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연습장 찾을라고 뒤적이다가 예전에 공모전 할 때 그린 것 발견. 그려놓은게 귀여워서 올려본다. 


 십만원 밖에 못따서 아쉽기는 하지만 재미있었지. 이미지도 잘 나왔었고 디테일도 많이 고민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먼지 투성이인 공사장에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사가림막을 만든다는게 근본적인 단점이긴 했지만. 차라리 반투명성을 강조하는게 나았을지도. 

 공모전 손놓은지도 꽤 되었는데, 요새 뭔가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근질근질함. 
참고로 최종 이미지는 다음과 같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irbag 2012-11-07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스케치 좋다. 역시 그림 잘그리는구만 ㅎ

일개미 2012-11-07 13:43   좋아요 0 | URL
사람이 귀엽게 그려져서 맘에듬ㅋ
 

 오랜만에 일본의 <신건축>이라는 잡지를 들춰봤는데 참 뭐라고 해야하나, 설레인다고 해야하나. 나름 실무 3년차라고 이제 보이는게 제법 늘었다. 조그마한 차이를 차이로 인식할 수 있는 눈이 생긴건,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불행이라면 불행. 심미안이 생겨서 좋은 건축에 대한 감동은 더 크게 느낄 수 있지만, 자극에 대한 역치가 높아지면서 왠만한 퀄리티로는 감동을 받지 않는 것은 불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건축은 사회적 수준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았느니 삼성이 소니를 뛰어넘었다느니 열폭을 해대지만, 국가의 총체적 문화적 산물인 건축과 그로 이루어지는 도시경관은 아무래도 10년도 더 뒤쳐진듯. 하긴 따라잡았다고 하는 전자제품도 그 전자제품을 만드는 원천기술이나 부품은 일본 것을 쓴다고 하니, 허울 좋은 자부심은 잠시 뒤로 넣어두는 것이 좋겠다.

 

 하여간 잡지를 보고도 이렇게 설레이는데, 직접 보면 어떨까 싶다. 마감하면 휴가내서 규슈라도 한번 들러야할 듯. 3년전에 교토에서 느꼈던 감동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irbag 2012-11-0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구랴. 건축 수준은 10년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아예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듯. 뭐가 있어야 비교를 하던가 말던가 하지.. ㅎ

일개미 2012-11-02 01:24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 건축 하고 있지만 총체적으로 답이 안나오는 현실임. 그래도 언제올지 모르는 그때를 대비해서 실력을 키우고 있어야지. 머 안오면 말고ㅋㅋ
 

 그 옛날 사람들이 도서관이라는 건축 유형을 만들어냈을때, 그들은 도서관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고있는 하나의 소우주라고 생각했다. 우주를 상징하는 원통 혹은 반구형의 서재로 둘러싸인 대열람실(Great Reading Room)은 이러한 상상력이 은유적으로 반영된 공간이었다. 


 자본논리에 잠식되어 기능 혹은 경제성을 제외한 수많은 가능성을 상실한 오늘날의 건축과 비교해보면, 이런 상징성과 공간의 형태가 묘하게 연관관계를 형성하는 옛 사람들의 도서관에 대한 정의가 참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대영 박물관 도서관>


 특히나 수만권의 책들로 둘러싸인 공간은 나같은 책덕후들의 로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어법이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을 보면 이게 단지 나 혼자만의 로망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바 료타로 메모리얼>

 그런데 이번 설계는 디지털 자료를 중심으로하는 전자도서관이라는 프로그램이 주어졌다. 서고로는 어떠한 드라마를 만들어볼 수도 없는, 건축가 입장에서는 조금은 아쉬운 상황이었다. 여튼 이런 로망은 접어두고 전자도서관이 어떠한 공간이 되어야하는지 정의해보아야했다. 

 정보는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획득한다는 것이 수백년간 이어져온 전통이었다. 서가에 꽂혀있는 책은 분류법에 의해 배열되고, 이용객은 그 분류에 따라 책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 체계의 단점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는 과정이 꽤나 험난하다는데에 있다. 물론 아무생각없이 방랑하다 발견하는 흥미로운 책과 같은 예상하지 못한 소소한 기쁨과 역시 존재한다. 

 정보도서관은 책들에 담긴 모든 정보들을 디지털화해, 손수 찾아다니는 수고 없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편리하게 찾을 수 있다. 정보도서관의 장점은 손쉬운 정보의 접근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런 장점을 극대화시키기위해 내부공간 역시 열려있는 장소가 되기를 원했다. 컴퓨터 뿐 아니라 다양한 디지털기기를 이용한 정보 접근이 용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열려있는 대공간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정보의 획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가장 열린 공간에 배치하는 것이 조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소음이 발생하거나(그룹스터디), 소음이 완벽히 차단되어야하는 공간(열람실, 캐럴)만 구분된 공간안에 담고자했다. 

 동시에 현대에 이르러 잃어버렸던 도서관의 상징적인 차원의 형태를 차용했다. 도서관의 열린 공간은 원형을 기반으로 형성되어있는데, 이것은 기존 도서관과 연계되는 공용공간을 형성함과 동시에 온 세계의 지식을 담고 있는 도서관이라는 상징성을 환기시키려는 시도였다. 

 건축에서의 기능이나 경제성으로만 수렴되지 않는 또 다른 가치, 다의적이고 역사적인 의미, 즉 벤츄리나 로시가 이야기했던 것들을 되살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표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능을 극대화시키면서도, 우리가 내세웠던 전자도서관 - 정보의 자유로운 접근 - 이라는 정의에도 부합하는 건축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기능을 충족시키면서도 정신적으로 빈곤하지 않은 건축 말이다.

 요새 관심이 가는 인문학은 이러한 관점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인간은 호모 이코노미쿠스로만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호모 폴리티쿠스, 호모 루덴스, 호모 사피엔스 같은 다양한 층위의 양상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인문학처럼, 건축 역시 돈으로만 계량되지 않은 풍부한 의미를 담을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만족할만큼의 풍부함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한 50살쯤 되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전제는 굶어죽지 않고 꾸준히 이 길은 간다는 전제하에겠지...

 

 

그리하여 만들어진 거대한 밥통...

 

밥통의 해질녘 분위기 - 저 입면 디테일 푸느라 죽을맛. 역시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난생 처음 만들었던 1/100 스케일의 모형. 입면 부착하기 전. 자유로운 접근을 상징하는 3개층이 열린 대공간과 소음이 조절되어야하는 열림실, 즉 학습공간을 구분했다. 빨갱이 사람들이 여기저기를 서성이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irbag 2012-11-01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자 도서관]이라는 개념에 정말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서 부터. 과연 그래도 필요하다면 그것은 어때야 하고 어떻게 다를 수 있으며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 실체가 없는 대상을 다루는 건축의 실체는 어때야 하는가. 이래저래 흥미로운 질문이 아닐 수가 없네. ㅎㅎ

일개미 2012-11-02 01:19   좋아요 0 | URL
설을 풀긴 했다만 쉽게 말하면 거대한 피시방 정도인듯ㅋ
 

 인간은 언어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언어라는 정의를 좀 더 광의적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이 단순히 문자가 아니라, 다른 매개체, 이를테면 음악이나 그림 혹은 춤, 역시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는 언어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들을때면 광활한 북구의 파노라마가 떠오르는 것은 그의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과 학습의 효과일 수도 있지만, 조국인 핀란드의 자연을 떠올리며 곡을 써내려간 작곡가의 의도가 감상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건축 역시 인간의 언어의 한가지로 건축가의 의도가 물리적인 실체로 표현되는 것이다. 의도가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한정된 자원이다. 단지 재정적인 조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인 요건과 시공환경등을 총체적으로 포함한 의미에서 자원을 이야기한다. 주어진 자원 한도 내에서 의도를 최대한 살리는 것이 건축 설계의 과정이라고 본다면 설계는 가끔은 제로섬(zero-sum) 게임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가지를 취하면 한가지를 잃게되는 본질적으로는 자원배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외부로부터 거리가 깊은 단일한 박스의 공간이 있다고 치자. 이 공간은 열손실은 적겠지만 채광에는 취약하다. 반대의 경우 - 박스를 두개로 나누어 깊이가 얕은 공간- 를 택한다고해도 채광에는 유리하지만 열손실이 크다는 약점이 있다.

 설계의 과정이 쉽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진퇴양난 속에 다루어야할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무한한 자유로움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앞이 깜깜한 일이기도 하다. 정답 찾기에만 익숙했던 정규교육만을 받아오던 사람에게는 어쩌면 피하고 싶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불경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설계의 행위는 어쩌면 세상을 만들어낸 창조주(Creator)를 떠올리게한다. 결정권을 가지고 나의 의지대로 실현해 나가는 과정은 분명히 절대자의 쾌감을 느끼게한다. 그러나 창조물에게 나는 왜 이렇게 불완전하게 만들어졌냐는 비난을 듣지 않으려면 절대자는 무수히 많은 변수들을 통제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기에 설계라는 것은 고도의 지적인 작업이다. 그러나 단순히 지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결국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실체로 드러나는 일이기때문에 미학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학 역시 정답이 없다. 구조의 명쾌함에서 오는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구조적인 불안정성, 혹은 비대칭이나 대비와 같이 다양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그러나 화장을 떡칠한 중학생들이 아름다워보이지 않는 것 같이 모든 것이 아름다움의 기준을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그 기준을 정해보는 것은 수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오늘날, 탱자탱자 놀면서도 돈많고 멋부리고 여자꼬시는 건축가의 이미지가 소비되고 있다. 환상을 심어주는 대중매체에게 건축가는 그런게 아니에요, 더 심오하고 한편으로는 실제적인 것을 다루는 사람들이에요 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여튼, 그들이 생각하는 방향은 아니지만, 건축가라는 것이 몇 안되는 간지나는 부류의 직업이라는 것은 동의한다.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