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밀란 쿤데라 지음 / 청년사 / 1992년 1월
평점 :
절판


 

L'mmortalite


 



보름 전에 읽었는데, 간단하게 내용을 요약할 수가 없다. 책은 이미 도서관에 반납해버려 뒤적여 볼 수도 없게 되었다. 하긴, 책을 봐도 내용을 요약해내긴 힘들 것 같다. 괴테와 베토벤, 괴테 등등의 유명한 이들의 연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한, 그렇게 함으로 해서 자신의 존재를 앞으로의 인류에게 지워지지 않게 하려 하던 한 여인의 이야기, 즉, ‘불멸’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하던 여인의 이야기, 조금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존재가 사라진 이후에도 유명인이 되면 그 존재의 증거가 발견될 때마다 인류의 숫자만큼의 추문(?)을 낳는다. 무수한 속설과 구설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마디 반박도 할 수 없다. 그냥 그걸 다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물리적으로 존재는 사라져버렸지만. 그러한 인간의 속성에 대한 이야기.

이에 곁들여 자신의 존재와 육체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도 찾을 수 없는 여인과 그 여인과 정반대의 속성을 타고난(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어 미친 듯한,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살아있음이 증명된다고 믿는 것 같은) 동생, 그리고 여인의 남편(은 결국 동생의 남편이 된다) 이야기. 인간 존재의 속성과 관계가 얽히면 얼마나 복잡해지는가. 사실 사는 건 이보다 더 복잡할 텐데도 이 소설이 난해하달까 엄청난 사슬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밀란 쿤데라는 대단한 작가다. 현대에 대한 그의 견해는 절대 현대를 바라보는 시각, 그 표면에 머물지 않는다. 현대성(?)이 우리에게 남기는 흔적은 무엇인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소설을 통해서.(아래 사진에 대해 인용한 문장 같은 경우) 이미지와 존재, 육체와 존재 사이의 선을 타고 넘나든다.

절대 영화로 만들 수 없는 소설.


『농담』이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사랑』이라는 단편집을 볼 때도 확연히 느꼈지만, 밀란 쿤데라는 하고 싶은 말, 해야할 말, 이 세계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뚜렷이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그 의사는 결코 어떤 한 마디로 요약되는 문구가 아니라는 것(인간은 결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다. 아무리 단순해 보이는 그 누구라도 그는 겹겹이 쌓이고 쌓인 존재다. 모든 인간은 어떤 경계선을 위태롭게 걷고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쿤데라의 날카로움에 계속 계속, 끊임없이 경악하게 된다.


어쩌면, 두 자매(여인과 동생-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한 인간 안에 숨겨진 두 가지 성향일 수도 있다. 어떤 하나의 관념이 어떻게 인물로 태어나는가를 이 소설은 보여준다. 대체 관념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이야기화할 수 있는지, 경이로울 지경이다.


『불멸』은 인간의 내면, 감추고 싶은, 본능, 욕망과 그 욕망을 미적으로 (서살 그렇지 않을 지라도 본인에게는 그렇게 비치는) 이미지화하는 것을 메스로 해부하듯 보여준다. 이때 인간은, 추악하다기 보다는, 우스운 존재, 자신의 계산과는 전혀 달리 타인에게 해석되는 존재, 화살을 쐈으나(표적은 어떤 이미지, 화살은 행위), 대부분 표적을 비껴나간 발사를 하는 존재가 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쿤데라의 소설은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외따로이나 결국, 타인 속에서 파악되는, 몹시 모순적이고 불가해한, 인간만의(?) 방식이다.

 





-나는 그들을 증오할 수 없다. 나를 그들과 결합시키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공통점도 갖지 않았다.

-시의 천분은 어떤 놀라운 관념으로 우리를 현혹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존재의 한 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게 하고 견딜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하는 데 있다.


-고독: 시선들의 감미로운 부재(不在).


-유일자의 눈이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로 대체된 것이다. 삶은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참여하는 유일의 거대한 난교 파티로 탈바꿈했다.


-카메라가 고뇌에 빠져있는 당신을 촬영할 때 어디에 개인주의가 있지요? 오히려 그 반대로 개인이 이제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예요. 완전히 타인의 소유로 전락했다구요.

(중략)

사진 찍는 권리가 다른 모든 권리의 상위에 올랐지요. 요즘엔 그렇게 모든 것이, 정말 완전히 변해 버렸어요.


-서로 다른 두개의 얼굴을 닮은 사진을 나란히 놓으면 물론 당신은 그 두 얼굴의 서로 다른 점들을 모두 파악할 거예요. 하지만 당신 앞에 이백스물세 개나 되는 얼굴이 있으면 문득 당신은 그 얼굴들이 한 얼굴의 무수한 변이체에 불과하며 그 어떤 개인도 존재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거예요.


-그녀는 그 모든 일들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확신에 젖어 있었으므로 도무지 그들의 전쟁을 괴로워한다거나 그들의 축제를 함께 즐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이미지가 우리에겐 가장 큰 미스테리인 것이다.


-사랑의 감정은 이처럼 우리 모두를 알고 있다는 환상으로 속여넘긴다.


-일단 투쟁이 시작되면 힘이 작동되며 힘은 첫 번째 표적에서 멈추지 않는다.


-음악: 영혼을 부풀리는 펌프기구. 이상팽창된 영혼들은 거대한 풍선들로 화하며 공연장 천장 아래로 떠다니며 끔찍한 혼잡 속에 서로 충돌한다.


-비존재의 관능


-인류와의 비연대성: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오직 한 가지만이, 즉 어떤 구체적인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만이 이 일탈로부터 그녀를 구출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타인들의 운명이 그녀와 무관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그 운명에 의존하며 거기에 동참하고 있는 까닭에 말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녀는 사람들의 고통, 그들의 전생과 그들의 바캉스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그런 느낌을 더 이상 가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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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06-02-03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는 가장 과대평가된 작가 중의 하나로 꼽기도 한다지만 쿤데라는 참 글을 잘써요. 그중에서도 이 작품이 제일 좋았어요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