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3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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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부재의 파국
 페터 한트케- ‘관객모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읽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작가의 전부이다. ‘불안’이란 키워드에 사로잡혀 읽게 된 그의 작품은 낯설다. ‘문학은 언어가 가리키는 사물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이다’라는 말처럼 이 책은 언어자체를 물고 늘어진다. 주인공 요제프 블로흐가 벌이는 사건은 여기서 대수롭지 않다. 작가는 언어가 가리키는 사건에 관심이 없다. 오직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주인공의 언어가 그 중심에 똬리를 틀고 있다.  


 이 책은 읽기가 상당히 거북하다. 처음부터 말은 삐걱거리고 주변인물과 제대로 된 대화는 없다. 친숙한 소설의 문법을 탈피하는 소설에서 대화의 양태를 주목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요제프 블로흐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대화를 나누지 못하니 요제프 블로흐가 벌이는 의미잔치란 제멋대로 의미를 부여하는 일뿐이다. 언제나 그의 말은 의미의 과잉으로 넘쳐난다. 대화를 하고 있으나 대화를 하고 있지 않은 모순. 
 

 소통부재는 소설 전체를 가로지르는 문제이다. 마지막에 패털티킥을 앞둔 골키퍼를 등장시키는 장면은 주제를 집약해서 보여준다. 관중들의 환호성도 선수의 외침도 이 골키퍼를 구원할 수 없다. 스스로 모든 것을 짊어저야 하는 골키퍼처럼 주인공은 소설의 처음과 끝에서 혼자이다.

 불안은 지속된다, 하지만...
 대화할 수 없기에 혼자이다. 요제프 블로흐는 과거 타인과 맺은 기억은 있지만 현재는 없다. 그에게 불안이란 피할 수 없다. 불안이란 절박한 주인공의 상황을 규정짓는다. 하지만 그 불안에서 벗어날 해법을 알지 못한다. 이 불안이 절망적인 이유는 주인공을 옥죄는 기분에서 벗어날 구원의 손길이 없어서이다. 
 

 작가가 벌이고 있는 말잔치는 소통부재의 현대사회를 비판한다. 요제프 블로흐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말하고 있지만 듣는 이가 없는 시대. 작가가 보여주는 문제에 작가는 에둘러 해법을 말한다. 그 방법이란 소통의 복원이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관계회복. 결국 인간이란 사이에서 의미를 부여받는 법이다. 대화의 복원은 인간의 정체성을 회복할 때 가능하다. 
 

 패터 한트게의 소설은 독특하다. 언어를 말하지만 존재를 말한다. 보통의 소설은 존재를 전면에 내세운다. 인물, 사건, 배경이 어우러져 사건을 만들고 존재를 드러낸다. 하지만 한트케는 언어자체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다. 그에게 언어는 존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작가에게 문학이란 언어를 통해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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