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서평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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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ㅣ 問 라이브러리 5
강수돌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part. 1
며칠 전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전화를 받은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군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여러 불만들을 이야기했다. 평소라면 장난끼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놀리면서 나중에 휴가 나오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자기가 맛집을 알아놨다고 이야기 해야 할 그 친구가 힘이 쭉빠진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너는 지금 안정적이잖아. 박봉이라고 해도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매일 해야 할 일도 있고.."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나 시험 떨어졌어"
친구가 그 말을 한 순간 정적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는 꼭 붙을 거야"라는 상투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밖에 없었고, 그 아이는 "그렇겠지"라며 힘없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part. 2
저자인 강수돌은 이책에서 가정, 학교, 기업 등등 사회 전반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경쟁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황폐화 시키는지 차분하게 논하고 있다. 우리는 자라나면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저자의 말처럼 훗날 전혀 기억나지도 않을 시험문제를 열심히 외우는데 시간을 보내고, 성인이 된 후에는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일에 빠져 살아간다.
태어나서 자라나고, 성인이 되어 죽을 때까지 우리는 성과주의적 삶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삶의 태도는 우리를 끝없는 경쟁 속에 몰아넣는다. 이 경쟁에서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다른 이들을 제치고 사다리의 끝에 오른다 하더라도 언제 내려와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살아가며, 결국 언젠가는 패자가 된다. 승자가 존재한다면 그건 사회 전반에 이런 경쟁을 강제하고 있는 자본일 뿐이다.
자본이 강제하고 있는 생존경쟁은 우리의 삶을 우리의 것이 아니게 만들고 있다. "무엇이 나의 참된 행복인가, 무엇이 삶의 기쁨이요 존재의 기쁨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결국 외피에 가려진 내면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라는 외피에 가려진, 있는 그대로의 나, 이것을 느끼기 시작할 때 비로소 다양한 이분법 속에 뒤틀린 삶과 일, 가정, 사회, 그 모두를 건강하게 복원할 방도를 찾을 수 있다"(pp.30-31)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우리의 삶을 온전한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이 강제하고 있는 지금의 생존경쟁에서 이탈하여 나와 사회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강수돌은 생존경쟁에서 이탈할 수 있는 우리의 무기로 '연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생동하는 연대를 통해 경쟁체제 속에서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삶이 아닌 대안적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part. 3
아직까지 군 전역이 986일이나 남은 신임 소위이지만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아직 업무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해 선임들에게 이래저래 깨지고 있는 것도 한 가지 원인이 되겠지만 최근 티비를 장식하고 있는 암울한 경제상황이 가장 큰 원인이다.
2011년 7월 1일, 다시 사회로 돌아가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더욱더 암울해질 것만 같은 경제상황 앞에 한숨을 진다. 그리고 군대 괜찮은 것 같은데 장기신청이나 해볼까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정말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학생 시절 학생회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자본의 노예가 되지는 않겠다라고 생각했던 나인데 그런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내 삶을 자본의 논리로부터 구출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것을 온전한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미 내면화된 경쟁모드를 어떻게 연대모드로 바꿀 수 있을까?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결국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겠지만 변화의 시발점으로서 나를 상상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그저 나는 앞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의문과 불안감만 계속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내가 지금처럼 산다면 결국 평생을 이런 불안감과 함께 할 수밖에 없음을 알지만 나는 이외의 어떤 것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난 알라딘에서 "객관식 민법"과 "객관식 경제학" 책을 주문했다. 이런 암울한 경제상황에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전문직 자격증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part. 4
강수돌의 이 얇은 책은 지금의 나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고, 나는 그의 글에 백번 동감한다. 하지만 그의 글 속에서 이땅의 방황하는 20대인 나는 나의 이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을 다스릴 어떠한 기제도 발견하지 못했다.
"자본이 강제하는 생존경쟁을 마치 자신의 삶의 논리인 것처럼 굳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의 논리를 적극 추구하는 대신에 수동적인 생존논리에 갇힌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p.43)라는 그의 말처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너무나도 불안한 이 삶이 내가 살고 싶은 삶,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 앎을 통해 무언가를 실천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불안하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런 경쟁적인 삶의 태도로는 결국 끝까지 불안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 불안감이 사라져야만 내가 나의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난 내가 먼저 나 자신을 바꾸지는 못할 것 같다. 비겁한 변명 같지만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그런 삶의 태도가 얼마나 더 우월한지를 보여준다면, 그래서 나를 둘러싼 불안감을 일소할 수 있다면 그때가 되서야 난 나의 삶의 태도를 바꾸고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내 생각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씁쓸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