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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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예전에 퇴근 버스가 떠올랐다. 204 버스였던가. 출퇴 이외에람이 없던, 그 동네 아파트 돌던 버스였는데, 한동안은 이제 새로 생긴 길을 달리곤 했다. 늦게 퇴근해 버스, 버스에 승객은 대부 혼자였다. 뒷자리음에 자리 잡고 앉아 울거나, 울기 직전이었거나, 그 채로 책을였다. 잠시 잠깐, 2-3페이지 정도를 보며, 고요가 좋아서, 유일하게 하루 좋아할 있는 고요였다. 오랜만에 고요 속에서 책을 보다가, 버스 타고 퇴근하 때가 떠올랐다. 왠지 오래 떠올리게 같다. 204 버스, 9시에서 10 사이 퇴 버스 뒷좌석, 운전기사님뿐이던 버스, 한적한선을 달리던.

 

상에서 무서 이라 말은 맞지 않겠지만, 무서 하나 약자가 품은 적의다. 내가 일하다 알게 것이다. 비슷한 나이또래이 여자아이들이 품었던 적의 앞에서 속수무책이었고, 있는 별로 없었다. 그곳은 계급사회였고, 나 그들보다 급수가 높았고, 그들의 모자람을 하고 품기에는 품이 좁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오 것으로, 이야기가 정리되고 나서, 나 마지막까지 그들 인사하지 않았고, 그 내게 인사하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 끝났다. ( 명은볏거리며 인사슷한 것을 했지만, 어색해서것은 인사일까엇일까 없었다.)

 

스토너 보다 깨달았다. 공식적인 약자가 정의롭지 못할 , 약자가 적이었을 , 그것이야말로렵구나. 그래서 나 어려웠구나.

 

랜만에 고요히 책을 보다가, 내가 세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문학이라는 세계. 세계 드러내주, 수 없이, 있는 그대로, 세계상한 단면과 인생의 기이, 평범해보이지만 실은 거기 드러 숱한 모서리들을 보듬는것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랑하려력하는, 세계 좋아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부동산업 좋아할 수도 있고, 바다척하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고, 거기서 의미 찾을 있고, 군가는 산을 오르 것을 좋아할 수도 있듯, 나학을 좋아하는구나. 이 식으로 인간을 드러내주며, 사람이 사는지 하문에 답을 주지 못하나 생각해보게 하는…

 

좋다.

  

 

영화 패터슨이올랐다. 시기적으로는 1965년에간된 설이 훨씬 앞서지만, 나 패터슨을 먼저 보았다. 소설은 2006 재출간되면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패터슨은 2016 영화다. 자무쉬 설을 보았을까?

 

작품 모두 람의름이목이 된다. 스토너, 패터슨… 농부의들로 태어나 농과대학에학했다가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평생 교수로 살다간 남자. 자기만의 고유 열정을직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표현하 방식에 있어서의 어떤 차분함과 열정이섞여, 주 인물들을 받아들이고 때로 어쩔 없는감각으로것을 지나치며 자기 인생을 살아간. 그가 기대 것은엇일까? 우리 인생에엇을 기대할까?

하루하루 성실히 살고, 자신이 일에정을 남자, 대단 성공을 거머쥐거나 명예나 권력을졌다고 하기 어려, 전쟁시대 자기 인생을벅뚜벅 걸어간 남자. 속세가 있고 권력지향적이거나 자기 트라우마 갇힌람들이 역으로 인생을 휘두르려 때조차, 발자국 뒤로 물러난 , 그러나 실은 자기 길을. 작가 윌리엄스의 영웅이라 했다는데, 정말런지도 모르겠다. 자기 열정을 자기 방식으로 끝까지직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소설을 읽으며종일관 람의 인생을 이다지도 차분히 관조하다니… 생각했다.

 

패터 그러 작품이다. 시대 영웅, 자기 일을 차분히 해나가정을 가지고 그것을 해나가람들.

 

스토너처 열정적으로, 차분하지 열정적으로.

 

인생에서 기대할까

자기 알을 깨부수지 못하던 시간들은 넘어엇을

 

나는 용기있는람일까


(20210215)

젊은 시절의 어색함과 서투름을 아직 남아있는 반면, 어쩌면 우정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을 솔직함과 열정은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그를 슬프게 했다.

- P133

문학, 언어, 정밀하고 기묘하여 뜻밖의 조합을 이룬 글 속에서 그 무엇보다 검고 그 무엇보다 차가운 글자를 통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음과 정신의 신비, 이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그는 마치 위험하고 부정한 것을 숨기듯 숨겨왔지만, 이제는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다가 대담하게, 종내는 자랑스럽게.

- P159

이제 나이를 먹은 그는 압도적인 정도로 단순해서 대처할 수단이 전혀 없는 문제가 점점 강렬해진 순간에 도달했다. 자신의 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운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슬픔이었다(그의 생각에는 그런 것 같았다). 문제의 의문이 지금 자신이 직면한 가장 뻔한 원인, 즉 자신의 삶에서 튀어나온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나이를 먹은 탓에, 그가 우연히 겪은 일들과 주변 상황이 강렬한 탓에, 자신이 그 일들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탓에 그런 의문이 생겨난 것 같았다. - P251

는 보잘것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쁨을 느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무)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 P251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긴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으로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 P353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함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 P392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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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Cosmos는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 어이며 카오스 Chaos에 대응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만물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내포한다. 그리고 우주가 얼마나 미묘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지고 돌아가는지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敬畏心이이 단어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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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조선 산천을 품은 정선 - 한국편 4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한국편 4
조정육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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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집을 사야겠다

 

생애를 알고 싶어 도서관에서 어린이책을 빌려 읽었다. 양반집안의 자재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아버지 잃고 외조부움으로 살며 그림을렸다. 그림으로 38세에 벼슬도 얻고 이후 계림을렸다. 사실대로를 넘어서낌으로실의 크기 바꾸기도 하 대범함이 있었다. 달을 보다 친구집 문에림을 그리러 정도로방한 성품이었다. 노론소론의 정치 갈등 속에 있었으나린이책이라 깊이 다루고 있지는 않다.

붓을 쌓으면덤을 쌓을 정도로심히렸다. 그림을 그게 진실인 같다.

 

젠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림을 보고 람에 대해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후배림과도 질적으로 다르다고 느림이었다.

 

겸재정선박물관이 있다. 간송미술관에도 작품이 있다. 언제 한번 가봐야겠다.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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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여자들
설재인 지음 / 카멜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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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이상문학상상작품집상작을 보고 다음으로 . 훨씬 재밌다. 엄마가 동성애자인 이야기. 떠나버 엄마 여자친구를 찾아 엄마골을 들고 동남아로 이야기. 담담하게, 그린다. 모 인생을 긍정한다. 그 수도 있는 거니까, 하며.

 

 

번째 이야기 동남아국에서 꼬치구이 팔던 여자생을 들려주는 도마뱀과, 도마뱀은 그녀가 한국으로집와 아이 낳으라는 종용 속에 겪은생을 이야기해주고 나 그녀를롭힌 시어머니 손녀일 있다며, 이야기가 끝난다.

 

번째 이야기에서 울었다. 한국에서 여자로 살며, 교사가 되자, 신붓감 일순위가 되어 매 직장 술자리를 돌다 지하철에서 잠이 들고, 20 지하선도를 그리 남자친구를올리는 이야기. 어떤 고달, 아주 이해되 고달, 이 수도 저 수도 없이 속으로 흘러가 부조리하지 어쩔 없이 그곳에 적응하고자 술을 마시고 마음과 상관 없는건에합한 연애를 하다 어느, 술에 취해 지하철에서 들다 깨어난….

과거 같아 울었다. 같지는 않지만 내가 짊어진 무게 짊어진 사람의 이야기라…

여전히 짐은 그대로인데 편해져, 어찌 해야 모르겠는 상황에 어쩌면 길을 갔더라면 생각하다가도 그러 힘들었을 거야 하며…목은.

 

설익은설도 있는데, 내게 ‘지구울이면’이나 ‘내가 만든 여자들’, ‘삼백칠십오 년의벤더, 그리고 남아프리카 원산지의 크크크’랬다. ‘바지 봉지’도딘가 울리지만 백퍼센트는. 삼교리까지전거 타고 숭아밭에서 편씩 읽었다. 850 정도 행나무 정자에서도 읽었다. 앞으로 낮에는 좋으니 들고 나가 벤치 하나마다 챕터씩 읽고 생각이다. 그래도 읽게 같은 있다.


어떤행이나 만남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가성으로서 남성중심 사회 부조리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해내 엽기적인, 그러나 속시원 방식들을 그려내며 현실에서는 것들을설에서는능하게 같은 있다. 그 같은 존에 내가 읽던 소설가들 점이기도 하다. 진주 책방에서 일하, 말에 따르자 현역처럼 읽는다는 병진이가 추천해설인데, 역시 병진이 싶다.

 

이야기 상정하고 끝까지끌어간다는 것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해보았다. 그동안 소설적이라는 틀에 갇혀 어떤 것을 놓친 아닐까. 그게 뭐냐면… 절실함 같은 . 그런가 하면  어디 쓰는지도 모르겠는 에너지를 쏟다 보면 화가 나는 사실. 그동안의 실패의 좌절감 같은 후끈 밀려드는 것도 사실. 감정이 나를 추동시키지 않는데, 사람은 그런 좌절감따위 개나 줘버려라며 때로 수다스럽게 그러나 절박하게 한없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응어리를 풀어내고 말겠다는 그런 의욕이랄까, 실제로 작가의 말에서도 자신의 글쓰기는 토로이고 치유이고 반성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에너지가 글을 읽게 한다.

 

특히 '회송' 읽으며 엉엉 울고 나서 삼교리 막국수에 자전거 타고 가서 읽고, 집에 와서 읽고, 오늘 노브랜드로 달걀이랑 초고추장 사러 3km 정도 걸어갔다가 중간에 신리천에서도 읽고, 집에서 읽었다. 그전까지는 이렇게 열심히 읽지는 않았는데. 그랬다.


혹시 책방 들여놓아야지.



20210219

 

그렇게 병을 딸 수록 속에 있는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당연히 기쁘고 재미있는 이야기보단, 슬프고 화나는 이야기들이, 물결치며 테이블 주위를 흘렀다.
- P182

집에 같이 가자. 언니가 데려다줄게. 집에 가자. 산책하는 것처럼 천천히, 같이 가자. - P195

자기 자신의 안에서 첫 번째 아이, 두 번째 아이, 세 번째 아이……를 수없이 분할해 재조립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모습을. 수완의 안에서 내내 울고 있던 또 다른 수완을 끄집어내 그 아이의 세계를 만들게 하는 일을. 그 아이가 자신이 주인공인 세계를 걸으며 난생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기고 스스로의 자취를 관찰하게 하는 일을.
- P242

수완이 조립해 다시 만든 수완들이 이야기하고 행동하고 서로 싸우고 화해하며 응어리를 풀었다. 수완은 그렇게 자신의 내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얼렀다. 글을 쓸 때마다 하나 두 개의 수완이 명치 근처를 꽉 막고 있던 울음덩이를 토해 내곤 손을 흔들며 돌아갔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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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뒷모습 안규철의 내 이야기로 그린 그림 2
안규철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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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앞의 챕터를 읽으면 책을 끝까지 읽을지 말지를 정하게 된다. 끝까지 읽을 마음이 없는데도 들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끝까지 읽어야지 하는 결심(?) 드는 책은 계속 잡고 있게 된다. 오랜만에 그런 책을 만났다. 누구 생일인 사람이 있으면 사줄까 싶기도 했다.

 

글을 쓰려면 정도는 써야는 아닐까, 그래야 글을 쓴다고 있는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깊이 있는 사유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글을 좋다고 표시해두었다.

 

내가 보지 않던 , 보려고 했더라면 당연히 있었던 것들을 응시하고 보임 뒤의 이치 속에서 '' 자리를 되돌아보는. 책을 읽다 며칠 전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이가 든다고 알게 되거나 깨닫는 아니라, 있는 것은 나이가 들기 전에도 있고 영영 보는 것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보지 못하는 아닐까. 바람의 흐름, 식물의 겨울, 관성 자연의 이치는 나이와 상관 없이, 있거나 보지 못하거나 여서, 그것을 보면 도를 통한다고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달라이 라마도 떠오르고… 그랬다. 예술이란, 예술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무는 그 씨앗을 바람에 실어서 멀리까지 날려 보내는 방법을 생각해냈을 것이다. 한곳에 붙박여 사는 식물의 한계를 넘어 바람처럼 멀리 여행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씨앗은 수신인이 적히지 않은 편지처럼 어디론가 날아가서 바람이 멈추는 곳에, 가장 낯선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다.
나무들은 정물이 아니다. 시간의 리듬이 다를 뿐 그들도 우리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는 중이다. 불시에 찾아와서 어린 잎사귀들을 떨게 하고 때로는 가지를 흔들어 꺾는 광포한 바람에 자신을 꼼짝없이 내맡기는 동안 나무는 그 바람을 타고 바람처럼 움직이는 것을 상상했을 것이다. -바람이 되는 법
- P23

오늘 아침 서늘해진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그렇다면 나는 이 바람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바람이 되는 법, 바람처럼 나타나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법, 보이지 않는 손으로 사물들을 쓰다듬고, 멈춰있는 것들을 움직이게 하고,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는 법, 그리고 때때로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다시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법을 배울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바람이 되는 법 - P24

유리잔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한순간의 소리를 1분, 한 시간, 하루 또는 1년으로 늘려놓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본다. 소리의 총량은 그대로지만 시간이 늘어남으로써 그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로 인식하지 못한다. 유리잔 스스로도 자신의 몸이 산산히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하필이면 깨지는 유리잔에 비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삶은 이처럼 느리게 진행되는 사건의 과정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청년은 노인이 되고 기억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우리는 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연장된 사건의 미세한 파편들로 이루어진 안개 속에 있다. 예감은 어긋나고, 하나의 사건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종결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무슨 일이었는지 안다. 그제야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세월의 덧없음을 안타까워한다. -유리잔
- P51

그러나 우리가 삶이라는 사건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연장된 시간 때문이다. 수만 분의 1초로 분할된 느린 화면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유리잔처럼 순식간에 부서져버릴 것이다. -유리잔
- P52

바위는 웬만해선 제자리에서 꿈쩍하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웬만해선 멈추지 않는다. 바위는 머물기를 원하고, 물은 흘러가기를 원한다. 바위도 물도 지금의 상태가 이대로 계속되기를 바란다. 이것을 우리는 사물의 관성이라고 부른다. 관성 뒤에는 중력이 있다. 사물을 관성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중력을 설득해야 하고, 사물이 갖고 있는 질량이나 운동량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 흐르는 물을 막으려면 거대한 콘크리트댐이 필요하고, 바위를 옮기려면 바위보다 훨씬 더 무거운 크레인이 필요하다. -관성
- P59

일상의 사소한 습관도,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시대의 흐름도 바위와 물처럼 관성의 지배를 받는다. 세계를 그 관성으로부터 떼어내 올미고 변화시키는 것이 인간의 일이라면, 그 일의 성패는 우리에게 그 관성을 능가하는 더 큰 힘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나를 지배하는 관성은 무엇인가. 정체성이란 이름으로 내 안에 들어앉은 타성과 편견의 바위들을 끌어내고, 익숙한 방향으로만 흐르려는 생각의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릴 힘이 나에게 있는가. -관성
- P59

식물은 죽어야 산다는 것을 안다. 헤어져야 만난다는 것, 버려야 얻는다는 것,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겨울이 오기 전에 정든 잎들을 남김없이 떨어뜨려야 하고, 오랜 기다림 끝에 눈부시게 피어난 꽃잎들을 한순간 바람에 날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빛나는 날들에는 끝이 있다. 작은 풀 한 포기도 이것을 알고 있다. 미련과 회한으로 우물쭈물하다가 때를 놓치는 우리 인간보다 낫다. -씨앗 - P87

늦은 봄날, 비어 있던 땅을 갈아 자갈을 걷어내고 씨앗을 뿌렸다. 꽃씨 속에는 그 꽃의 전생이, 저 아득한 지질학적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이 들어 있다. 씨앗의 기억은 단단한 껍질 속에 나 있는 어둡고 비좁은 터널을 통해 미래로 잠입한다. 멀리 가기 위해서 식물은 모래알처럼 작고 하찮은 광물의 모습을 취한다. 어디선가 다른 햇살과 바람 속에서 다시 꽃피우기를 기약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지금 여기가 아닌 어떤 곳, 그러니까 유토피아를 향해, 수천, 수만 분의 일의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실어 보내는 저 무모한 낙관주의자들을 보라. 굽힐 줄 모르는 저 희망의 화신들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라. -씨앗 - P87

뒷마당의 키 작은 꽃나무들은 겨우내 무엇을 하는가. 봄부터 가을까지 푸른 잎과 붉은 꽃으로 한껏 제 모습을 뽐내던 영산홍과 철쭉이 몇 달째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정지 화면으로 창밖에 멈춰 서 있다. 아침에 박새 몇 마리가 다녀가면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천천히 제 주위를 맴도는 그림자밖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풍경 속에서 그것들은 바짝 마른 잔가지들을 사방으로 뻗친 채 잠을 자는지 꿈을 꾸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꽃나무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온갖 풀벌레와 잡초들도 같은 모습으로 이 혹독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식물의 시간
- P91

그러나 우리가 그것들을 가여워할 수 있을까. 그 작은 것들이 하나같이 무자비한 자연과 맞서 바위처럼 묵묵히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걸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안달복달하는가. 매 순간의 공허를 뭔가로 채워 넣기 위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우리의 조바심이 저들에게는 얼마나 가소롭게 비칠까. 혼자 있어서 외롭다느니 우울하다느니 삶이 의미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푸념조차 부끄러워하는 법을 배우는 한 해가 되기를. 그렇게 내 속에 숨어 있는 식물의 시간을 깨우는 새해가 되기를 겨울나무들 앞에서 소망해본다. -식물의 시간 - P91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에 응답하듯 진은영 시인은 "내가 이름을 불러보기 전에 사라져버린 것들이여 /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사라져버린 모음들 / 손을 담그기 전에 흘러가버린 강물이여"라고 쓰고 있다. 둘은 다르지만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그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시인은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의 이름을 부르고, ‘이름을 불러보기 전에 사라져버린 것들‘을 호명하는 사람이다. 다루는 재료가 다를 뿐 미술가의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것을 다른것들로부터 구별하고, 그것이 사라져버린 뒤에도 그 존재를 가리키기 위해서이다.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다른 것들 속에 섞이고 강물처럼 흘러가버릴 경우가 예상된다는 뜻이다. -이름에 대하여 - P101

이름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름이 없다면 우리는 그 이름으로 부르는 대상이 사라졌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름을 잊으면 다 잊는 것이다. 이름이 없다면 과거를 기억할 수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니 이름을 부르는 일은 그저 해보는 일이 아니다. 이름은 현재에 묶여 있는 수인인 우리를 과거와 미래로 탈주하게 한다. 지금 여기 부재하는 것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안 보이는 나라‘를 보이게 한다. 이름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는 "역사적 시간 속에서 주어진 의무와 필요를 넘어선 존재"가 된다. -이름에 대하여
- P102

그러나 이름은 영원하지 않다. 어떤 이름으로 원래 가리켰던 대상을 불러낼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이름을 버려야 한다. 아직 오지 않은 어떤 것을 부르려면 그 이름 없는 것들에게이름을 지어주어야 한다. 예술가란 죽은 이름들, 낡고 더럽혀진 이름들을 지우고 아직 이름이 없는 것들, 새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낯선 것들의 이름을 새로 쓰는 사람이다. 예술가로서 이름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이름들을 부르느냐가, 그 호명이 한낱 잡담과 소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름에 대하여
- P103

나는 연필 끝을 통해 전해지는 켄트지의 촉감과 그것들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좋아한다. 거기서 허용되는 자유, 그 위에서 달팽이처럼 천천히 움직일 수 있고, 마냥 멈춰 있을 수 있고, 또 언제든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자유를 사랑한다. 딱딱한 A4 용지에 볼펜으로 쫓기듯 써내려가는 공문서 같은 글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유가 거기 있다. - P178

실용과 경제의 이름으로 노인과 약자의 희생을 정당화하려는 비정한 정치에 단호히 반대하는 엄숙하고도 격정적인 설교에 이어서, 목숨을 잃은 이들과 그 가족들,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학자들, 집 안에 홀로 고립된 사람들이 차례로 호명되며 그들을 위한 기도가 이어졌다.
뜻밖에도 그 목록 속에 ‘예술가들‘이 들어 있었다. "우리를 위하여 새로운 길을 찾는 예술가들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그곳에 예술가의 자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예술가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이니,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했다. 내가 그 기도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길이 되는 예술을 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예술의 이름으로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 P201

밤새 퍼붓던 비가 새벽녘에 그쳤다. 건너편 산자락은 아직 낮은 구름 속에 있고, 어둠 속에서 젖은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었을 새들은 부산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계곡의 요란한 물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어제 내리는 앞으로 여러 날 동안 그렇게 골짜기를 흘러내려갈 것이다. 비가 오는 시간이 있고, 비가 가는 시간이 있다. 바위와 모래 틈 사이에 머무는 물방울들의 시간, 그 시차가 숲을 만들고 풀벌레를 키우고 새들을 먹여 살린다. 빗물이 곧바로 강과 바다로 돌아가지 않고 세상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순환의 시간을 지연시키는 동안, 나무와 풀과 들짐승들이 자란다. 비가 내리는 것과 같은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이 완전히 종결되어 흔적 없이 사라지기 전까지의 시간,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어제 내린 비 - P243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까지 물방울이 겪는 숱한 우여곡절의 시간, 뜻밖의 급류와 흙탕물의 시간, 얼음처럼 차갑고 어두운 지하수의 시간, 누군가의 땀과 뜨거운 눈물이 되는 시간을, 우리도 빗물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어제 내린 비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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