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35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으로 산 지 십 년째라고하는 김선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신변에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전 두 시집의 그 무언가를
기대하고 본다면 짐짓 당황하지 않을까 싶다
시라는 것이 자연인으로써의 시인 한 사람의 감성의 토로가 아니라고도
할 수 없으니 어떤 심경의 변화 내지는 억누르기 힘든 욕망의 내면을 보게
되는것도 당연할 것도 같다
여하튼 내내 아쉽고 조금은 당황스러웠던 이번 시집 가운데 단번에 읽히는
한 편을 올려 본다
시를 청탁받고 발표하는 관행으로부터 떠나있게 되겠다는데 다음 시집은
과연 언제 만나 볼 수 있을지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07

어떤 출산

  내 거처에 멧비둘기 한 쌍 날아와 둥지를 짓더니
보얀 알을 낳았네 하루에 한 알 다음 날 또 한 알,
알을 낳을 때 어미는 너무 고요해서 몸 푸는 줄도 몰
랐네 성긋한 해산 자리 밖으로 일렁이며 흘러넘친 썰
물…… 알 속의 이 아기는 한 살인가 어쩐가 지금쯤
겨드랑이가 간지러울까 어떨까 뜻밖의 식구에 골몰
하다 갑자기 든 생각은, 실은 발가락도 날개도 다 만
들어진 다음인데 반가사유로 알 속에 앉아 골똘히 생
각에 잠긴 건 아닐까 나가야 할까 어쩔까 세상 밖은
정말 밖인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 다
음엔 왠지 좀 억울한 것이 나는 아무래도 반쯤은 쫓
겨난 것만 같아, 알로 나를 낳아주고 세상 밖으로 나
갈지 말지는 저처럼 내게 맡겼으면 좋았을걸 싶어지
는 거였네 멧비둘기 부부는 무량하게 알을 품지만 다
만 그뿐 강요란 없어서…… 열이레가 지나고 알 하
나에서 고물고물한 아기가 나왔는데 다른 알에서는
소식이 없었네 엄한 생각 탓에 동티 난 건 아닌지 갑
자기 내 마음이 덜컥거렸는데…… 이틀을 더 품어보
던 멧비둘기 부부가 묵언 중의 알 앞에 마주 앉아 껍
질에 가만 부리를 대보던 오후가 있었네 너무 고요해
서 나는 못 들었지만, 세계의 바깥이 아니라 안쪽을
선택한 아기에게 축복의 말을 주는 듯했네 알 속의
그가 선택한 탄생 이전이 그것대로 완전한 생임을 알
고 있는 눈치였네…… 자기가 선택한 세계 속에서
온몸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보얀 알과 멧비둘기 부부
의 극진한 고요 앞에 합장했네 지상의 새들이 날 수
있다는 건 자기 선택에 대한 최선일 뿐 모든 새가 날
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자고 일어나면 배 밑
에 가시풀 같은 깃털이 묻어 있는 열아흐레였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노기 2008-05-0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이 시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여러 편들도...
 
알도와 떠도는 사원
김용규.김성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김용규.김성규 알도와 떠도는 사원 웅진지식하우스 2006

2001년에 출간된 알도와 떠도는 사원 1, 2를 합본.재구성하여 새롭게 출간한 것

먼저 이 책은 '철학 판타지'임을 내세우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낱말의 조합이기도 하다 판타지 속에
철학을 잘 버무려놓으려고 했나 싶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올시다'였다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 이기도 하다'라는 말을 되짚어보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이다
대입해서 말하자면 철학이야기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닌것이었다는 말이다

철학을 들려주고 싶었는지 판타지를 들려주고 싶었는지 오리무중이다
어느쪽을 뼈대로 삼고 나머지 한쪽을 살점으로 삼아 덧붙여 나가려고 했는지
의도는 짐작되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드는 생각은 시도는 신선했을지 모르나
방법은 서툴렀다는 것이다
마치 교과서의 내용을 읽는것 같은 서구근대화 과정(_p 137~150)이나
'알도'의 입을 통해 설명해 주는 일반적 지식들을 읽고자 판타지 소설을 읽지는
않는 것이란 거다
지은이는 판타지라는 미끼를 슬쩍 던져 놓고 뭔가 철학적 지식들을 알려주고 싶어
했겠지만 '철학적 사실'에서 '재미'를 느끼는 소설 독자는 많지 않다고 본다
이 책에서 바라는 것은 흥미일 것이지 철학적 사실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주고 싶은 작가의 욕심이 아닐까 싶다
무게를 주고 싶었던 쪽은 철학쪽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철학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도입된 장르가 판타지라는 것이 적절치 못했지 않았나 한다


"... 악은 그저 허상이야. 빛은 있을지언정 어둠이란 없는
거야. 마찬가지로 선이 있을 뿐 악은 없는 거야. 어둠이란 빛이 부족한
것이고, 악은 선이 결핍된 것일 뿐이야. 모두 허상이라고."
_p352

악이 허상이라면 선도 허상은 아닐까?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어둠이 없는데 밝음 이란게 존재할까?

-빛이란 어둠이 부족한 것이고, 선은 악이 결핍된 것일 뿐이야.
위 본문의 문장을 단어만 바꿔 보았다. 권선징악적인 가치로 본다면 이상하겠지만
틀린 말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나는 생각 한다)

"...모두 허상이라고." 라고 한다면 그 '모두'에는 선과 악 모두가 될 것이다.
결국 선도 악도 다 허상인 것이다.
빛과 어둠 선과 악 있음과 없음 모두가 하나의 개념만으론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너무 쉽고 일반적으로 말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철학적 지식들과 사실들을 뺀 이야기의 '줄거리'를 생각해 보자면 그 줄거리가
너무 약하고 탄탄하지 않다 긴장감이나 흥미를 돋우는 장치가 부재하다 그 말이다
이야기를 읽을 때 드는 '재미'가 아니라 단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는 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판타지)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에서 소개하길래 덥석 주문해 놓고 이제서야 읽어보았다
만약 사전에 이 책을 먼저 읽고 사회자, 작가, 패널들의 대화를 시청했다면 나는 어떻게
느꼈을까 싶다

정말로 선정하는 책의 기준이 순수할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엄청난 로비를 해야한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알 사람도 모를 사람도 다 아는 것이지만...

객관적인 '재미'란 없기 때문에 내 주관적으로는 재미가 없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 하이쿠 선집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34
마쓰오 바쇼 외 지음, 오석륜 옮김 / 책세상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7자 정도의 말에서 어떤 정감을 느끼기란 힘들다
거기다 다른 나라의 글
역자의 감상에 승차해 보긴 하나 도통 신통치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들은 모른다 - 여성.여성성.여성문학
김승희 지음 / 마음산책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울 국제 도서전에 갔다가 할인 판매대에 있길래 들고 왔다

여성주의 시들을 골라 저자의 해설을 곁들였다 무엇보다 석영희 라는 시인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확실히 시는 여성적인 장르이고 소설은 남성적인것 같다 획일적 제단이 물론

성립되기 힘들겠지만

제목과 표지 디자인이 아쉽다

---------------------------------------------

남자들은 모른다 김승희 2001 마음산책
국내 외 '여성주의 시'들과 저자의 해설을 덧붙여 엮은 시평론집

심판

석영희

어젯밤
흰 목도리를 두르고
죽으러 갔다
목을 길게 빼고 엎드리니
죄 같은 건 없어도
넌 그냥 죽는다고
누군가 선고하고 곧장
목덜미에 칼이 닿는다
하필이면 단도
재수 없이 무딘 칼
왜 무죄일까, 의심하며
절대 무죄가 아냐, 분노하며
어서 빨리 집행이 끝나기만
기다리는데
도무지
끝나지 않는다
목이 썰린다는 게 얼마나 불쾌한 일인지
똑똑히
알아두라는 듯
더럽게 안 드는 칼로
슬로비디오로
아직도 반쯤
썰린 목을 길게 빼고
피 한 방울 안 떨어진
흰 목도리만
여생(餘生)의 그 부우연 빛깔만
눈이 빠져라
내려다보며 한 순간
견디면 끝이지
어서 끝이 끝나기만
또 기다리는데
갑자기
집행이 중지된다
이런 법이 어딨어
목을 반만 달고 미친년처럼
따지지만
따져도 누구 하나
대꾸하지 않고
형장은 폐쇄된다
짤리다 만 목
흰 목도리로 감고
집으로 가니
죽다 살아와 반갑다고
개들은 월월 짖지만
오, 절대로
무죄가 아냐


미란에 대하여

석영희

네가 내게도 부질없는 날
검은 곰팡이 핀 방구석에 앉아
사막에서
비단빛 이제는 바랜 도시를 생각한다
한때 나의 이름이었던
옛도시 미란은 사라졌다고 한다
어느 날 드러난
죽은 이의 잘 마른 가죽 속에도
미란은 없다 고개 숙이고
못박힌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날들을 생각한다
너의 태어남이 한 도시의 몰락 이후였다는 이야기
호수는 여전히 모래 위를 떠돈다는 이야기
신기루 되어 다가와도
속지 말아라 빠른 어둠을 타고
귀없는 벌레들이 울기 시작한다
너와 나 사이에 커다란 사막은
그냥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건조한 마음의 일들을 멀리두고
해묵은 의문을 지우며
어제보다 더 너는 축축해진다
모래옷 한 겹 입고
사막에서 쓰러져 죽는 일
네게는 없을 것이다 오랜 배움에 의해
앉아서 지척을 볼 뿐
천리 밖의 일은 묻지 않는다
그리하여 내가 네게도 지겨운 날
썩어 문드러지던 이름
미란을 생각한다 오를수록 더 깊이 빠지던
개미지옥을 생각한다
그리운 물은 고여도
온몸으로 흐린다는 이야기 나의 죽음이
한 흐름의 소멸 이전이라는 이야기
모래바람 타고 실려와도
떠도는 이름일 뿐 미란은 없다
있다면 마음 안의 일이 아닐 것이다
검은 곰팡이 한 겹 두르고 안심하며
너는 고개를 끄덕인다
희망을 버리려 애쓴 오랜 날들 위의
비단빛 이제는 지워진 도시
너와 나 사이에 집으로 가는 길은
아주 없어도 괜찮을 것이다

이승훈 의 석영희 시인에 대한 평
"신화나 원형에 기대어 위안조차 받을 수 없는 사람, 형벌을 받은 사람만이 시를 쓴다"

석영희
1957년 생
1991년 현대시사상 으로 등단
199? 자살
발표작 <심판> <미란에 대하여>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에 2007-10-17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공감.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