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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20대, 그것도 사회로 곧 진출해야만 하는 대학 4년 졸업반, 그런 나에게 “88만원 세대”는 상당히 충격적인 책이었다. 사실 이 책에서 논하고 있는 내용들의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으로 인해 소위 좋은 직장이라고 불릴 만한 곳에 취직할 확률은 매우 낮아졌으며, 그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고 하더라도 정년을 보장 받는다는 것은 꿈조차 꾸기 힘든 ‘환상’이며, 그나마 가장 안정적이라고 이야기되는 공무원이라는 조직마저 점차 사회적으로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 땅의 20대들은 엄동설한에 쫓겨난 흥부마냥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은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20대라면 누구나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은 바로 이 문제를 세대의 문제로 보고 “세대 간 경쟁”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보여줌으로써 여태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현재 한국의 20대들은 20대의 몫을 키우는 세대 간 경쟁을 하지 않고 정해진 몫에서 자신의 몫을 더 챙기려는 세대 내 경쟁에 주력하고 있으며, 20대의 몫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므로 20대 사이의 경쟁은 단순한 경쟁이 아닌 승자 독식 게임의 형태로 진행되면서 점점 더 치열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런 경쟁은 현재의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본질적인 방법이 아니라 단순히 개미지옥에서 누가 조금이나마 더 오래 살 수 있느냐는 참으로 암울한 경쟁임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쟁은 지금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세대 간 경쟁일까? 나는 세대 간 경쟁이라는 개념이 20대의 삶을 분석하는데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해법으로서는 큰 의미를 갖기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공고에서 대학으로 진학한 특수한 이력 덕택에 나에게는 비슷하지만 꽤 다른 두 부류의 친구들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공고시절의 친구들로서 실업계의 특성상 많은 친구들이 졸업을 하자마자 취직을 하여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진출한 친구들이 한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나 연·고대처럼 한국사회에서 일류는 아니더라도 나름 자신들이 속한 외대가 이류는 되며, 자기가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소위 말하는 이름 있는 기업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강하게 가진 친구들이 다른 한 부류이다. 물론 이 둘은 개미지옥에서 누가 먼저 죽는지 경쟁하는 수준의 차이밖에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둘이 대한민국 20대의 상·하위를 대표한다고 했을 때, 어디까지나 내 경험에 의거한 생각에 불과하지만 20대는 결코 하나로 묶일 수가 없다.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는 말처럼 20대들이 뭉칠 수 있다면 세대 간 경쟁이라는 개념이 말 그대로 “절망의 시대에 희망의 경제학”이 될 수 있겠지만 “88만원 세대”인 20대는 이미 하나의 20대가 아니다. 정치외교라는 전공 덕택에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친구들하고 술을 마실 때, 우리의 암담한 현실에 대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는데,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즉 “88만원 세대”에 하위를 차지하고 있는 친구들은 그런 현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이 받는 임금이나 대우에 대해서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그저 투덜거림에서 그쳤다. 취직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자신들이 취직한 것처럼 취직할 자리는 많은데 눈만 높아서 취직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낙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또한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에 대한 인식이 낮아 그것을 큰 문제로 보지 않으며 심지어 나의 간곡한 만류와 설득 작업에도 불구하고 친구들 중 하나는 홈에버 방학점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참고로 이 친구는 중학교 때 친구다.) 이처럼 세대 내 경쟁에서 뒤처진 친구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대학교의 친구들은 다른 의미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는데, 그것은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자신은 상위 5%에 들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으로 자신이 처한 이 상황을 세대 내 경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간략하게 말해서 20대는 그들이 나름 상위에 위치하던 하위에 위치하던 어떤 의미에서든지 현재의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규항이 말하는 것처럼 자본의 파시즘에 의해 이들이 아무런 의식도 없어져서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현재 대부분의 20대에게 사회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결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재하며 그런 상황 속에서 세대 간 경쟁이라는 개념은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는 데는 유의미 할 수 있지만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부생의 필연적 한계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88만원 세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세대 간 경쟁이라기보다는 “좌파 대 우파, 복지 대 성장, 대안 세계화 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대결구도라고 생각한다. 결국 “88만원 세대”의 몫이 이렇게 줄어들게 된 것은 97년 외환위기와 그 이후 엄청난 속도로 전개된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이 주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88만원 세대"는 이 땅의 20대에 대한 매우 훌륭한 보고서이지만, 행동지침서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