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요 - 반다나 시바의 나브다냐 운동 이야기 생각을 더하면 7
반다나 시바.마리나 모르푸르고 지음, 알레그라 알리아르디 그림, 김현주 옮김, 전국여성농민 / 책속물고기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까지 읽기로 책을 오늘 읽었다. 거의 마지막 순간에 읽은 거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고 토종씨앗 모임에 참여했다가 받아왔다. 씨앗을 심지 않는 삶이 싫어 여기 왔지만 여전히 씨앗을 심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 속에 삶을 산다. 자본주의가 일구어놓은 어떤 관계들 속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강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데 방법은 뭘까, 먹는 걸까, 즐거운 걸까, 행복한 걸까, 그건 뭘까, 하면 되는 걸까, 그런 기분이 여전히 드는데, 그러면서 소비를 통해 만족을 추구하는 삶을 살다가 나는 그게 싫어서 나온 건데, 하다가 하는데, 아주 자신이 있지는 않지만, …

 

바닷가에서 책을 읽었다. 노동절이라 차가 평소 평일보다 많은 날이었다. 집에서 읽다가 바닷가에 나가서 읽고 싶어서 앉아 있다 보니 낮에 달이며 물결이 보이고 파도소리가 좋았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자연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 자본이 중심이 돼버린 시대, 왠만하면 레토르트를 먹지 않고 사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이었는데, 여전히 레토르트가 가장 편한 시대, 엄마에게도 어제 결국 레토르트를 보내드렸는데, 절충안 같은 음식들이 계속 나오고, 거기 어떤 자본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여기까지만 하며 그러고 있지만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은 그냥 콩이다. 그냥 삶이다. 수치화되지 않은, 수치화할 없는,

 

바다, 물결, 바람,

 

자연,

 

너무 거대해서 이해하려다 고꾸라지지만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그것을 위한 어떤 노력들이 세계 속에 있다.

 

소중하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국 하나의 씨앗 속에는 과거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는 것이지요.
- P26

그래서 인도에서는 씨앗을 뿌릴 때 ‘이 씨앗이 지지 않게하소서.‘라고 기도한답니다. - P28

씨앗을 발명품 취급하는 것은 이 땅에 대한 모욕이자 폭력이나 마찬가지예요. - P53

씨앗은 누군가의 발명품이 아니라 수백만 년에 걸친 자연의 진화와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인간 공동체의 진화의 결과물이에요. - P56

자그마한 씨앗은행들이 볼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씨앗은행의 가치는 엄청나요. 하나의 씨앗에서 수십 개, 수백개의 열매가 달리고, 이 열매들은 우리의 먹을거리가 되니까요. 그리고 씨앗은행에서 보관하고 나누어 주는 토종 씨앗들은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정직하게 보여 주거든요. ‘콩‘이라고 써 있는씨앗을 심으면 ‘콩‘이 열려요. 박테리아 유전자도, 독성 성분도 아닌 그냥 ‘콩‘만 먹을 수 있다니까요.
- P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특히 무엇보다도 음악) 안에서 우리는 ‘의지‘를 구성하는 실질적인 관심과 노력을 잊는다. 쇼펜하우어는 그럼으로써 우리가 자신을 잊고, 자아가 없는 상태에서 행하는 명상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 P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정으로 기독교를 떠나려면 인류 역사에 의미가 있다는 개념을 포기해야 한다.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는 인류의 역사에 궁극적인 의미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다른 지역의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인류 역사란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는 일련의 자연적인 순환이었다. 인도에서는 인류 역사란 무한히 반복되는 꿈의 집합이었다. 인류 역사가 반드시 의미를 가진다는 관념은 기독교의 편견에 불과하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인류‘의 역사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개별적인 사람들의 인생은 존재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인간이라는 종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이는 각 인생들의 알 수 없는 총합을 뜻하는 것일 뿐이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삶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의 삶은 비루하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역사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구름의 모양에서 규칙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같다.  - P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지는 어질지 않으며만물을 추구(짚으로 만든 개)와 같이 여긴다." 인간이 지구의 균형을흔들어 댄다면 짓밟히고 팽개쳐질 것이다.  - P56

철학은 인류에 대한 종교적 이미지에 진보와 계몽이라는 휴머니즘의 가면을 씌워 그 이미지를 계속 재생하는 가장무도회 노릇을 해왔다. 가면 까발리기를 가장 잘 하는 철학자조차 결국에는 가면 쓴 사람이 되었다. 가면을 벗겨서 우리의 동물적 얼굴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동물들은 태어나 짝을 찾고 음식을 구하다 죽는다. 그게 다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다르(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는 인격체person며, 우리의 행동은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다른 동물은 자신의 삶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지만 우리는 의식적conscious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이러한 이미지는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의식consciousness과 자아selfhood와 자유의지freewill며, 이것들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모든 생명체보다 우월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라는 뿌리 깊은 믿음에서 나온다.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이러한 견해가 오류임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 삶은 의식적인 자아의 활동이라기보다는 분절적인 꿈의 조각들 같아 보인다. - P59

신경이 쓰이는 중요한 문제들 중에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 삶에서 가장 중차대한 의사 결정 중많은 부분이 우리가 의식할 새도 없이 내려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인류는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는 자기 존재를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는 신에 대한 비이성적 믿음 대신 인류에 대한 비이성적 믿음을 선택한 사람들이 가진 신념이다. 그런데 기독교와 휴머니즘의 공허한 신념을 버리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신, 불멸, 진보, 휴머니티를 읊어대는 이 배경 음악을 꺼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삶을 이해하고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 P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