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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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정은 소설의 느낌적 느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그녀의 소설, 또는 소설 속의 목소리, 아니면 황정은이라는 자연인.

그 모두가 결국 하나겠지만 그것을 읽어가는 일은 묵묵하다거나 담담하다거나 뭐 그런 느낌, 기분이다.

'이건 뭐야'하고 황당한 소리와 함께 책장을 덮을 사람도 있겠지만

비틀린 것, 비틀렸다는 표현은 뭔가 적절하지 않지만, 어쨌든 잠시 곰곰이 들여다보고

그 비틀린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면 황정은 식이야기를 알아먹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뭐 대단히 어려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뻔해서 하나마나한 생각들이나 투명할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상을

그대로 복사하는 게 소설이라면 굳이 소설을 쓰거나 읽을 필요는 없다.

뻔해 보이는 것도 '낯설게 하기'가 소설가들의 본업이다.





하지만 영상을 만들고 있는 2020년 현재의 어떤 소설 어떤 작가들은 일상을 복사하듯 소설을 쓰고 또 대중들은 그런 소설에 환호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나야 뭐 안보면 그만이긴한데 참 알다가도 모를 게 소설이란 것인지 대중의 기호란 것인지 그런 시류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곧 꼰대가 되었다는 증거 같기도 해서 씁쓸할 뿐이다.


황정은이 그려내는 낯선 풍경들이 장쾌한 그랜드 캐니언도 아니고

대기권 밖의 신비스런 장면도 아닌 입술 거스러미나 뜯고 있는

옆 사람 이야기인데 나는 그런 장면들에 탐닉하는 독자일 것이다.

물론 또래의 여러 작가들이 그렇고그런 일상에 대해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황정은 특유의 색깔이 강렬한 빨강이나 서늘한 청색은 아니고

그녀 특유의 색깔은 첫소설집으로부터 이제 착색되지 않나 조심스레 생각한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워지려는 이율배반적인 색도 색이듯이

C M Y K R G B 같은 대표색이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파스텔 톤을 끄집어내

대표색으로 만들어 낸 것이 황정은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것의 매력을 본다면 황정은의 애독자가 될 것 같다.

각 단편들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건 읽었거나 읽을 사람의 몫이기 때문에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관심이나 팬심과 같은 의무감에서 읽어야 할 이들은 찾아 읽을테니 굳이

미주왈고주왈 떠든다는 건 무의미 하다

하지만 11편의 단편 가운데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8번째 작품인 오뚝이와 지빠귀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본다



2. 단편 오뚝이와 지빠귀에 대한 후기


오뚝이와 지빠귀에는 한 집에 살고 있는 기조와 무도 두 사람이 등장하고 어느날 느닷없이 기조가 작아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설정을 두고 좀 황당한 게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설정보다 소설이 보여주는 몇몇 장면에 주목했다.


첫 번째 장면

기조는 여러 아이들과 수영을 하는 꿈을 꾸는데 그 꿈에 대해 무도에게 이야기 해준다

그 과정에서 자꾸만 되풀이 되는 꿈 속 장면에 대해 라고 묻는 걸 무도는 이해하지 못한다


두 번째 장면

작아진 기조가 한번씩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증상 때문에 실업자가 되고 평소처럼 행동하는 무도의 행동이 왜 그렇게 빠르냐는 말에

무도는 이 정도면 보통이라고 한다. 보통이라는 것에 대해 기조는 여러 예를 들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열심히 일하는 개미이야기가 소개 된다.



나는 저 두 장면을 통해 라고 묻지 않는 무감각한 일상에 파묻혀 사는 것과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보통이라는 잣대에 대한 것 그리고 개미 이야기 등을 아주 잘 버무린 황정은 식의 비틀기로 써낸 소설이 아닌가 한다 적어도 내가 읽기엔 그렇더라 그 말이다.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제목과 내용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볼 수 있다

오뚝이와 지빠귀에서 오뚝이라는 장난감은 누구나 알듯 넘어뜨려도 금새 제자리로 돌아오는 원상복귀와 반복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빠귀라는 것은 조류의 일종으로 본문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길 해보자면 나는 하고 많은 조류의 이름 가운데 왜 하필 지빠귀라는 이름을 사용했을까 하고 의심을 해본다

지금부터는 진~짜 엉뚱한 주장일 수도 있는데 지빠귀라는 말과 자빠지다라는 말은 뭔가 좀 비슷하게 들리지 않나? 그 말이다.

나만의 터무니 없는 과대해석이겠지만 자빠진다는 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닥쳐오는 것이고 우리의 일상 대부분은 그렇게 닥쳐오고 그런 일상에 파묻혀 산다.

그것에 대해 라고 생각하는 순간 보통 의 범주라 할 수 있는 일상에는 미세한 균열이 시작 되고 그것은 곧 비상상황으로 연결 된다

다들 자빠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생활을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고들 있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그 ''를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쓸쓸하고 때론 비루하게 소설을 읽으면서 말이다

여하튼 자빠졌다가 거의 자동으로 다시 원상태로 일어나는 오뚝이라는 것과 지빠귀 라는 이름을 함께 배치한 작가의 감각은 예사롭지가 않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다 이렇게 읽어주기를 작가는 바라지 않았을까 하는 건 지나친 나만의 억측이겠지만 말이다



살짝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소설가 황정은의 팬이라면 경장편 백의 그림자를 읽어 봤을 것인데 백의 그림자를 먼저 읽고 이 오뚝이와 지빠귀를 읽는다면 어떤 기시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소설 백의 그림자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이 있는데

소설 초반부에 은교와 무재가 나지막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그 장면과 이 오뚝이와 지빠귀시작 부분을 다시 읽었을 때 뭔가 비슷하다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백의 그림자라는 이야기의 씨앗이 여기가 아닐까 하는 이또한 나만의 망상을 해보기도 했다

참고로 이 영상을 만드는 현재 백의 그림자는 절판 상태다. 내가 알기로 아마 20~30쇄 이상 많이 팔린 작품인데 출판사와 작가는 왜 절판시켜버린 것인지 어떤 내부 사정이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신작 소식에 첫 소설집을 꺼내 들춰봤는데 다시 읽어본 작품은 내가 언제 읽었나 하는 낯섦과 미처 느끼지 못했던 지점들이 있어 역시나 독서는 많이 읽기 보다 여러번 읽기가 맞는거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여러모로 우중충한 시절에 신작 소설은 소소한 즐거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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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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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존이냐 본질이냐

2 ‘이유원인이냐

3. 그래서 우리는

뫼르소 같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신의 친구나 애인이 뫼르소라면?



소설 이방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아마

눈부신 태양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것과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되는 첫문장 일 것이다

소설 이방인의 줄거리 요약 같은 건 필요 없을 것 같고

이방인 리뷰 영상들은 넘쳐나니까 찾아보면 되겠다

 

롤랑 바르트는 소설 이방인건전지의 발명과 맞먹는 사건이라고 했다

그런 소설을 이렇게 짧은 리뷰로 말한다는 건 분명 어불성설이긴 하다

그럼에도 두어 가지만 콕 찝어 이야기해 보려 한다

 

 

1. 실존이냐 본질이냐

 

뜬금없는 질문 하나 해보자. 돼지의 본질은 무엇인가?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구제역이 발생할 때 우리는 생매장 되는 돼지나 소 같은 가축들을 볼 수 있었다. 병의 전염 우려도 있겠지만 생매장 되는 이유는 병의 감염으로 인한 가축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돼지의 본질은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물론 돼지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아니면 당신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돼지가 돼지답게 돼지고기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듯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답다는 누가 정의하는 것일까? 그런 정의가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 정의를 따라야 할까?

인간의 본질은 몇 가지로 간단하게 규정지을 수 없고 그런게 있다고 하더라도 돼지처럼 쉽게 매장 시킬 수도 없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기투된 존재라고 했다

이 말은 인간은 세상에 그냥 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해야 된다는 게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로써의 실존이 인간으로써의 본질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들을 살펴보면 뫼르소는 인간으로써 ~해야 한다는 당위에 해당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거나 어머니의 나이를 모른다거나 장례식 다음날 해변가에서 만난 여자와 함께 밤을 보낸다거나 등등 관습적 사고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은 뫼르소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처구니 없게도 뫼르소의 사형은 아랍인을 죽였다는 살인 때문이 아니라 이해못할 행동들 때문이란 건 읽어본 독자는 누구나 알 수 있다

관습적인 사고는 우리 인간이 의미를 부여한 결과일 뿐이다

 

 

카뮈는 이방인을 각색 하겠다는 독일 독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뫼르소에게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가 있다

그것은 결코 마땅히 ~이어야 한다는 당위를 따르는 게 아니라 오로지 사실이 ~이다라는 존재의 실상을 따를 뿐이다.

 

 

이 소설 안에서 뫼르소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뫼르소의 행동을 있을 수가 없는 행동이라고 본다. 자신들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을 뫼르소는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으니 그들 눈에 뫼르소는 이방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뫼르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판사나, 검사, 방청객 심지어 그의 변호사까지 그들의 관습에 따라 판단했기 때문에 사형을 당하는 부조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본질과 실존 사이에서 나나 당신들은 어떤 기준에 따라 판단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뫼르소의 처지가 된다면 나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할까

이방인의 마지막 문단 일부를 옮겨와 봤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_136p

 

부조리한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반항하는 방식 가운데 뫼르소가 선택한 것처럼 죽음도 그 한 방법인 것이다. 세계에 대한 냉소나 풍자 또는 빈정거림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죽음에 굴복하여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서 사형을 피하는 건 뫼르소의 방식이 아닌 것이다. 자살이 아닌 사형수가 되어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죽음에 대한 반항이기도 한 것이다.

그 사형장에 많은 구경꾼들이 오기를 바라는 것 또한 부조리에 대한 반항의 한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 ‘이유원인이냐

 

잘 알려진 것처럼 뫼르소Meursault라는 이름에는 죽음을 뜻하는 모르mort와 태양을 뜻하는 솔레유soleil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카뮈가 주인공의 이름을 뫼르소라고 지었을 때 이미 죽음과 태양이 소설의 주요 사건과 주인공의 운명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살짝 딴 얘기일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주인공의 이름에 작품의 의미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예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흔하기 때문에 그렇게 놀랄 것도 아니다. 몇년 전 인기리에 종방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 5화에서 아이유가 연기했던 극중 인물 이지안의 이름이 이를 ’ ‘편안할 이라는 장면이 나온다

이지안 이라는 이름에서 현재의 불안과 미래의 평안에 대한 갈망 등을 살짝 엿볼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작가가 너무 직접 들이대는게 아닌가 싶었지만 대중 드라마라는 전달되는 매체의 특성상 어쩔수 없겠구나 싶기도 했다. 아마 소설이라면 좀 더 은유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을 했다

이 경우와는 좀 결이 다르지만 신경숙의 소설 깊은 슬픔의 세 주인공의 이름은 각각 '은서' '' 그리고 ''인데 작품을 읽어본 입장에서 이름이 풍기는 뉘앙스가 곧 캐릭터의 성격과 비슷했다고 느꼈다.

 

다시 이방인에서 태양은 여러모로 작용을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뫼르소가 살인을 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뫼르소는 재판장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나는 빨리 좀 뒤죽박죽이 된 말로,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말인 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장내에서 웃음이 터졌다.“

_115p

 

국내 번역은 때문이었다라고 되어 있는데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그것은 태양이 원인이었다라고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것의 원인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태양이 원인이었지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뫼르소의 살인은 우발적이었지 개인적 원한에 의한 계획적 살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뫼르소가 방아쇠를 당긴 그날 그 순간 비가 왔거나 흐렸다면 어쩌면 뫼르소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어쨌든 살인이라는 결과는 바뀌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계획된 것인지 우연인 것인지 그점은 짚고 넘어갈만 하다는 것이다

 

이유가 개인적이고 내부적인 것이라면 원인은 개인을 넘어서는 외부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것은 방청객의 웃음을 살만큼 엉뚱한 대답일 수도 있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이야기 하는 뫼르소 식의 대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이유와 원인으로 구분해봐야 하냐면 한국말로 ~ 때문에 라고 읽기는 읽어도 작가가 그 말을 쓸 때 원인으로 썼느냐와 이유로 썼느냐를 알고 읽을 때 좀 더 깊이 있는 작품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 그래서

우리는 뫼르소 같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신의 친구나 애인이 뫼르소라면?

 

 

우리는 제3자로써 객관적인 거리에서 소설을 읽을 수 있다

이방인이라는 소설 속의 뫼르소라는 인간이 하는 행동과 말들, 그리고 그 주변인물들을 살펴보며 각자의 생각과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

 

앞에서 간단하게 이야기했지만

다음과 같은 행동들에 대해 판단해 보자

 

1.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 무덤덤 하다

2. 매장 전에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겠느냐는 제안을 거절한다

3. 어머니의 나이가 많았냐는 질문에 대해 얼버무릴만큼 어머니의 나이를 모른다

4. 어머니의 시신이 있는 방에서 거리낄 것 없이 담배를 피운다

5.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실컷 잠잘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낀다

6.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7. 장례식 다음날 수영을 하러 갔고 거기서 만난 여자에게 영화를 보자고 제안하고 또 그녀와 함께 밤을 보낸다

 

이 외에도 소설 속의 다양한 상황에 따른 뫼르소 식의 자기 표현이 있다

 

그 모든 행동들에 대해 소설에서는 바로 전날 어머니 장례를 치른 사람의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간주하고 있다

 

 

장례를 치러봤거나 장례식장에 가봤다면 장례식장의 풍경은 그 가족의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이란 걸 알 수 있다.

 

이방인을 읽은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뫼르소를 이해못할 인물로 간주하고 사형을 구형하는데 동의하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는지

그러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뫼르소의 행동이 비난 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사형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뫼르소는 자신의 욕구에 따라 솔직하게, 어머니의 죽음에 무관심하게 행동하며

자신의 행동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관심 없다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이 자기에게 유불리할지 상관하지 않고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거짓 없이있는 그대로 곧잘 이야기 하는 사람이 내 지인이거나 애인이라면 어떤가. 또는 내 자신이 뫼르소와 닮은 면이 있다고 생각되는 점은 없나

거짓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착한 거짓말이라는 이유를 들어 때론 듣고 싶은 거짓말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방인 가운데 다음 장면을 한번 보자

 

52p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뫼르소는 상대방이 자기의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할지 개의치 않는다

마리가 자기 말에 상처받지 않을까 염려되어 속에 없는 말을 일부러 꾸며내지 않는다. 자신의 실제 감정에 따라 직접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는 뫼르소는 그래야만 자신과 상대방에게 진실하고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인 것이다

 

 

그를 찾아온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뫼르소의 변호사는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 날 무심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을 법정에서나 예심판사의 방에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다그쳤다.

자신의 말이 몰고 올 파장에 무관심한 태도, 진실을 말하는 그의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마땅히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쉽게 말한다. 하지만 진실이란 생각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내 입 밖으로 꺼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 발설이 초래할 위험을 대개의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질이니 실존이니 등등 골치 아픈 이야기를 두서 없이 했지만

그래서 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 한다면

 

우리는 뫼르소 같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신의 친구나 애인, 자식이 뫼르소라면?

 

 

나는 뫼르소가 훌륭한 인간이라는 것도 아니고 그와 같은 인간이 되자,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것도 아니다

우리 주변에 뫼르소가 있다면 그를 위험 인물 또는 가까이 지내기에 꺼릴 수밖에 없는 이웃으로 치부하고 멀리하지는 않을까?

만약 세상 모든 사람이 뫼르소로 가득 찬다면 그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의 세상일까?

뫼르소가 없는 세상에서 서로 적당히 속이고 속아주는 그렇고 그런 세상을 바라고 있지는 않을까?

소설 속 뫼르소를 죽였듯이 어쩌면 이웃의 뫼르소를 우리도 처단해왔는지 모른다

그 결과가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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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 문학으로 읽는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
임민경 지음 / 들녘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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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들의 공통점이 뭘까


안나 카레니나, 인간 실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리고 다음 작가들의 공통점은 또 무엇일까


실비아 플라스, 버지니아 울프, 헤밍웨이


그렇다면 앞에서 예로 든 작품들과 작가들의 공통점이 뭐냐고 다시 물어본다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 같다

주인공이 자살한 작품들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들이다



이번에 살펴볼 책을 주목한 이유는 문학으로 읽는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이라는 책의 부제와 저자의 이력 때문이다. 저자는 학부에서 독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임상심리 전문가로써 범죄 피해 트라우마 통합 지원 기관에서 내담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과 작가에 대해 심리학적 지식과 자살학 이론으로 좀 더 깊고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전문가가 쓴 책이니 일반인이 보기에 어려운 게 아니냐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무심코 읽고 지나친 문학 작품 속 주인공의 언행이 의미하는 바를 임상심리 전문가는 놓치지 않고 설명해 준다

일례로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초반부 장면을 통해 안나의 친밀욕구를 설명하기도 하고

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죽기 전 가명으로 발표한 유일한 소설 벨 자의 주인공을 통해 실비아 플라스의 감정 상태를 읽어내고 설명하기도 한다

솔직히 나는 벨 자를 읽고 별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시인이 쓴 소설이라며 내심 폄하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봐야 하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작품과 작가에 관심이 있고 좀 더 깊이 읽기를 하고 싶다면 이 책은 좋은 힌트가 될 것 같다




나는 아직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가운데 제대로 읽은 게 하나도 없다

읽기도 전부터 의식의 흐름 기법이 어떠니 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더라는 카더라 통신도 읽기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버지니아 울프를 읽게 된다면 첫 번째 작품으로 댈러웨이 부인을 꼽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이클 커닝 햄의 소설이 영화화된 디 아워스를 아주 인상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어쨌든 책으로 돌아와서, 양극성 장애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조증 상태와 울증 상태를 오가는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기분장애. 조울증이라고도 한다

_108p


실제로 양극성 장애는 모든 정신장애를 통틀어 자살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손꼽히는 장애 중 하나라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남긴 일기나 편지, 주변의 증언 등을 미루어봐서 버지니아 울프는 제1형 양극성 장애라고 추측되고 그녀가 자살을 시도한 것은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만 세 번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저자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이상심리학 수업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극성 장애와 예술적 기질은 많은 연관을 보이는데 그 대표적인 예술가 중 한 명이 버지니아 울프라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처음 정서적 문제가 찾아온 것은 만 13살 때 어머니의 사망 때인 것으로 추정되고 두 번째로는 1904년 아버지의 사망 때인 것으로 추정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첫 소설 항해가운데 3부 정겨운 블룸스버리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새들이 그리스어로 합창을 하고 있고, 에드워드 왕이 입에 담을 수 있는

가장 상스러운 욕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에 대해 저자는 새들이 그리스어로 노래하는 것은 전형적인 조증 삽화의 환청과는 양상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증상이기 때문에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117~118p 참조)


임상심리학적 시각에서 작품을 볼 수 없는 일반적 독자인 내가 저 문장을 읽었다면 특별할 게 없는 수많은 문장 가운데 하나로 읽고 지나쳤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는 가벼운 의구심과 함께 말이다.

이제는 이 책의 저자가 설명해준 만큼은 준비라면 준비를 하고 읽을 수 있어 조금은 더 작품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다만 이 책의 아쉬운 점이라면 200여 페이지의 한정된 지면 관계상 어쩔 수 없이 일부분에 관해 비교적 간략한 설명이란 것인데 대중서라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로써는 벽돌책스럽더라도 누군가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을 한 책을 출간해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댈러웨이 부인의 더블셉티머스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동안 여러 차례 힘든 시기를 견뎠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신경증과 정신증 그리고 다양한 증상을 경험했고, 일생을 정신장애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그렇듯이 정상과 비정상, 제정신과 광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이러한 고민을 잘 반영하고 있는 인물이 댈러웨이 부인에 등장하는 셉티머스라는 퇴역 군인이라고 한다



소설 속의 중요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머스는 단 한 번도 직접 만난적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버지니아 울프는 이 두 사람을 더블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 말은 뿌리가 하나인 두 이파리로 비유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이 자살하는 것으로 소설을 끝맺으려고 했지만 셉티머스가 죽는 것으로 결말을 바꾸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셉티머스는 다양한 정신 질환 증상을 겪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버지니아 본인의 경험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한 인간으로써 버지니아 울프가 겪었던 증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고 이 점이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특이점이겠구나 싶었다

증상을 직접 겪은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고 그 사람이 버지니아 울프였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었다.


버지니아 울프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그가 남긴 유서를 한번 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저자는 그 유서 속 문장들을 자살학 이론들로 한번 유추해보길 바란다고 했는데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라도 이 책에서 설명한 것만을 읽고도 유서의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나 사람은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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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걸어가
이상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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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읽다 던졌다
워프에 이어 2연타
이젠 손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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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 시인선 135
이원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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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이 날아갈 정도의 바람이 불어요

제비 목소리로 귀는 막겠지만

밤엔 지붕이 있는 거나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눈을 뜬 거나 감은 거나 마찬가지로

어두워요


어두운 건 밤의 장점이에요


깊은 맛이라는 개념은 얕은 물에만 있는 것 같아요

_일부



오늘은 바람이 미친듯이 하루종일 불고 있다 어두운 밤이 되어서도 바람은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바람소리는 창밖에서 더 기세를 올리고 있다

바람하면 떠오르는 건 제주다

내가 제주에 관해 가지고 있는 기억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바람에 관한 것이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완만한 내리막을 가고 있었는데 제주의 바닷바람에 자전거가 내려가지 않고 심지어 위로 밀려 올라갈 지경이었으니 그 기억은 쉽사리 잊힐 게 아닌 것이다

진짜 지붕이 날아갈 정도의 바람이 제주에 자주 불 것은 팩트인 것이고 이 표현은 시적으로 과장된 것이 아닌 것이고 제주에서 생활해본 사람의 솔직한 경험이란 것이다

제주와 바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일텐데 시집을 읽다가 그 바람이 등장하는 바람에 리뷰의 시작이 바람이야기가 되었다






시인 이원하는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할 당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등단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이제 총 54편의 시가 담긴 첫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를 최근 읽어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시인의 첫 시집을 읽는건 흥미로운 일이다


어깨너머로 듣기로 시인의 이력이 다소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들었다

일반적인 국문과나 문창과 출신도 아니며 작가를 꿈꿔왔던 문학소녀도 아니었다고 한다

미용고를 졸업해 미용실 스태프로도 일하고, 영화 <아가씨>에 뒷모습이 살짝 등장하는 보조 연기자로 출연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이력을 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시인의 시는 상투적 표현이 되겠지만 새로웠다.

일단 표제작이자 등단작을 한번 읽어 보고 이야기 해보자.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

내 뒤에 놓인 물그릇이 자꾸 쏟아져요

이게 다 등껍질이 얇고 연약해서 그래요

그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사랑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어요,

발전에 끝이 없죠


매일 김포로 도망가는 상상을 해요

김포를 훔치는 상상을 해요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


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라 고백한 시가 뽑혔을 때, 문단은 대체 이런 시인이 어디 숨어 있다 나타났냐며 술렁댔다. 이 놀라운 신인은 데뷔 첫 해 문예지 등의 청탁만으로 44편의 시를 지었고 출판사 사정으로 1년 늦춰진 걸 감안해도 데뷔 2년만에 첫 시집을 내놨다. 첫 시집은 출간 일주일 만에 벌써 3쇄를 찍었다.


_한국일보 2020. 4.23



일단 시집을 펼쳐 차례 페이지를 보면 페이지를 잘못 펼쳤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시들의 제목이 길어서 그 자체가 한편의 시인가 싶은 시각적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다. 차례는 그렇다 치고 많은 시들이 경어체를 쓰고 있다. 경어체로 끝나는 시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원하의 시들은 그럼에도 경어체이기 때문에 더 맛이 사는 것 같아 경어체여야만 하는 것이란 걸 읽으면서 느끼기도 했다

4부로 나뉜 구성에 각각의 부제목이 ’ ‘’ ‘’ ‘이다. ‘새싹눈물로 읽을 수도 있고 새싹눈물로 읽어도 되는 부제목들이다.



욕심 같아서는 수십 편의 시들을 많이 소개하고 싶다. 그만큼 오랜만에 아주 흡족한 시집을 만났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역시 시집을 직접 손에 쥐고 읽어보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 인상적인 부분을 아껴 소개해 보도록 한다.



나는 바다가 채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같다


/.../

아파도 도달해야만 하는 지점을 기억하는데

나는 자꾸만 때를 미루고 있습니다

치과나 병원이면 이렇게 미루지 않았을 겁니다

차오르다 차오르다 뚜껑만 닫으면 되는데

그게 안 됩니다


손수건 한 장이 나를 안쓰러워합니다


손수건 한 장은

아슬아슬하고 별것 아닙니다


이러다가는 내일도

바다가 나를 채갈 겁니다

자꾸 울면

내 눈에만 보이던 게

내 눈에만 안 보일 겁니다


_<나는 바다가 채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같다> 부분



코스모스가 회복을 위해 손을 터는 가을


/.../

휘둘리며 사는 삶에는

애초에 비스듬하게 서 있는 것이 약이니까요


_<코스모스가 회복을 위해 손을 터는 가을> 부분



29에 등단하고 지금 서른 초반의 시인이 지어내는 시와 그 행과 행간에 숨겨놓은 여백들에 나는 새삼 놀란다. 시 전체를 읽어야 맥락을 보고 제대로 느끼겠지만 궁금하다면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든 주문 버튼을 누르자.

시인의 간단한 프로필 이외에 개인사를 알 수는 없고 쉽게 쓰여지는 시는 없겠지만 어떤 한 문장과 그 문장을 이루는 낱말과 그리고 띄어진 공백들이 채워지는데는 쉽지만은 않았겠구나 짐작해 본다.


시집 제목을 의심하지 않은 당신이라면 시인이 제주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시집을 읽었을 것이다. 이 시집엔 제주에서 생활해봐야만 쓸 수 있는 시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원하 시인은 첫 시집을 낼 때까지 제주에 머물 작정이라고 했다.


도시로 돌아오면 시가 망할 것 같아요. 시로 쓸 색()이 없어서요. 저에게 시는 삶이에요. 보고 겪은 것만 시로 쓰거든요. 제가 걸어가지 않으면 시도 멈춰 버려요.”

사실은 술이 세요. 소주 두세 병 마시면 기분만 살짝 좋아져요.” 어쩐지 배신감이 든다. “시로 엄살을 부려 본 거예요. 지난해 5월 혼자 제주로 이사했는데 너무 힘들었거든요. 벌레가 너무 많아서요. 벌레 발 소리에 잠에서 깰 정도였어요.”


한국일보 인터뷰 2018.2.13.


첫 시집이 나온 지금 시인은 제주에 살지도 않고 사실 술도 좀 세다고 한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시인은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면 부다페스트로 떠날 예정이라고 하며 조만간 시인의 산문집이 출간될 예정이라고도 한다.

장담까지 아니더라도 현재 대중 독자들과 평단으로부터 가장 각광 받는 시집이자 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제주를 떠나 부다페스트로 갈 예정인 시인이 다음 묶을 시집에 과연 어떤 제목을 지을지 그리고 어떤 시들이 지어질지 시집을 읽은 독자라면 나와 비슷한 생각이지 않을까 한다. 한 편을 더 읽어 본다.



싹부터 시작한 집이어야 살다가 멍도 들겠지요


낑깡을 얼마나 크게

한 입 베어 물어야

얼떨결에 슬픔도 삼켜질까요


그리고 어찌해야 그 슬픔은

자신이 먹혀버린 줄 모를까요


노을이 추운지

희끗희끗 몸을 떠네요


떠는 건 진심이지요

겨울이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요

생각으로는 어찌 될 수 없는 일이지요


이렇게 횡설수설하며 걷다보면

횡설수설을 들려주고 싶은 집 앞에

도착하지요


집 앞에 서니

집이 참 멀어 보입니다


진심이란, 집 안에 없고

내 안에 있기 때문이지요


집이 여전히 멉니다


진심은 없던 일이 될 수 있지만

집은 그럴 리 없어서지요


싹부터 시작된 집이 있다면

내가 원하지만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나아요


싹부터 시작된 모든 것들은

온종일 곁에 두면 서로 멍만 드니까요


시 전체가 좋아서 읽어 본 것이지만 특히나 다음의 연이 오래 남아 있다.


떠는 건 진심이지요

겨울이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요

생각으로는 어찌 될 수 없는 일이지요


/.../


싹부터 시작된 모든 것들은

온종일 곁에 두면 서로 멍만 드니까요



겨울에 우리가 흔히 개 떨듯이 떨다 왔다고 한다. 그렇게 겨울에 개 떨 듯이 이를 부딪히며 떨어본 사람은 안다. 일부러는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그 떤다는 것을 진심에 비유할 수 있는 시적인 감각이나 삶의 그런 순간을 시로 옮길 수 있다는 건 나는 단순 글쓰기를 잘한다고 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연에서 온종일 곁에 두면 서로 멍만 드는 사이를 싹부터 시작된 모든 것들이라고 하며 관계에 대해 보이는 회의적 시각은 시인의 인생 가운데 어떤 그늘에서 비롯되었을까 싶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시의 어떤 문장이나 몇몇 연을 읽다가 읽기를 멈추게 하는 시들이 많다면 그 시집은 자기 자신과 코드가 맞는 시집일 것이다. 그렇게 한 시인의 중독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시집에 대한 느낀점들을 이야기해보았는데 이것은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이렇게 딱 꼬집어 말하고 싶은 부분들과 그 부분들이 모인 시가 그야말로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는 시집이기 때문에 호들갑스럽게 소개해 보았다. 당신들도 한번쯤 만나봤으면 하는 시집이다.

언제나 그렇듯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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