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유주 연작소설집 틂 창작문고 13
한유주 지음 / 문학실험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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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랫동안은 아니었어, 고작 몇 년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려면 몇 초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나는 몇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살을 생각했다. 밤에는 누워서 가슴에 칼을 꽂는 방식에 대해, 가슴에 칼이 꽂히는 각도에 대해 생각했고, 낮에는 길 위에서는 도로에 뛰어드는 방식에 대해, 내 몸이 그릴 포물선의 정확한 형태에 대해 생각했고, 낯선 얼굴들로 가득한 폐쇄된 공간에서는 역시 칼을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어, 나는 매 순간 자살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 몇 초에 한 번씩 자살을 생각하기에 나는 너무 정신이 말짱했어, 그러니까 하루에 한두 번씩, 어쩌면 서너 번씩 자살을 생각했다.
08

숨 이라는 제목 숨이 있고 없고에 따라 나뉘는 그것은
숨이 이어지지 않으면 죽음이 된다 아니면 죽음이 온다
숨에 대한 이야기는 동시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 이고 죽음에 관한 이야긴 또 숨에 관한 이야기 이기도 하고

소설을 감히 내 주제에 쓴다면 이런 소설 같은 소설을 쓰지 않을까 쓰고 싶은게 아닐까 이런 것밖에 못쓰지 않을까 결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긴 하겠지만 작가의 글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분명

현실에서 작가는 소설속 사람 처럼 안산에 있는 s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소설가들이 소설을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기도 한다 그러면 소설이 ‘진짜‘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안산의 s대학에서 중앙역 까지의 거리와 그 부근의 동네를 잘 안다 많이도 걸어다녔고 한때 거주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목 매달아 자살 한 친구의 이야기 역시 안산에 살던 때 갑자스런 교통사고로 황망히 죽은 젊디 젊었던 지인의 장례에 가던 그 겨울밤의 혹독했던 풍경을 고스라니 떠오르게 했다
유명인의 부고 또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따른 장례는 어쩔수 없이 죽음이라는 그 뭔가를 생각케 하지만 그런 일들이 자연스레 지나가더라도 늘 매일매일 죽음이 생각 나는건 막을 수 없다 매 순간 ‘숨‘을 쉬기 때문이다
소설속 사람이 안산에서 서울로 가는 도로에서 비둘기의 사체를 보고 또 반려견들의 죽음을 통해 친구의 죽음을 계속 꺼내어보지만 그런 외부적 자극이 없음에도 내부의 누가 쉼없이 이야기 하는 죽음에 익숙한 나머지 누군가는 터부시하고 회피하는 죽음이란 것이 밍숭밍숭한지 오래다 오히려 삶 보다는 죽음이 더 낫다는 나름의 결론 역시 오래 되었다
여하튼 구매 당시에 읽었더라면 무엇을 지껄였을까 싶기도 하면서 지금은 또 이런걸 떠들고 있구나 싶고 죽기 전이기 때문에 화자처럼 죽음을 구체적으로는 자살 생각을 할 수는 있는 것이고 그러면 밥을 먹고 뭔가를 읽는 것으로 치욕을 치르고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처음 이해한 순간 부터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021

나는 죽음이야말로 애매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053

나는 죽음에 대해서라면 끝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085

나는 나를 치울 수 없었고 나를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죽고 싶었고 영원히 나를 버리고 싶었다. 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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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책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앤솔러지
사키 외 지음, 김석희 외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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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19편의 단편 소설을 묶은 책
누군가는 죽거나 죽음에 관한 소설들이기에 각 작가들은 누구를 어떻게 죽게 할 것인가 또는 죽음을 어떻게 형상화 했을까 주시하며 읽었다
납득이 되지 않는 죽음은 이미 우리 도처에 널렸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소설 역시 납득이나 이해의 영역이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죽음은 당도한 현재 그것이게 마련인데 그것의 이해 여부가 죽음을 부정해주지는 않는다 죽음 자체와 죽음 직전 까지의 시간은 별개의 일이다 인간의 이해 관계가 아닌 자연적 현상 말이다

죽음만큼 일생일대의 사건도 없지만 그에 비해 아주 하찮고 어처구니 없음으로 죽음은 닥치기도 한다
간단명료하게 죽음 이라고 하든 아니면 살짝 인간적으로 인생의 끝 이라고 말하든 어쨌든 죽음이라는 이 삶의 끝에 대해 자주자주 생각한다 코 찔찔이 때부터 죽는다는 걸 생각했다고 하면 뻥 치고 있네 그러면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냐 비웃겠지만 나 역시 그러하다만 그러거나말거나 상관 없다

잭 런던의 불 피우기의 사내처럼 서서히 자각하는 죽음도 있겠고 번개처럼 순식간에 번쩍하는 죽음도 있겠고 굳이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이 어쨌든 죽음이라는 그 무엇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보거나 계획하고 실행할 수도 있다 대부분은 순종적으로 죽음을 어쨌든 기다리고 있는 상태를 유지중이다

이와중에 유튭은 75세의 남자가 운영하는 단식자연사 채널을 띄워준다 때때로 유튭 알고리즘이야말로 21세기의 전지전능인가 싶다

죽음에 관한 소설을 읽고 소설 자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서 뭐하나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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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의 생각 없는 생각 - 양장
료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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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들이 하나둘 나올수록 매각 이전에도 문제가 많았던듯...
그럼에도 줄을 서서 사먹는 웃지못할 이 진풍경
자본주의의 진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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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은총의 일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1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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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들었던 말로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끝없이 과거를 반추할 수 있기 때문이라던가 아니면 영화 선리기연의 대사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후회하는 것‘ 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소설이었다
과거를 돌이키며 나즈막히 진술해나가는 소설을 따라 읽는 일은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많아서인지 그간 쌓은 지난 날들의 기억에 후회와 허망에 빠지는 나이든 나를 자꾸만 떠올리게 했다

작가의 낯선 이름에 검색해보니 국내 번역본이 많지는 않았고 읽어볼까 하면 부피가 있거나 흥미롭지 않은 내용이었다 적당한 두께의 다른 작품이 나온다면 높은 확률로 읽어볼 것 같다 그만큼 작가의 인간과 세상에 대한 시선이 좋았다는 말

‘알렉시‘ ‘은총의 일격‘ 공통으로 화자와 작가의 성정체성을 엮어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해설에서 확인) 나는 타인의 성정체성에 무관심해서 두 작품에서 공통으로 읽을수 있는 소설의 어조(라고 하는게 맞나 싶지만)가 좋았다 그래서 ‘~황제의 회상록‘이 급 궁금해졌지만 두 권 610페이지에 지레 겁먹고 일단은 포기

알렉시의 번역에서 ~하였소 ~했다오 투의 오그라드는 번역을 선택했는데 너무 고루한 어투가 아닌지
근대 소설에서나 썼을 법한 말투를 아무리 편지글 형식이라고 누가 편지에 저런 어투로 쓰나 생각해보면 좀 어처구니가 없어 가독성을 획기적으로 폭망 시켰다 하겠다 ㄱㅐ짜증이...

26살 작가 초기에 알렉시를 썼고 10년 후 은총의 일격 출간... 와 씨 잘 쓴다 잘 써
은총의 일격 인물 세 사람이 오래 기억될 소설이겠다 싶음
간만에 국내번역이 많이 되었음 하는 작가 발견

오지랖으로
유르스나르는 꿀이 변하고 그것을 비유적으로 각 소설에 썼는데 1903년 생이다보니 그 당시엔 그런 인식이 맞았는진 모르겠으나 통상적 보관일 때 꿀은 변하지 않는다는게 팩트다 한국에선 옛날?부터 꿀은 안변한다고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유럽꿀은 다른가
수천년 전 이집트 유물에서 변하지 않은 꿀이 발견 되었다는 쳇지피티 의견도 있긴 함 뻥인진 몰라도

아무리 좋은 꿀도 결국은 발효되어 시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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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신이시여, 전 언제 죽나이까?...... 모니크, 기억날 거요. 독일 옛 기도의 첫 구절이잖소. 미래가 없는,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 초라한 존재, 나와 갈라설 수 없으니 결국 ‘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존재가 난 정말 진절머리 나오. 그 ‘나‘는 자기의 슬픔을, 자기의 아픔을 나에게 떠안긴다오. 물론 그 나보다 내가 더 낫소. 난 그에 대해 남 얘기 하듯 말할 수 있으니까 . 그런데 무슨 이유로 내가 그에게 사로잡혀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는 모르겠소.
71

몸을 피곤하게 만드는 건 아마도 스스로를 길들이는 방법일 거요. 하지만 육체의 힘이 고갈되고 나면 영혼 역시 무뎌지지. 불안에 젖은 영혼이 잠든 영혼보다 차라리 낫지 않은지, 모니크, 한번 생각해 볼 일이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신 사랑에 관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행위를 통해 해결했을 불안을 우리는 말을 통해 이겨냈다. 어차피 그냥도망침으로써 불안을 피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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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에세이
유디트 헤르만 지음, 신동화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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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뿐인 불가해한 현실로 들어가고자 하고, 내가 현실을 이해할 수 없음을 쓰고자 하고, 현실이 대체로 이해할 수 없기도 하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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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시작을 향해 가는 역행적 운동이며, 중심 주위로 층을 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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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유디트의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한번 읽어보겠다 한다면 소설을 읽기 전에 이 에세이를 먼저 읽는게 맞겠다 싶다 특히 레티파크를 읽겠다면 더더욱

기억도 가물한 그 예전에 읽었던 것들을 이제 다시 읽는다면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니 그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읽히려나 싶기도 했다
국내 출간 되었던 세 권의 소설(집)은 모두 절판이라는 사실 물론 나는 소장 중

소설가가 소설을 쓰면서 소설로 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축이다 이를테면 가장 최근 국내 발간작 레티파크에 수록된 단편들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나 가족과 개인사에 관한 이야기들
특히나 가족에 관한 이야기 (그중에 아버지)에서 이렇게나 깊게? 이야기하는구나 할만큼 이야기를 따라 읽다보면 작가 유디트 보다 한 사람으로의 유디트가 새롭게 그려진다

사실 작가의 에세이는 작가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 외에 달리 작가에 대한 다른 읽을 거리가 없었다보니 작품 외적으로 늘 궁금한 작가였기에 이런 에세이는 놓칠수 없어 신간 목록에 뜬 순간 예전 같으면 부리나케 지르고도 남았겠지만 얼마 전부터는 더이상 책은 사지 않는다 작정해서 도서관에 들어올 때 까지 기다리다 부리나케 읽었다

레티파크나 알리스 그리고 다른 작품을 썼던 당시 작가는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나 레티파크에 실린 어떤 단편의 등장인물은 이러해서 이렇게 썼다와 같은 이야길 읽을수 있다 아 이럴줄 알았음 내다팔지 않는 건데 하며 읽었다 젠장할

한편으로 작가의 소소하고 세세한 일상과 생각들을 읽는게 과연 즐겁거나 굳이 알아야할 일인가 그럼으로써 오히려 작가와 그의 작품과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런 경우야 이미 한두 번은 아니었다만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절판된 채 재발간이 안되고 있다는건 그만큼 국내엔 안먹히는 작가란 이야길 예전 피드에서 했는데 이 책은 대략 보름만에 2쇄를 찍었다 그건 유디트 마니아 층이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재발간 및 미 번역작도 국내 출간해봄직 하지 않을까 그러다 덜컥 노벨상이라도? ㅋ

여담으로 이번 라슬로 수상과 국내 소규모 출판사의 독점 출판 상황을 보며 뭔가 묘한 쾌감이 들었다
메이저 문학 출판사들이 한방 먹은듯 해서 ㅋ

아경화 -> 야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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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느끼기에게도 느끼기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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