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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오금학도 - 개정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4년 4월
평점 :
아름다움이 무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름다움, 특히 여성의 그것이 상품화되고 그것을 좇고 하는 세상사를 바라보며 회의하고 있었다.
열 살 때 산을 보고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바닷가 도시에 살고 있을 때였다. 산의 연두와 초록에 홀려 그렸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림이 좋다며 칭찬했던 게 기억난다. 미술선생님이 대회에 내자고 했는데 곧 이사를 가야 했다. 대회에 그림을 냈는지 결과는 어떻게 됐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살았던 곳 중 가장 마음에 남는 곳은 그 도시였다. 바다나 순한 사람들 때문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날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뒤 그림에 대한 기억은 별 게 없었다. 한국화 시간에는 온통 먹을 쏟아 옷에 먹칠을 하기 일수였다. 어느 미술시간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먹을 죽죽 그었다가 가장 골찌로 등극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펼쳐놓으면 미술선생님이 한 점 한 점 그림을 골랐다. 내 그림은 골찌로 가장 먼저 골라졌던 기억이 난다. 이해할 수 없으니 먹을 푹푹 그었다.
다시 그림을 배우고 있다. 태백산맥을 그리고 싶었다. 이 도시에 오자마자 산을 보며 했던 생각이다. 저 산을 그리고 싶다고.
사진으로 찍으면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으나, 그건 또 다르다.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것을 그림에 담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더 심혈을 기울여 사진을 찍을 수도 있겠지만, 그림이 더 그리고 싶다. 한 폭 그림 속에 담아놓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을 뭐라 해야 할까. 그 산이 살아있음, 그것일 것이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살아있음.
요새는 선생님의 그림을 따라그리므로 느낌은 잘 모르는 채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림을 보고 느낌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봐야겠다.
고산묵월이 아이(백득우)에게 일러주던 말들을 다시 봤다.
행복이란 세상만사를 모두 아름답게 보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스승은 말했다.
"풀과 나무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아라. 그것들은 모두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느니라. 그것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우주의 중심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지. 그것들은 거기에서 태어났으며 거기로 돌아갈 것이니라. 우주의 본질적 구성요소가 바로 아름다움 그 자체이니라. 풀과 나무들은 아름답고자 하는 소망에 의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고 씨앗을 싹 틔우는 것이니라. 본디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그 소망은 비단 풀과 나무들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의 이유이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즉 행복이란 바로 마음이 아름다워진 상태가 아니면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니라. 따라서 아름다움을 모를 때 사람은 불행한 법이니라. - P246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자신이 우주와 합일된 아름다움을 획득하고 그것을 관조함에 있는 것이니라. 허나 때로 어리석은 인간들은 현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소망과 욕망을 혼동하면서 살아가고 있느니라. 욕망에 아름다움을 더하면 소망이 되고 소망에 아름다움을 빼면 욕망이 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는 실정이니라." - P247
"오늘부터 계곡에 내려가 바위 하나를 정해놓고 틈나는 대로 찾아가서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하여라. 무슨 이야기라도 상관이 없지만 될 수 있는 대로 무엇을 미워하는 감정이 남아 있을 때는 가급적이면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하여라. 처음에는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이니라. 허나 계속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바위의 마음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니라. 네가 바위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바위의 마음이 열리는 날이 빨리 도래하게 될 것이니라. 대상을 아름다워하는 마음이 바로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임을 명심하여라." - P247
이런 말들이다. 아름다움, 사랑, 이런 것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그동안 헛발질할 때는 내 마음이 거기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었다. 미움이나 계산이 찾아들면 헛발질이 깊어졌고, 그러면 그들과는 맞지 않구나 하며 떠나왔다.
그가 내게 선물한 책이다. 꽃은 사주지 않았지만 책은 보내줬다. 지칭개를 심으라 주고 생강꽃은 따주며 차로 먹으라 한 사람이다. 오늘은 자면서 안 할 거야 라고 하지 말고 할 거야 라고 하라고 했다. 병아리를 키우고 닭을 만들고 알을 낳고 모이도 주고 그러다 닭도 먹고, 그런 나날을 보내는 세상사 속에서 어느 날 함께 손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야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전설 따라 신화 따라 꿈 따라
오랜만에, 예전에 거리를 걷다 반했던 벽오동이 생각나 보고 왔다. 아직 잎은 틔우지 않았다. 그 나무 이름이 무언가 궁금해 알아보니 벽오동이라 했었다. 다시 벽오동을 볼 때다.
2025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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