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민주주의인가 - 한국 민주주의를 보는 하나의 시각, 민주주의총서 06
최장집.박찬표.박상훈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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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0년대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희망의 언어였다면, 90년대에는 실험의 언어였으며 2000년대에는 절망의 언어가 되었다. 최장집 교수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개정판에서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최장집, 2005)고 말한 것처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였고, 이는 정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였다. 그렇다면 왜 희망의 언어였던 민주주의는 이처럼 불신 받게 되었는가? 저자들은 그 이유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정당체계가 제대로 확립되지 못하였음을 이 책에서 지적하며, 올바른 민주주의의 상을 정당민주주의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정당민주주의를 거칠게 정의하자면 한 공동체를 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로 분류하여, 시민사회의 의견이 정치사회로 대리, 대표되고 그것이 정치사회 내부에서 토론과 합의를 통하여 국가의 정책으로 시행되는 것이다. 정당은 정치사회의 가장 중심적 행위자로서 시민사회의 모든 정치적 균열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지배적인 정치적 균열을 반영하게 된다. 저자들은 이런 정당민주주의의 상에 대해서 설명하며, 이러한 정당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정당민주주의는 한국 민주주의를 분석함에 있어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예컨대 97년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와 고용불안이 시민사회의 지배적 균열구조가 되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말로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지배적 균열구조로서의 양극화와 고용불안은 정치사회에서 배제되었고, 결국 많은 국민들이 노무현 정권에 대해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고 현 정권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또한 양극화와 고용불안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시민들은 정치사회가 이러한 균열구조를 반영하지 않음으로서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전망적 투표’를 행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대통령 후보 중 이명박 씨를 지지한다고 대답했다는 한 설문조사의 내용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정당체계가 시민사회의 정치적 균열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으로써 정당체계는 안정화되지 못한 채, 이합집산이 반복되고 있으며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정치가 아닌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는 인물정치 혹은 명사정치가 행해지고 있다. 이는 민주개혁세력에 차기 대선주자로서 유력하게 거론되었던 혹은 되고 있는 사람들이 정당에서 오랜 시간 정치적 경험을 쌓고, 능력을 검증받은 후보들이 아니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나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과 같은 외부인사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처럼 저자들이 제시하는 정당민주주의론은 분명 현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원인과 그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고 생각되나 당위에 그친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의 짧은 역사적 지식에 비추어 봤을 때 역사적으로 정당체계가 바뀌기 위해서는 대공황이나 전쟁과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의 혁명적 변화가 있거나 독일의 녹색당과 같이 대중운동에 의한 정당체계의 변화, 이렇게 두 가지의 경우가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체계가 불안정한 한국의 민주주의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대중운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물론 ‘운동정치’에 대해 비판적 입장에 계신 저자들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면 현재의 정당체계를 정상적인 정당체계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닌 다른 방법을 제시해줬어야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있는 초국적 자본에 대한 언급이 부재한 점은 최장집 교수님의 열렬한 팬인 나로서는 매우 아쉽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 속에 근대국민국가의 경계 속의 민주주의체제는 그것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권력인 자본에 의해 그 기능이 후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시민들은 그들의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민주주의체제가 작금의 초국적 자본에 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폐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고민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매우 크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주주의론의 대부인 최장집 교수님의 글은 현 한국의 상황에서 매우 의미 있으며 또한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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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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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그것도 사회로 곧 진출해야만 하는 대학 4년 졸업반, 그런 나에게 “88만원 세대”는 상당히 충격적인 책이었다. 사실 이 책에서 논하고 있는 내용들의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으로 인해 소위 좋은 직장이라고 불릴 만한 곳에 취직할 확률은 매우 낮아졌으며, 그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고 하더라도 정년을 보장 받는다는 것은 꿈조차 꾸기 힘든 ‘환상’이며, 그나마 가장 안정적이라고 이야기되는 공무원이라는 조직마저 점차 사회적으로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 땅의 20대들은 엄동설한에 쫓겨난 흥부마냥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은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20대라면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은 바로 이 문제를 세대의 문제로 보고 “세대 간 경쟁”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보여줌으로써 여태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현재 한국의 20대들은 20대의 몫을 키우는 세대 간 경쟁을 하지 않고 정해진 몫에서 자신의 몫을 더 챙기려는 세대 내 경쟁에 주력하고 있으며, 20대의 몫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므로 20대 사이의 경쟁은 단순한 경쟁이 아닌 승자 독식 게임의 형태로 진행되면서 점점 더 치열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런 경쟁은 현재의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본질적인 방법이 아니라 단순히 개미지옥에서 누가 조금이나마 더 오래 살 수 있느냐는 참으로 암울한 경쟁임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쟁은 지금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세대 간 경쟁일까? 나는 세대 간 경쟁이라는 개념이 20대의 삶을 분석하는데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해법으로서는 큰 의미를 갖기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공고에서 대학으로 진학한 특수한 이력 덕택에 나에게는 비슷하지만 꽤 다른 두 부류의 친구들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공고시절의 친구들로서 실업계의 특성상 많은 친구들이 졸업을 하자마자 취직을 하여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진출한 친구들이 한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나 연·고대처럼 한국사회에서 일류는 아니더라도 나름 자신들이 속한 외대가 이류는 되며, 자기가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소위 말하는 이름 있는 기업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강하게 가진 친구들이 다른 한 부류이다. 물론 이 둘은 개미지옥에서 누가 먼저 죽는지 경쟁하는 수준의 차이밖에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둘이 대한민국 20대의 상·하위를 대표한다고 했을 때, 어디까지나 내 경험에 의거한 생각에 불과하지만 20대는 결코 하나로 묶일 수가 없다.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는 말처럼 20대들이 뭉칠 수 있다면 세대 간 경쟁이라는 개념이 말 그대로 “절망의 시대에 희망의 경제학”이 될 수 있겠지만 “88만원 세대”인 20대는 이미 하나의 20대가 아니다. 정치외교라는 전공 덕택에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친구들하고 술을 마실 때, 우리의 암담한 현실에 대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는데,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즉 “88만원 세대”에 하위를 차지하고 있는 친구들은 그런 현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이 받는 임금이나 대우에 대해서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그저 투덜거림에서 그쳤다. 취직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자신들이 취직한 것처럼 취직할 자리는 많은데 눈만 높아서 취직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낙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또한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에 대한 인식이 낮아 그것을 큰 문제로 보지 않으며 심지어 나의 간곡한 만류와 설득 작업에도 불구하고 친구들 중 하나는 홈에버 방학점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참고로 이 친구는 중학교 때 친구다.) 이처럼 세대 내 경쟁에서 뒤처진 친구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대학교의 친구들은 다른 의미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는데, 그것은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자신은 상위 5%에 들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으로 자신이 처한 이 상황을 세대 내 경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간략하게 말해서 20대는 그들이 나름 상위에 위치하던 하위에 위치하던 어떤 의미에서든지 현재의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규항이 말하는 것처럼 자본의 파시즘에 의해 이들이 아무런 의식도 없어져서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현재 대부분의 20대에게 사회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결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재하며 그런 상황 속에서 세대 간 경쟁이라는 개념은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는 데는 유의미 할 수 있지만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부생의 필연적 한계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88만원 세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세대 간 경쟁이라기보다는 “좌파 대 우파, 복지 대 성장, 대안 세계화 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대결구도라고 생각한다. 결국 “88만원 세대”의 몫이 이렇게 줄어들게 된 것은 97년 외환위기와 그 이후 엄청난 속도로 전개된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이 주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88만원 세대"는 이 땅의 20대에 대한 매우 훌륭한 보고서이지만, 행동지침서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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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k182s 2007-11-0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같은시대에 좋은책이죠,,어제 공개강의갔다왔는데 ,,결론은 희망없다..였습니다..
흠...이러다 파시즘가거나,전쟁나거나 암울하더군요,뭐 희망없다라는결론이 도리어 사람들한테 정신바짝차리게할지도 모르죠. 그나저나 공고졸이시라니 반갑네요,특이하게도 공대안가시고 정치학을하셨네요,,저도 제대후에 인문학에매력을느껴 사회학과에 편입할까 무쟈게 고민한기억이있는데 밥벌이가 안된다는,,ㅜㅜ결국지금은 이책에서 소위말하는 5%의 직장에들어왔지만 하루하루불안합니다. 동료직장인들도 비정규직 문제에대해서는 인식은같이하지만 딱히 실천할께없어요,, 그저 노조활동비나 충실히내고 다들 해외여행이니 레져에 빠져있어서...저자는 20대를보고 안타깝고 무기력하다면 전 지금의 정규직을 보고 안타깝다라는 생각이드네요. 우박사는 정규직노조한테 기댈건없다고 말하지만 조직률10%를가지고도 거기서 희망을 발견하려는 저이기에..

전진하는청년 2007-11-03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대학에 진학할 때는 내 손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마음으로 정치외교학과를 지망했는데.. 졸업할 때가 되니깐 참..ㅜㅜ 밥벌이가 걱정이네요^^;; 공대에 갔으면 좀 덜 했을까요 ㅋ;; 그리고 실천하시는 게 없다니요, 현실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시고, 노조활동비 꼬박꼬박 내시는데요^^;; 저보다 훨씬 많은 실천을 하고 계시는 걸요^^;; 저야 말로.. 항상 고민만 하면서 특별히 하는 건 없는^^;;

희망.. 포기하는 순간 없어지는 게 희망이겠죠^^ 어디서부터 일궈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희망을 갖고 살아요 우리ㅠㅠ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 경제, 공정 무역
마일즈 리트비노프.존 메딜레이 지음, 김병순 옮김 / 모티브북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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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정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슈는 바로 2WP 즉 War & Peace의 문제와 Wealth & Poverty의 이슈가 바로 그것이다. 냉전이 끝나고 전 세계가 War & Peace의 이슈에서 Wealth & Poverty의 이슈로 시선을 돌리면서 이전에는 외면 받았던 초국적 자본에 의한 제3세계에서의 환경파괴, 노동착취, 인권유린에 대한 비판이 증가하게 되었다. 매일 같이 정해진 일정을 맞추기 위해 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가족들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일해야만 하는 파키스탄의 아이들(p.138)과 같이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수많은 사례들은 초국적 자본이 그들의 이윤창출을 위해 제3세계를 얼마나 착취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제3세계의 비참한 현실은 선진국의 양심 있는 시민들에게 초국적 자본에 대한 규제를 주장하도록 만들었는데, 이에 대해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나 보수적 국제정치경제학자들은 제3세계를 위한 환경보호나 노동환경 개선, 인권보호 조치들이 저개발국가의 국제시장에서의 유일한 경쟁력인 저가의 노동력에 대한 제재가 되고, 또한 해외자본이 저개발국가에 투자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제3세계를 상황을 개선하려는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결국 제3세계의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하며, 제3세계의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환경권과 노동권 그리고 인권의 개선을 위한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그 결과는 초국적 자본의 초과착취와 제3세계 노동자, 시민들의 더욱더 피폐해지고, 참담해진 현실이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공정무역”의 저자들은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정무역을 제시하고 있으며, 직접 공정무역을 위해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공정무역이란 쉽게 말해서 초국적 기업은 더욱더 배불리고, 제3세계의 가난한 노동자, 시민의 삶은 더욱더 가난하게 만드는 현재의 국제통상체계를 거부하고, 공정무역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p.10)하며, 개발도상국에게 공평한 기회의 장을 마련하는 것(p.257)인데, 그 방법은 바로 최소공정가격을 제3세계의 노동자, 시민에게 제공하는 것이다.(p.25) 직접 공정무역에 관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들은 공정무역을 통해서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지역 공동체가 환경을 개선한 수많은 그렇지만 하나, 하나 너무나도 감동적인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선보이고 있는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공정무역은 단순히 제3세계의 가난한 노동자, 시민들에게 한 푼의 돈을 더 쥐어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3세계의 노동자, 시민들이 직접 조합을 통해서 민주적 방식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게 하며, 이윤에 환장한 초국적 자본에 의해 행해지는 환경파괴를 막고 친환경적인 생산방식을 유도하며,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것으로 진정으로 세계를 바꾸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공정무역제품을 사기 힘들었으나 영국의 소비자들이 공정무역제품을 많이 찾아 이제는 주요 슈퍼마켓들에서 공정무역제품을 사들이고 있으며(p.184), 네슬레와 같은 초국적 기업들도 적지만 공정무역제품을 내놓고 있다(p.186)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는 너무나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지만 또한 공정무역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즉 공정무역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선진국 시민들의 대중적 인식과 그에 맞는 행동이 필수적이다. 역으로 말하면 제3세계 노동자, 시민들이 조합을 만들고, 더욱더 친환경적인 어떤 제품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선진국의 시민들이 소비하지 않고 초국적 자본의 제품을 소비한다면 공정무역은 결코 이루어질 수가 없다. 또한 공정무역에 대한 수요가 높아 시장성이 높아진다면 거대 자본이 개입하게 될 것이고, 자본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점유하는 거대자본 사이의 가격 경쟁은 다시금 제3세계 노동자, 시민에게 비극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무역은 현재의 불합리하고, 비참한 현실을 개혁하는데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시장에 의존한 정책이 되어서는 그 영속성과 안정성이 담보되기 힘들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단순히 공정무역만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ODA와 같은 직접적인 지원이나 기타 국제법제도를 통하여 보완이 함께 수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이런 시도들은 어디까지나 선진국의 양심적인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활동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시민들 역시 이런 고민과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공정무역”은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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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전쟁 -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성공전략
조지 레이코프.로크리지연구소 지음, 나익주 옮김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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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레임 전쟁 -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성공전략"은 진보세력이 보수세력에게 계속 패배하는 원인을 진보적 아젠다들이 보수적 프레임을 통해 해석되기 때문으로 바라보면서, 시민들이 진보적 프레임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들이 지적하는 진보진영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많이 공감하였다. 특히 "확고한 사실이 유권자들을 설득할 것이고, '이성적'인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사리와 이슈를 위해 투표"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평소에 내가 가졌던 의문에 대한 일정 정도의 답이 된 것 같다. 그 외에도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점들과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프레임에 대한 주장은 분명 한국의 진보진영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프레임이 누굴 위한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의문이다. 저자들의 논리를 간단하게 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프레임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진보세력이 보수세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보수적 프레임이 아닌 진보적 프레임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오버해서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주장의 기저에는 민주주의의 가장 주요한 행위자인 '주체적' 시민을 부정하고 정치세력에 의해 '수동적'인 시민들을 가정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세력이 그들의 프레임을 통해 이 무지하고 수동적인 시민들을 포섭하고 있으니 진보세력이 진보의 프레임으로 그 수동적인 시민들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렸다면 너무 심한 곡해일까? 그러나 분명 프레임의 논의 속에서는 정치집단의 논리는 있지만 주체적 개인으로서의 시민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만 같다.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나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민주주의란 결국 민중(Demos)이 통치(Kratia)하는 체제를 의미할 것이다. 즉 민주주의는 민중들이 스스로, 직접 통치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기에 진정한 민주주의라 함은 민중들이 주체성을 스스로 확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책에서 논하고 있는 프레임 전쟁은 결국 민중을 주체화가 아닌 객체화 시키고 그들을 통치하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의 두 정치세력 간의 다툼에 불과한 내용이 된다. 물론 나는 이 책이 주장하는 많은 내용에 동의하며, 한국의 진보세력들은 이들의 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보수세력과의 경합에 있어 보다 그들의 논의가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내용은 그것이 끝이다. 나는 진보라고 불리는 또는 자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프레임을 넘어서는 고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임을 어떻게 만들어서 시민들을 포섭할 것인가를 넘어서 시민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주체적 개인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소위 진보를 자부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해방'된 사회가 아닌가? 물론 나의 이런 생각은 저자들에 의하면 합리주의의 덫에 빠지는 것일 수 있다. "확고한 사실이 유권자들을 설득할 것이고 '이성적'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사리와 이슈를 위해 투표"한다는 순진한(?) 믿음, 물론 많은 경우 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현실에서 느끼는 많은 모순과 불합리를 그들의 사고와 의견 그리고 투표행위에 반영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진보세력이 결국 추구해야 할 길은 바로 이러한 순진한 믿음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족 - 여기에서 논의 되는 프레임은 단순히 정치문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많이 적용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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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사도의 편지 1 뫼비우스 서재
미셸 브누아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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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다빈치 코드"와 같이 사실과 상상을 뒤섞은 팩션류의 소설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 소설도 그런 팩션류의 한 소설로서 예수에게 12명의 제자 외에 한 명의 제자 즉 13번째의 제자가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13번째 제자는 왜곡된 예수가 아닌 진실한 예수를 알리기 위한 편지를 남겼고.. 그것을 통해 진실을 추구하는 사제들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것을 숨기려는 교단을 그리고 있다. 생각해보면 너무 뻔한 스토리 라인이라 특별히 기존의 팩션류의 소설들과 큰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이 소설은 수도사였던 분이 쓴 글이기에 보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특별히 더 재밌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팩션이 팩션으로서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재미가 아니라 기존에 사회가 강요하고 있는 공인된 사실에 대해 보다 풍부한 자료와 엄밀한 논증으로 비판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팩션이 권위적으로 공인된 팩트를 허물 수 있을 때에만이 본연의 의미에 충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도 좀 부족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독교인도 아니고, 성경공부도 대충 했었던 나였기에 성경과 그것을 둘러싼 역사에 대한 나의 이해가 부족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엄청 재밌지도 그렇다고 팩션으로서의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알라딘 서평단으로 뽑힌 책이라 많은 내용을 적고 싶었지만.. 책 내용을 적으면 스포일러가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다 읽은 후 들었던 간단한 나의 생각들로 정리했다. 가볍게 읽을 만한 소설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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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14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한 오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