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찬물 끼얹듯 이런 글을 대뜸 올려서 죄송스런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만, 일이 생각보다 커지면서 그냥 지켜보고만 있기 좀 답답하네요. 저만 관심이 없어서 더 많은 정보가 없는 줄 알았는데, 바람구두님 글을 보면서 다른 분들도 가진 정보량에서는 별 차이가 없구나 싶어 안심이 된 까닭도 큽니다.
일단, 제가 가진 가장 큰 불만은 불매운동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정확한 fact 나 구체적인 문제점보다는 일반적 담론에 기대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분명 우리 사회의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해고를 당한 김종호씨도 그 폐해를 온 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중의 한 분이신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비정규직이 뭔가요? 정규직이 아니면 모두 비정규직인가요? 아르바이트나 인턴과는 어떻게 구분이 되나요? 저는 다른 분들의 뜨뜨미지근한 반응의 원인을 이 "비정규직"이라는 단어의 모호한 사용에서 찾습니다. 관념적으로는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되어야 하는건 맞는데, 이번 경우가 딱히 그에 해당하는지 헷갈린다는거죠.
이는 처음 김종호씨의 글이 알려졌을 때 꽤 후끈하던 반응이 알라딘 쪽의 답변과 함께 어느 정도 사그라든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알라딘에서는 매년 성수기 때 임시 인력을 고용하고 있었고, 따라서 처음부터 단기 근무임을 명시했었다, 그런데 중간 관리 업체인 인트잡에서 제대로 김종호씨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것 같다 라는 것이 알라딘 측의 답변이었습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나올 수 있는 반론은 두가지 중 하나입니다. 성수기 때만 쓰는 임시 인력을 모두 정규직으로 써라, 아니면 채용시 단기 근무임을 정확하게 사전 공지하도록 중간 관리 업체를 제대로 감독하라. 알라딘 측에서는 후자를 약속했기 때문에, 사실상 가능한 반론은 전자 밖에 남지 않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판단이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비정규직의 문제는 기업들이 고용 계약의 형태만 비정규직으로 바꿈으로써 정규직과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적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이 기업활동에 필요한 비용의 매우 큰 부분을 개별 노동자와 사회에 떠넘기는 행태지요. 그래서 정상적 기업활동에 상시적으로 필요한 인력들은 정규직화 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겠구요. 하지만, 이것이 기업들이 "모든" 인력을 무조건 정규직으로만 쓰라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업 활동에 있어 예외적인 상황들은 항상 존재합니다. 이런 예외적인 상황을 위해 임시로 인력을 모아서 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 고용계약을 유지할 수 없는 노동인력(예를 들어 학생)들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리는 부분이 될테구요.
그렇다면, 판단은 알라딘이 지금처럼 성수기 임시 인력을 고용해 쓰는 것이 과연 예외적인 상황인가라는 점으로 넘어갑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와 아니오 모두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년 중 아주 바쁜 시기가 두세달 있다면 그 때만 필요한 인력을 쓸 수도 있다는 판단이 예 이며, 매년 반복되는 상황이라면 인력의 순환배치 등을 통해 굳이 임시 인력을 안 쓸 수도 있지 않냐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아니오 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정도의 판단은 기업의 의무가 아닌 선택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쪽 모두 장단이 있으니까요. 만약 이번 단기 고용에서 고용된 사람이 김종호씨가 아닌, 예를 들어, 전역 후 복학을 기다리는 학생이었다면 서로 WIN-WIN 의 상황이었겠지요. 단기 고용 없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더 좋은 선택이지만, 그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더 많이 지겠다는 보다 적극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그렇지 않았다고 비난 받을 내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이 모든 논리는 알라딘의 답변이 사실이라는 전제에서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답변이 매우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불매운동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종호씨 본인은 물론 불매운동을 주장하시는 분들 누구도 그 판단을 뒤집을만한 근거나 사실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계십니다. 제가 게을러서 제대로 알아보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바람구두님 글처럼 김종호씨나 다른 관계자분들이 보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려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전에는, 저로서는 불매운동에 참여할 아무런 근거를 찾지 못하겠네요.
불법 파견 이야기도 얼핏 나오던데(김종호씨가 처음 올린 글에도 있었습니다만), 그것 역시 판단의 근거가 모호합니다. 원청업체로부터 직접 업무 지시를 받았다? 글쎄요, 저 역시 갑과 얼굴 보고 마주 앉아 일하는 도급 노동자입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현장 담당자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는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현실적으로 도급과 파견의 경계가 모호하고, 그 경계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불법 파견 주장은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수 중 하나이지 문제의 본질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이 되네요.
아무튼, 이러한 판단을 통해 저는 불매운동을 해야 할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불참을 할 수 밖에 없지요. 하지만 이 글을 쓴 목적이 불참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알지 못하는, 그리고 미처 생각치 못한 지점들이 반론으로 제기되어 무엇이 문제인지가 확실해진다면, 거꾸로 불매운동에 적극 참여할 의사도 있습니다. 중요한건, 토론의 결과로 불매운동이 진행이 되어야지, 일단 불매운동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움직임에 동의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의견 부탁 드리겠습니다.
ps. 저는 바다 건너 있는 관계로 알라딘에서 책을 거의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불매운동 불참의 효과는 0 에 가깝습니다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