친 손을 가진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박사과정과 동시에 유급 강사를 하면서 인생의 마지막 장까지 마주리 대학 영문과에서 전임강사에 이어 종신교수라는 평생 직업을 갖게 된다.
윌리엄 스토너 교수의 연보를 다시 보자. 1891년생. 1910년 미주리 대학 입학, 1914년 6월 문학사. 1915년 봄 석사과정 종료, <캔터베리 이야기>의 작시법에 관한 논문. 1918년 박사.
반면에 세계사는 1914년 8월 1차 세계대전 발발, 1917년 4월 6일 미국의 대 독일 선전포고. 윌리엄의 평생 친구 데이비드 매스터스와 고든 핀치는 군대 입대하고 매스터스는 프랑스로 건너가 첫 전투였던 1918년 샤토 티에리에서 전사해버린다. 1918년에 죽었는데도 스토너와 평생 친구라고? 그렇다. 날 믿어라. 그는 유령이 되어서라도 스토너를 결코 떠나지 않는다. 아니, 스토너가 보내주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참전하는 대신 인적 없는 교정에서 연구와 교육을 잇는 것에 전력을 다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가 1956년에 마지막 숨을 거둔다는 것이 작품의 제일 앞 장면에 서술되어 있다. 이후 그의 태생부터 시간 순으로 스토너 교수의 평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가상 인물에 대한 전기 비슷하게 생각하면 딱 맞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작가 존 윌리엄스가 스토너 교수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렌즈를 끼고 관찰했다는 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하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숙식의 대가로 어머니의 사촌뻘인 짐 푸트의 농장에서 노동을 하며 빈 시간에야 공부를 할 수 있는 처지였으며, 처음 영문학 수업을 들으면서도 아처 슬론 교수에게 비웃음을 사고, 자신과 비교할 수 없는 대도시 세인트루이스의 작은 은행의 은행장 딸을 연모하여 사랑하는 줄 착각한 상태에서 결혼해 평생을 희생하고, 직장에서도 학자적 양심으로 적을 만들어 그 적에 의하여 평생 고초를 겪는 인물.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독자는 저절로 빌 스토너에게 전적으로 동정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여기에 작가의 유려하고 달달하면서도 쓸쓸한 문장의 힘까지 보태지면, 독자는 그야말로 흐물흐물, 무릎 뼈가 녹아난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스토너의 적이랄 수 있는 완전한 악당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착한 우리 편과 나쁜 너희 편이란 이분법을 극도로 강조하기 위해 작가 존 윌리엄스가 만든 악당들은 스토너 교수의 바로 옆에 있는 자들로 구성했다. 자기한테 배우는 학생, 동료이자 나중엔 상급자가 되는 교수,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아내. 독자는 이들로부터 나쁜 성향 말고는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지독한 악당들이라서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오직 하나, 스토너의 인생을 망치기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다.
반면에 독자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대학에 진학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농학에서 영문학과로 전과를 해, 학과장의 눈에 들어 그의 암묵적 동의를 받아 1차 세계대전 참전을 거부해서 생명을 걸지 않는 건 물론이고 그 시간에 학문을 넓혔으며, 어쨌든 결과적으로 젊은 나이에 종신교수라는 명예를 틀어쥐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도래한 블랙 먼데이, 대공황이 미국 전역을 내리덮었을 때 하늘처럼 높았던 실업률에도 궁핍함이라는 건 전혀 모르는 상태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도시 은행장 딸과 결혼하는데 성공을 해, 비록 대공황이 한창일 때 장인이 권총자살을 해버리긴 하지만 그래도 장모가 세상을 뜨기만 하면 남은 재산은, 이런 것까지 말하는 건 좀 야박하니 생략하자. 세상에 윌리엄 스토너 선생만큼 우울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나. 다 거기가 거기고, 엄앵란 말마따나 201호나 202호나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권고하노니, 그저 작가가 쓴 대로 따라가면서 읽기만 하자. 그렇게만 한다면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눈시울이 매캐해져 소금물 한 방울이 뺨을 적실 수도 있을 테니. 그러나 입은 비뚤어져도 피리는 똑바로 불겠다. <스토너>는, 내가 이 장르를 무시하는 게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건데, 이거 혹시 뽕짝 아냐? 하여튼 나는 그렇게 읽었다. 읽으면서는 무지하게 재미있어 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끝.
암만해도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책에서 스토너 교수를 곤경에 빠뜨리는, 개전의 정이 도무지 안 보이는 악당 두 명이 등장하니, 한 명은 정원이 가득 찬 스토너 교수의 대학원 세미나에 수강을 허락해달라고 부득불 졸라대 겨우 허락을 받고는 첫 수업 부터 지각을 하고, 수업태도도 좋지 않을뿐더러 공부도 하지 않는 찰스 워커. 또 한 명은 찰스 워커의 지도교수로, 그로 하여금 스토너 교수의 세미나에 등록을 하라고 권유한 동료교수 로멕스.
수강을 끝내고 면접 고사를 치루는 자리에서 스토너 교수는 찰스 워커가 수강과목인 중세와 르네상스 영어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깡통임을 밝히고, 곧 학과장이 될 로멕스가 패스를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불합격 처리를 주장한다. 로멕스와 워커에게는 공통점이 있으니 교언영색하는 재주. 로멕스는 강의교수였던 스토너의 의견이 어떻게 부당한지를 분명하게는 밝히지 않지만 기어이 워커로 하여금 내년에 다시 대학원 과정을 수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동시에, 스토너한테는 스토너가 학교를 그만 둘 때까지 갖은 악랄한 방법으로 괴롭힌다.
그러나 독자는 알고 있다. 학과장 로멕스가 찰스 워커를 편애하고 스토너에게 가장 강한 수준의 '직장내 괴롭힘'을 가하는 이유가 찰스 워커가 자신과 같은 장애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끔 극도의 공격성을 보이는데 로멕스와 찰스 워커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는 것도.
물론 책은 1960년대에 처음 출판했다. 그땐 미국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편견은 사라져야 한다. 젠더, 피부색, 성의 선택, 빈부, 종교, 그리고 장애여부 등등. 1960년대 당시엔 어땠는지는 다음으로 치자. 그러나 이 책을 읽는 21세기에, 비록 작품의 메인 스트림은 자신의 감성과 취향에 맞았을지라도, 독자 가운데 몇 명은 스토너가 은근하게 '병ㅇ ㅇ갑하는' 장면을 연출한 것은 지적하고 넘어가야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