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야기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
이영훈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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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했다.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현대사는 무엇인지. 하지만 겁이 났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가진 그 두께에 말이다. 그래서 미루고 또 미루고 있었는데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편자인 이영훈 교수가 그와 관련된 책을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책을 구입할까 생각하다 이 책을 읽어보고 괜찮다 싶으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사려는 생각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그리고 다 읽은 뒤 사지 않고 대출해서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물론 이런 평에는 나의 사심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직 사심만으로 그런 평을 내리지는 않았다. 이전에 뉴라이트 진영의 이론가 중 한 명인 박세일 교수의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을 읽었을 때는 그 내용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잘 구성된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물론 역사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매우 다양할 것이나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역사는 특히 "기억투쟁의 공간"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역사는 결코 객관적이지 않으며, 결국 현재의 누군가를 위해 재해석된다. 뉴라이트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이승만과 박정희의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바로 이런 의도에서 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과 대립하는 '역사'는 무엇이며 이들이 제시하려는 대안적 '역사'는 무엇일까? 이영훈은 "언제부턴가 글쓰기에 자기검열이 걸렸다. ... 검열자는 한국의 난폭한 민족주의이다."(p.5)라고 이야기 한다. 또한 "지난 50년간 민족주의 역사학이 20세기 한국사의 기본 줄기를 얼마나 심하게 왜곡해" 왔는지 밝히겠다며 "본성이 자유이고 분별력 있는 이기심인 인간 개체가 민족의 대안이라고 주장"(p.6)한다.

 그는 많은 장에 걸쳐 민족주의라는 것이 근대의 산물이며, 그런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만 보다 선진화된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장들을 읽으면서 꽤 놀랐다. 마치 내가 베네딕트 앤더슨과 같은 진보적 학자의 글을 읽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민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PD 혹은 평등파 선배들과 공부를 했던 나이기에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민족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인간 개체'가 정확히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 해방전후사를 어떻게 재해석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관심이 갔고, 책을 넘기는 나의 손은 점점 빨라졌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내가 무지한 탓인지 몰라도 그의 글 속에서 그가 민족의 대안으로서 그토록 강조했던 '인간 개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역사의 해석을 '인간 개체'를 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체제'를 중심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는 책의 초반부에서 "사회주의는 인류의 사회-경제생활이 걸어온 정상적인 진화의 코스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계급적이며 공동체적인 존재로 규정한 사회주의자들의 인간 이해는 잘못이었습니다. 대조적으로 자본주의는 번영하였습니다. 20세기 전반만 해도 자본주의는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였지요. 그렇지만 20세기 후반 자본주의는 일찍이 누구도 상상하 적이 없는 거대한 성취를 이루었습니다."(p.15)라고 적었고, 바로 이 이분법에 의해서 해방전후사를 살펴보고 있다. 그가 비판하려던 민족주의 역사학이 남과 북이 통일되지 못한 채 분단국가가 되었다는 것에 중심을 맞춰 역사를 해석했다면 그는 남은 자본주의체제로 성공하였고,북은 사회주의체제로 실패하였기 때문에 남한의 역사가 우월하며 그것의 정통성을 찾기 위해 그것에 중심을 맞춰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바로 이러한 결과론적 인식을 바탕에 두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시대의 정치는 한마디로 '나라세우기'(state building)의 정치였습니다. 그 정치는 국가체제가 안정된 위에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행해지는, 토론과 조정이 가능한 공공선택의 정치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한 나라를 세우는 데 정치원리를 자유민주주의로 할 것인가 아니면 프롤레타리아독재로 할 것인가, 경제원리를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할 것인가 아니면 공산주의 계획경제로 할 것인가를 두고 주민의 투표에 부칠 수는 없는 법이 지요. '나라세우기'의 정치는 전쟁과 같습니다."(pp.234-235) 바로 이 대목이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즉 해방 이후 우리에게는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 선택의 기로가 있었고, 결국 자본주의가 승리했기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로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의 업적은 위대하다. 물론 책 여기저기에는 여러 이야기가 너저분하게 이야기되고 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통해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 말이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그가 제시한 여러 사료들은 분명 소중한 것들이라 생각되고,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사료들을 접하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그가 처음에 의도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민족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면서 '인간 개체'를 대안으로 내세운다고 이야기했으나 그가 이야기 한 것은 결국 그가 그토록 비판해 마지 않던 민족주의 역사학의 다른 모습이었을 뿐이다. 그는 "나를 국가주의자로 비판한 사람은 내가 우리의 건국사를 남달리 소중하게 평가하는 데서 그런 인상을 받았을지 모른다. 국가가 중요하다는 주장을 국가주의로 익는 사람이라면 국가주의 또는 자유주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자유주의에서도 국가는 소중하다. 왜냐하면 거기서 국가는 자유의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p.8)라고 하였다. 물론 그가 말한 것처럼 자유주의자에게 국가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는 착각하고 있다. 자유주의자에게 국가가 소중한 이유는 국가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도구로서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글은 모든 내용이 결국 건국 당시의 정체를 옹호하기 위해 그것에 대한 비판의 비판으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그에게 국가주의자라는 비판은 매우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제기되었던 문제 즉 민족이 아니라 '인간 개체'로서의 역사를 써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일견 동의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인간 개체'가 무엇인지 아직도 그의 글을 통해서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가 민족이 아닌 '인간 개체' 중심의 해방전후사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역시도 민족 중심의 역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에 지지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이대로는 아마 그의 작업은 평생가도 완성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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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너구리 2008-02-23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말씀하시는 ‘인간 개체’중심의 역사는 미시사 연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