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두 번째 글을 씁니다.
김종호 씨의 해고와 관련해서 그간 몇몇 분들이 알라딘 불매를 선언했습니다.
저 역시 그 과정을 지켜보았고, 불매를 선언했습니다.
쿠바 혁명 이후 쿠바와의 금수 조치를 선언하기 전에 케네디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이 쿠바산 시가를 대량으로 매입한 일이라고 하던데
음, 제 적립금만 4만원이 넘는데 일단 책 주문 먼저 해놓고
불매 선언할 껄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불매 선언하면서 네 가지를 고민했습니다.
첫째.
김종호 씨 해고 조치와 관련해서 알려진 바가 많지 않은데
제한된 정보 속에서 불매운동에 나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둘째.
불매운동을 주장하는 분들과 그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일단 저도 마찬가지지만 불매하겠다고 말만 했지...
그렇다면 알라딘 측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불매를 철회할 것인지
다시 말해 알라딘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이죠.
셋째.
비정규직 노동자, 파견근로자, 도급노동자 해고가 알라딘만의 문제가 아닐진데
왜? 어째서? 알라딘만 문제를 삼나?
넷째.
이거 사람들이 아무도 참여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지요.
자문자답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첫째.
-> 일단 김종호 씨의 문제제기에 비해 알라딘의 답변이 미흡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비정규직 문제 전반에 대해 우리가 한 번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이야기되므로 잘 알고 있는 것 같아도
막상 김종호 씨 문제제기 이후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들이 많았거든요.
이야기를 나누고 알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고, 의미가 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둘째.
-> 알라딘에 무엇인가 요구를 하기에 앞서 먼저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일이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의 한 걸음이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구 사항은 필요할 겁니다.
가장 작게는 좀더 성의 있는 해명을 요구할 수 있을 겁니다.
또 김종호 씨 본인의 희망에 따라 복직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겁니다.
더 나아가 김종호 씨를 비롯해 알라딘의 하부구조를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재 처우조건이나 향후 알라딘 측이
이에 대해 어떤 개선책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겠죠.
셋째.
-> 인트잡의 홈페이지에서 여러 협력업체들의 목록을 바라보면서...
저 역시 새삼스럽게 비정규직 노동자, 파견근로자, 도급노동자의 문제가 알라딘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새삼 절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어째서? 알라딘만 문제를 삼나?"라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답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알라딘서점을 주로 소비하는 소비자이고, 알라딘에 둥지를 튼 블로거입니다.
제가 입고 쓰는 물건이 '피묻은 다이아몬드'처럼 내전 지역에서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생산한 불공정한 산물이 아니길 바랍니다. 아동착취에 의해 생산된 물품이 아니길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알라딘이 경영상 어쩔 수 없는 이유라 할지라도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는 기업이길 바랍니다.
알라딘 불매는 알라딘을 망하게 하거나 타격을 입히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한이나 한계를 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그때까지도 정말 알라딘이 아무런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 같은 사람에게 책 안 팔아도 좋으니 나가주면 좋겠단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테고요.
넷째.
-> 가장 마지막 고민이자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저보고 '파워블로거'라고 하지만 저는 알라딘을 처음부터 쉼터 겸 놀이터로 이용한 사람입니다. 이런 곳에서 뭔가 일을 벌이게 될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고, 현재도 이것을 일로 벌인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지금까지 서재인들과 큰 분란도 없었지만 여러 서재들을 자주 왕래하면서 인덕을 쌓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거 공연히 나섰다가 아무 성과도 없이 물러서면 정말 창피하겠단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냥 이 순간 <슬램덩크>의 정대만 처럼 천재 강백호의 리바운드, 채치수의 블로킹, 송태섭의 인터셉트, 서태웅의 천재성, 권준호의 상냥함과 성실함을 믿고 3점 슛을 날려 봅니다. 저 공이 림을 맞고 튀어나와 게임아웃이 될지, 성의있는 답변과 해결책을 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저도 우산을 버리고, 김종호 씨와 함께 겨울비를 맞으려고 합니다.
뒤늦게 합류해서 먼저 시작한 분들에게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