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 김영하 / 문학동네 / 252쪽

(2013. 05. 31.)

 


  디카프리오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가 개봉하면서 영화 덕분에 인터넷 서점들에선 여러 출판사에 출간된 개츠비들이 사은품을 덧붙여 50%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고 있어서 이 책을 구매하기에 요즘이 아주 절호의 찬스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이유는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상실의 시대>에서 아래 내용을 읽고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싶어 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싶다.

 

  "열여덟 살의 나에게 최고의 책은 존 업다이크의 <켄타우로스>였는데, 몇 번 되풀이해 읽는 사이에 그것은 처음의 광채를 약간씩 잃게 되었고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게 베스트 원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는 그 후 줄곧 내게는 최고의 소설로 남아 있었다.
   나는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부분을 오랫동안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는데, 단 한번도 실망을 맛본 적이 없었을 만큼 단 한 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는 없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또 있을까 싶었다."


   내가 처음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민음사'에서 나온 책이 이었는데, 생각보다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만큼 많은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역시 나의 문학적 감수성은 아직 미약한 것일까 잠깐 자괴감에 빠졌다가 바로 잊고 있었는데…….
   어느날 소설가 김영하님의 팟케스트를 듣다가 김영하님께서 직접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는 얘기를 듣고 언젠가는 꼭 사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요즘처럼 아주 저렴하게 개츠비가 판매되는 절호의 찬스에 그동안 눈으로 찍어 놓았던 문학동네 "위대한 개츠비"를 구매하고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번역이란 창작과도 같아서 번역가에 따라 그 느낌이 다 달라질 수 있고, 어느 번역이 틀린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성이 반영된 또 다른 하나의 문학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소설을 쓰시는 분이 번역한 것이라 그런건가, 민음사 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느낌들이 나를 뒤엎어 버렸다. 비록 번역본이긴 하지만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문장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감동 그 자체였다…….
   아직 3/2밖에 읽지를 못했는데도 좋아하는 구절을 표시하는 포스트잇이 책 옆면에 가득 차 넘쳐다고 있다. 드디어 상실의 시대 주인공의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지금보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 아버지가 충고를 한마디 했는데 아직도 그 말이 기억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서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말이 훨씬 더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따. 그런 식으로 우리부자는 말 한 마디 없이도 서로의 뜻을 이상하리만치 잘 알아차리곤 했다.
(p. 11)


 
   인간의 개성이라는 게 결국 일련의 성공적인 제스처라고 한다면, 그에겐 정말 대단한 것이 있었다. 1만 마일 밖의 흔들림까지 기록하는 지진계처럼 그는 인생에서 희망을 감지하는 고도로 발달된 촉수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미명하에 흔히 미화되고 하는 진부한 감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이었으며, 지금껏 그 누구도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성질의 것이었다. 아니,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인간들의 설익은 슬픔과 조급한 기고만장에 대해 내가 잠시나마 관심을 일게 되었던 것은 개츠비를 삼킨 것들, 그리고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부유하는 더러운 먼지들 때문이었다.
(p. 13)



 "너무 행복해서 몸이 마, 마비돼버렸어."
그녀는 대단히 재치 있는 말을 했다는 듯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나를 올려다보며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늘 이런 식이었다. 그녀는 귓속말로, 턱으로 균형을 잡고 있는 여자의 이름이 베이커라고 속삭였다(데이지가 귓속말을 하는 건 사람들을 자기 쪽으로 가까이 오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말도 안 되는 험담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 귓속말의 매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p. 20)


 

   그가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사려 깊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긴 미소였다. 그것은 변치 않을 확신이 담긴, 일생에 네다섯 번쯤밖에 마주치지 못할 특별한 성질의 것이었다. 잠깐 전 우주를 직면(혹은 직면한 듯)한 뒤, 이제는 불가항력적으로 편애하지 않을 수 없는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노라는 그런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바로 그만큼을 이해하고 있고,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만큼 당신을 받고 있으며, 당신이 전달하고 싶어하는 호의적 인상의 최대치를 분명히 전닯다았노라 확신시켜주는 미소였다. 그리고 바로 그순간, 그 미소는 홀연 사라져버렸다.
(p. 65)

 


   빵빵대는 클랙슨 소리는 크레셴도로 커져만 가고, 나는 몸을 돌려 잔디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다. 나는 뒤를 힐끗 돌아다보았다. 웨이퍼 과자 같은 달이 개츠비 저택을 비추고 있었다. 달빛은 아직 훤한 개치비네 정원의 소음과 웃음소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밤을 밝히고 있었다. 갑자기 창문과 커다란 문으로부터 공허함이 넘쳐나, 포치에 선 채 정중히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집주인의 실루엣에 완벽한 고독을 더했다.
(p. 74)



   거대한 다리를 통과하는 동안, 대들보 사이를 통과한 햇빛이 지나가는 자동차들 위에서 쉴 새 없이 번쩍거렸고, 다리 건너로는 흰 각설탕 더미처럼 생긴 도시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냄새 없는 돈으로 지어 올리려는 소망으로 빚어진 도시가. 퀸스버러 다리 위에서 보이는 뉴욕은 처음 보는 이에게는 언제나 세상의모든 신비와 아름다움, 그것에 대한 최초의 담대한 예언처럼 느껴진다.
(p. 88)

 


   그곳에 앉아 그 옛날 미지의 세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개츠비가 데이지네 집의 잔교 끝에서 빛나는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의 놀라움에 생각이 이르렀다. 바로 이 파란 잔디밭까지 오기까지 그는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 이제 그의 꿈은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다. 그는 몰랐다. 자신의 꿈이 어느새 자기 등 뒤에, 저 뉴욕 너머의 혜량할 수조차 없는 불확실성 너머, 밤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미국의 어두운 들판 위에 남겨져 있었다는 것을.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지기만 하는 황홀한 미래를. 이제 그것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뭐가 문제겠는가.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어느 찬란한 아침...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 새 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p. 224)

 
==================================================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사) 중에서


   열여덟 살의 나에게 최고의 책은 존 업다이크의 <켄타우로스>였는데, 몇 번 되풀이해 읽는 중에 그것은 처음의 광채를 약간씩 잃게 되었고,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게 베스트 원의 자리를 양보하게끔 되었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는 그 후 줄곧 내게 있어서는 최고의 소설로 지속되었다.
나는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부분을 한바탕 읽는 것이 습관처럼 돼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실망을 맛본 적이 없었을 만큼 단 한 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는 없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또 있을까 싶었다.


   어느 날 내가 식당의 양지쪽에서 볕을 쬐며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자니까, 옆에 와 앉아서 무엇을 읽느냐고 물어 왔다.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했더니 재미있냐고 물었다. 훑어 읽는 건 세 번째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있다고 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하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는 나 같은 건 따라잡을 수도 없을 정도로 굉장한 독서가였는데,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원칙적으로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을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지. 인생은 짧아."
"나가사와 선배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지요?"
"발자크, 단테, 조셉 콘래드, 디킨스"하고 그는 막힘없이 잘도 대답했다.
(p. 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 미제라블 1
빅토르 위고 / 방곤 / 범우사 / 434쪽

(2013. 05. 09.)

 

 

 

※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불쌍한, 비참한 사람들

 

 

  사실 여부는 예외로 치더라도 어떤 사람에 관한 세상 소문은 흔히 그 사람의 생애나 특히 운명에 있어서 그 사람의 실제 행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p. 22)

 

 

  도둑이나 살인자를 결코 무서워해서는 안돼. 그건 외부의 위험일 뿐이며, 조그마한 위험이야. 우리들이 두려워할 건 우리 자신이야. 편견이야말로 도둑이야. 악덕이야말로 살인자야. 큰 위험은 우리들 내부에 있지. 우리들의 머리나 지갑을 위협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실로 우리들의 영혼을 위협하는 것이야.
(p. 56)

 

 

  성공이란 참 끔찍스러운 것이다. 진실한 가치로 오해하기 쉬운 그 유사성은 사람을 현혹시킨다. 군중에게 성공은 우월과 거의 똑같은 면목을 가지고 있다. 재능과 쌍둥이같은 닮은 성공은 거기에 속아넘어가는 자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거의 공식적인 철학이 성공의 집에 봉사하러 들어와서, 성공의 제복을 입고 응접실에서 시중을 들고 있다. 성공하라, 하는 것이 학설이다. ‘영달’은 ‘능력’을 가정한다. 투기에서 부를 얻으면 그 사람은 곧 수완 좋은 사람이 된다. 승리한 자는 존경을 받는자. 팔자는 타고나라, 거기에 모든 것이 있다. 운이 좋아야 한다. 그러면 그대는 모든 것을 얻으리라. 행복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대를 위대하다고 믿으리라. 일세기의 광명을 만드는 5, 6명의 위대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동시대의 칭찬은 근시에 불과하다. 도금은 순금이 된다. 누가 되었든 벼락부자가 되기만 하면 상관 없다. 속인은 자기 자신을 숭배하고 속인이게 갈채를 보내는 늙은 나르시스다.
(p. 90)

 

 

  절망한 사람들은 자기 뒤를 돌아다보지 않는다. 그들은 모진 운명이 뒤에 다라오고 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p. 107)

 

 

  인간의 성질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완전히 변하는 것일까? 신에 의해서 착하게 만들어진 인간이 사람에 의해서 악해질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영혼이 운명에 의하여 완전히 개조되고, 운명이 나빴기 때문에 영혼도 나빠지는 수가 있을까? 너무 낮은 천장 밑에 있어서 등뼈가 구부러지듯이, 사람의 마음도 고르지 못한 불행의 압박 밑에서 비틀어져 불치의 추악과 불구로 변화할 수가 있을까? 어떤 본래의 빛이, 이승에 있어서 부패할 수 없고 저승에 있어서 사멸할 수 없는 어떤 거룩한 요소가, 선에 의하여 발전하고, 북돋워지고, 불붙어 타올라 찬연히 빛나되, 악에 의해서도 결코 완전히 꺼지지 않는 그 어떤 거룩한 빛이, 모든 사람의 영혼 속에 없는 것일까? 특히 장 발장의 영혼 속에는 그러한 것이 없었을까?
(p. 145)

 

 

  우리의 인생을 형성하고 있는 그 신비로운 바윗덩어리를 아무리 잘 깎으려고 해도 소용 없는 일이다. 운명의 검은 광맥은 늘 거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p. 307)

 

 

  인간의 양심의 시를 만드는 것은, 설령 그것이 일개인에 관한 것이든, 가장 비천한 사람에 관한 것이든 간에, 모든 서사시를 한데 녹여 하나의 한층 더 훌륭하고 결정적인 서사시를 만드는 것이다.
(p. 331)

 

 

  생각이 한 관념으로 되돌아옴을 막을 수 없음은 바닷물이 해변으로 되돌아오을 막을 수 없음과 같다. 사공에게는 그것이 밀물이라 하는 것이고, 죄인에게는 그것이 가책이라 하는 것이다. 신은 바라를 추켜올리듯이 영혼도 추켜올린다.
(p. 338)

 

 

  사람의 마음은 때로는 거의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바깥만을 바라보고도 만족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삼라만상을 처음 봄과 동시에 마지막으로 본다는 것은, 얼마나 서글프고 심각한 일이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시시각각으로 태어났다 죽었다 하는 것이다. 아마 그는 자기 정신의 가장 어슴푸레한 한쪽 구석에서 이 변화하는 외계와 인간 존재를 견주고 있었으리라. 인생의 온갖 사물은 끊임없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 어둠과 빛은 교차된다. 눈부신 광휘도 다음 순간에는 자취를 감춘다. 사람은 바라보며, 급히 서둘며, 손을 내밀어, 지나가는 것을 잡으려 한다. 매순간이 행로의 모퉁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람은 늙는다. 어떤 동요 같은 것을 느낀다. 모든 것이 어두워진다.
(p. 368)

 

 

  성실과 진지와 솔직과 확신과 의무감 같은 것은 악용될 때에는 끔찍스러운 것이 되지만, 그래도 숭고함을 잃지는 않는다. 인간의 양심에 고유한 그러한 것들의 위엄은 사람을 두렵게 하는 가운데에도 의연히 존재한다. 그러한 것들은 착오라는 하나의 흠밖에 없는 미덕이다. 잔학하기 짝이 없는 광신자의 정직하고도 무자비한 희열 속에는 비통하고도 존경할 만한 그 어떤 광휘가 있다. 엄청난 행복 속에 싸인 자베르는 자기도 모르게, 모든 무지한 승리자처럼 불쌍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선의 해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나타나 있는 그런 얼굴처럼 처량하고 가공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p. 4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이디푸스왕
소포클레스 / 강대진 / 민음사 / 387쪽

(2013. 04. 26.)


 

<오이디푸스 왕>

 

오이디푸스     그가 전에 가졌던 왕권도,
                   그의 참상과 씨 뿌릴 아내도 이어받았으니,
                   - 지금은 그의 머리 위에 불운이 들이닥쳤지만,
                   그가 자식 얻기에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같은 어머니에게 난 자녀들로 인해 함께 묶어
                   주는 끈도 생겨나 있었을 것이요.-
                   그러니 나는 이것을 위해, 마치 내 아버지의 일인 양
                   싸워 나갈 것이고, 그 살인을 저지른 자를
                   잡고자 찾으며 모든 곳을 뒤질 것이오
(p. 36)

 


테이레시아스     내 선언하건대, 그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가장 수치스럽게 어울리면서
                      그 사실을 모르고 있고, 어떤 악에 처해 있는지도
                      보지 못하고 있소.
오이디푸스        그대는 그런 말을 계속 지껄이고도 정말 대가가
                      없으리라 생각하는 게요?
테이레시아스     진리에 힘이 있는 한 그렇소.
오이디푸스        진리에 힘이 있긴 하지. 그러나 당신을 위해서는
                      아니오. 당신에겐 힘이 없소, 당신은
                      귀도, 정신도, 눈도 멀었기 때문이오.
테이레시아스     그대는 불쌍하게도, 곧 이 모든 사람들이
                      그대를 꾸짖을 그런 말로 날 꾸짖고 있구려.
오이디푸스        그대는 영원히 이어지는 밤 속을 헤매고 있구려,
                      그러니 나든 다른 사람이든
                      빛을 보는 사람은 결코 해칠 수 없으리다.
테이레시아스     그대가 나에 의해 쓰러질 운명은 아니기 때문이오.
(p. 43)

 

 

코로스               오만은 폭군을 낳는 법. 오만함이
                       공연히 많은 것으로, 시기도 적절치 않고
                       득도 되지 안는 것으로 지나치게 채워지면,
                       그것은 지붕 꼭대기로 기어올라,
                       깎아지른 필연을 향해 치닫는 법.
                       거기서는 유용한 발도
                       쓸데없도다. 하지만 도시에
                       유익한 경쟁은 결코 업애지 마시길
                       나는 신께 기원하노라.
(p. 75)

 

 

코로스               아아, 필멸의 인간 종족이여,
                       그대들이 살아 있을 때조차 아무것도 아님을
                       내 얼마나 헤아렸던가!
                       대체 누가, 어떤 인간이
                       겉으로만 행복해 보이고, 그러다가
                       기울어 저무는 것 이상의
                       행복을 얻고 있는가?
                       오, 가여운 오이디푸스여, 내 그대의,
                       그대의, 그대의 운명을
                       거울로 삼아, 그 어떤 인간도
                       행복하다 여기지 않으리.
(p. 96)

 

 

코로스          오, 조국 테바이의 거주자들이여, 보라, 이 사람이
                  오이디푸스로다.
                  그는 그 유명한 수수께끼를 알았고, 가장 강한 자였으니
                  시민들 중 그의 행운을 부러움으로 바라보지 않은자
                  누구였던가?
                  하지만 보리, 그가 무서운 재난의 얼마나 큰 파도 속으로
                  쓸려 들어갔는지.
                  그런 필멸의 인간은 저 마지막 날을 보려고
                  기다리는 동안에는 누구도 행복하다 할 수 없도다.
                  아무 고통도 겪지 않고서 삶의 경계를 넘어서기 전에는.

(p. 116)
=====================================
<안티고네>

 


안티고네               나는 네게 명령하지 않을 거고, 앞으로 네가 하고 싶다
                         해도, 함께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거다
                         좋을 대로 하렴, 하지만 나는 오빠의 시신을
                         묻겠어, 이 일을 하다가 죽어도 좋아.
                         누이로서 그의 곁에 누울 거야, 오빠의 곁에,
                         경건한 일을 하고도 범죄자가 된 채, 이곳에 있는
                         자들보다
                         아래 계신 분들의 마음에 들어야 할 시간이 더 기니까.
                         나는 거기 영원히 누워 있어야 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너는, 그 쪽이 더 좋아 보인다면,
                         신들께 바칠 명예는 무시하고 지내렴.
(p. 124-125)

 

 

 

크레온               한 인간 전체의 품성과 기백과
                         판단력은 알기 힘든 것이오, 그가 지배와
                         통치로써 검증되어 드러나기까지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온 도시의 방향을 인도하는 이가
                         최선의 정책을 추구하지 않고,
                         뭔가가 두렵다고 혀를 잠그고 있다면,
                         내게는 그런 자가 예나 지금이나 가장 비겁한 자로
                         보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누가 자기 조국보다 친구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나는 이 사람을 아무 가치
                         없는 자로 여기오.
(p. 132)

 


크레온               지나치게 강한 의지는 쉽사리
                         꺾인다는 걸 알기 바라오. 굳디굳은
                         쇠라도 불 속에서 지나치게 단단하게 달궈지면
                         부스러지고 깨지는 것을 아주 흔히 볼 수 있을 것이오.
                         나는 기세 높은 말들이 작은 재갈로
                         다스려진다는 걸 아오.
(p. 148)

 

 

하이몬               마음속에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품지 마십시오.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만 옳고 다른 것은 옳지 않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저 혼자만 현명하다고,
                         혹은 자신이 다른 누구도 갖지 않은 혀나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열어 보면 빈 껍데기로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현명한 사람이라 해도, 많이 배우려 하고
                         자기를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선 겨울철 격루에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몸을 굽혀 가지들을 구하는지 보시지요.
                         반면에 저항하는 것들은 뿌리째 뽑히고 맙니다.
                         또 마찬가지로 배의 돛 아래 줄을 계속 당기며
                         바람에 전혀 굴복치 않는 사람은 결국 배가
                         뒤집혀, 남은 여정을 뒤집힌 의자에 앉아 항해하게
                         되지요.
(p. 161)


 

코로스               현명함은 행복의 으뜸가는
                         바탕이로다. 그리고 신들에 관해서는
                         아무것에도 불경스럽지 말 것이로다. 지나치게 오만
                         한 자들의
                         방자한 말을 큰 타격을
                         희생을 치르고서
                         노경에야 현명함을 가르치는 법이니.
(p. 200)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남성이 부친을 증오하고 모친에 대해서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 그리스 신화 오이디푸스에서 딴 말로서 S.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서 쓴 용어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에피카스테)의 아들인데 숙명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의 왕이 되었다. 어머니인 줄 모르고 결혼한 그들은 그 사실을 알자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기 눈을 뺀다.

  프로이트는 유아는 이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극복하고서야 비로소 성인(成人)의 정상적인 성애가 발전하는 것이지만 이를 이상적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일반적으로 신경증환자는 이 극복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콤플렉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신프로이트파의 학자들은 이 콤플렉스가 사회적 원인과 가족 내의 대인관계로부터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학자 중에서 E.프롬은 부친의 권위(權威)가 강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이러한 콤플렉스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K.호르나이는 양친(兩親)에 대한 의존 욕구와 적의(敵意)의 갈등에서 생긴 불안이 원인이 되어 이 콤플렉스가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여자 아이가 부친에 대하여 성적 애착을 가지며 모친에 대하여 증오심을 가지는 성향을 엘렉트라콤플렉스(Electra complex)라고 한다.

[출처] 오이디푸스콤플렉스 | 두산백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외 (소포클레스 / 천병희 / 문예출판사)

 

 

 

 

 

 

 

 

 

 

 

 

 

* 그리스 비극 걸작선 (소포클레스 외 / 천병희 / 숲)

 

 

 

 

 

 

 

 

 

 

 

 

 

 

*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 천병희 / 숲)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
김의기 / 다른세상 / 360쪽

(2013.04.19.)

 

 

* 나의 고전읽기의 시작이 되어 준 책

* 저자가 읽은 대표적인 고전 30권에 대한 이야기와

  저자가 추천하는 서양고전 100권의 목록도 함께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나는 독서광이다. 평생 책을 읽고 살아왔다. 아니, 책만 읽고 살아왔다. 한평생 내 뒤통수만 보고 살아온 아내는 그런 나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언젠가 그놈의 책들을 마당에 쌓아놓고 불을 지를 날이 오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새 책을 읽으면 새 애인을 만나는 것 같고,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 옛 애인을 만나는 것 같다.
  이는 내가 항상 주장하는 지론인데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은 30년간 기술한 나의 독서 노트다. 업무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진한 커피 향처럼 은은하고 깊은 맛이 나는 책들,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들을 선정하여 내 느낌을 가볍고 경쾌하게 서술하였다.
(p. 9)

 

 

  작가는 자신이 받은 감동을 독자와 나누기 위해 책을 쓴다. 감동을 가슴에 묻어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감동을 독자와 나누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문장 한 줄 한 줄에는 작가가 발견한 놀라운 세계가, 단어 하나하나에는 그것을 표현하는 데 성공한 작가의 환희가 숨어 있다. 작가는 가능하면 보다 큰 감동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기를 원한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의 작가들은 모두 큰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p. 10)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은 고전으로 분류되는 책들이다. 모두가 잘난 책들이다. 밤하늘에 가득 찬 별들이 잔칫상을 차려놓고 내가 제일 예쁘다. 내가 제일 밝다, 내가 제일 별빛이 곱다고 소리치며 싸우는 것 같다. 저마다 내가 역사상 최고의 작품이라고 양보 없이 사우고 있다. 내가 제일 재미있다, 내가 제일 감동을 준다, 날 좀 보세요
(p. 11)

 

 

  필자가 다양한 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눈은 부드럽다는 것이다. 그들은 생각하는 눈을 가졌다. 물론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말을 들으면 그 말이 그 사람의 내부로 들어가서 한 바퀴 회전하는 것을 느낀다. 책을 읽는 이들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들은 책 속에서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고, 인생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들이다. 이들과는 오래도록 무슨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다.
(p. 11)

 

 

  사르트르는 ‘인간은 미래를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존재’라고 말했다. 인간의 운명은 미리 정해진 게 아니다. 자신이 스스로 미래를 계획하고 창조해야 한다. 미래는 도달하기 어려운 먼 곳이 아니다. 미래를 향해 자신을 던져라. 그리고 도달하라.
(p. 14)

 

 

  이 서른 권의 책과 문장들은 나의 내부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이 책과 문장들은 나를 만들었고, 나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나는 이 책들과 끝없이 논쟁하며 나를 키워갔다. 이 책들을 다시 읽을 때마다 작가가 만든 비밀의 세계를 하나씩 새로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들은 원래 작가의 것이지만 내 안에서 살고 내안에서 춤추며 나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내 삶을 지탱해 온 힘이었다.
(p. 343)

 

 

<추가로 읽으면 좋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
알랭 드 보통 / 이레 / 397쪽

(2013. 03. 31.)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높은 지위를 얻기가 어려우며, 그것을 평생에 걸쳐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어디서 어떤 피를 가지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지위가 날 때부터 고정되는 사회가 아니라면, 지위는 우리의 성취에 달려 있다.
  실패에서 굴욕감이 생긴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우리의 가치를 납득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성공한 사람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할 처지에 놓였다는 괴로운 인식에서 나온다.
(p. 9)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p. 21)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세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남의 관심 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p. 22)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p. 38)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p. 66)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p. 80)

 

 

  서양이 2,000년간 물질적으로 진보했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왜 사람이 가난하고, 무엇이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결정하느냐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응보의 관점이 강력하게 개입하게 되었고, 그 결과 낮은 지위에 처한 사람은 점차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얻는 데 불안을 느끼는 이유가 될 수 있다.
(p. 85)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족의 유대, 우정, 성적인 매력 때문에 가끔 물질적 동기가 부차적인 것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신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무모한 낙관주의자일 것이다. 인간은 웃어줄 만한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좀처럼 웃어주지 않는 법이다.
(p. 136)

 

 

  농담은 비판의 한 방법이다. 이것은 오만, 잔혹, 허세에 대하여, 미덕과 양식으로부터 이탈한 것에 대하여 불평을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유머는 불만을 제기하는 데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겉으로는 즐거움만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은근히 교훈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만화는 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설교를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만화를 보면서 낄낄거리다가 권위에 대한 불만 토로가 적절하다고 인정하게 된다.
(p. 222)

 

 

  웃음은 최고의 익살꾼의 손에 쥐어지면 도덕적 목적을 획득하며, 농담은 다른 사람들이 성격과 습관을 바꾸도록 촉구하는 수단이 된다. 농담은 정치적 이상을 표현하고, 더 공정하고 더 멀쩡한 세상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새뮤얼 존슨이 말했듯이 풍자는 “악이나 어리석음을 비난하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존 드라이든의 말을 빌리면, “풍자의 진정한 목적은 악의 교정”이다.
(p. 224)

 

 

  사회의 목소리 큰 사람들이 선험적 진리로 여기는 견해들이 사실은 상대적인 것이고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정치적 의식이 깨어난다. 그런 견해들은 자신 만만하게 주창될 수도 잇고, 나무나 하늘처럼 존재의 기본 구조에 속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 어떤 정치적 관점에 따르면 –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현실적 또는 심리적 이해관계를 옹호하고자 만든 것이다.
(p. 277)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지위에 대한 불안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좋은 인생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실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야심을 품고, 어떤 결과들을 선호하고,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데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성공적인 삶과 성공적이지 못한 삶 사이의 공적인 차이를 인정할 경우 치를 수밖에 없는 대가다.
(p. 3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