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가 소란스럽다. 업무 마감전 5분 전.

귀를 울릴만큼 떠들어대는 소리들은 아니지만, 마지막 정리 하느라 바쁜 자판소리, 그리고 전화하는 소리들, 그리고 간간히 잡담하는 소리들.

 

파트를 옮겼다. 팀원도 완전히 바뀌었다.

 

.... 그래도 좋은 사람들 같다. 뭐랄까, 이전 파트 사람들도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끼리끼리 뭉쳐 있고 이기적인 면이 많다 느꼈었지만, 이 파트는 조금, 따뜻한 것 같기도 하다. 뭐어.

현재 우리 팀이 그런 것이겠지만서도.

 

여하튼, 좋은 팀원 달라는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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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3-10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시겠어요^^

새벽별 2005-03-10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좋답니다.^^
 

 

사귐이라는 것은, 참으로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또한 그러한 사귐이 없으면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무건조하고 또한 심심하고 외롭기에 어쩔 수 없이 시도할 수 밖에 없는 일.

회사에서의 나와 집에서의 나는 딴 판이다. 회사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자기 할 일 하고 그냥 조용히 묻혀 지내다가 집에서는 활개를 친다. 뭐 집에서도 가끔씩 쥐죽은 듯 지내긴 하나, 기본 성격이 틀려진다.

회사에서의 나는 내성적인(?), .. 아니다 말 없는 인간이고, 집에서의 나는 무뚝뚝함에 목소리 큰, 그리고 애교많은 딸에 폭군 스타일의 누나이다. 완전히 다르지.

뭐어, 사람들과 사귀어서 이 말 저 말 섞는 것도 좋긴 하지만,

그네들과 나는 공유할 수 있는 화제가 없기에, 또한 그런 화제도 없으면서 이 말 저 말 만들어내는 취미나 재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 뭐어, 실제로는 귀찮기 때문이다. 요즘 귀차니즘이 극이 달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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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맨발천사 최춘선 김우현의 팔복 시리즈 1
김우현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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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다음에서 접한 동영상에서는 조악한 화면으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가 그렇듯 음향시설이라고는 전무해서 말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운 전철소리 속에 자그맣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역사상 가장 큰 자비의 초대, 예수 십자가 자비의 초대. 화면에 비쳐지는 모습은 자그만한 어깨가 잔뜩 휜 어느 노인의 모습이었고, 목소리도 형편없이 갈라져 있었다. 제법 큰 목소리였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제대로 들리지 않을.

그리고 이어지는 그 노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그리고 보는 나로서도 낯뜨거울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노인,.. 어느새 보고 있던 나도, 그 노인을 비웃고 뜨악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같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보고 나서도, 그냥 무덤덤했다. 약간, 말로는 설명하긴 힘들지만 미묘한, 무언가가 울렁거리는 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그 동영상을 보고 운다든지 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책을 구입하게 되고, 작고 이쁘게 싸여진 책은 제법 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한 눈에 보기 좋은 사이즈로 나온 책을 문득 펼치고, 이윽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내용과는 다른 김우현이라는 사람의 자신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조적이고 씁쓸한 어조의 글이었다. 그리고 동영상에서 봤던 노인이 등장했다. 동영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약간의 뒷 얘기, 띄엄띄엄 말하는 통에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가 활자로 펼쳐졌다.

분명 처음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렇게 슬프거나 감동적인 장면이 아닌데에도 왠지 울음이 울컥 넘어 왔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 가슴 속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울음, 알 수 없는 아픔이 넘어와 읽기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읽다가 울고, 또 읽어나가다가 또 울고, 반복하기를 여러번, 드디어 책을 덮었다.

 

지난 몇 달간, 나 자신도 섬뜩할 정도로 무미건조해진 나날의 연속이었다. 버릇처럼 신앙서적을 사모으지만, 보면서도 그냥 흥미 위주였을 뿐 그다지 아무런 감흥도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리뷰를 쓰면서도 솔직히 쓸말이 없을 정도로, 내 감정은 메말라 있었다. 제작년 11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난생처음 부흥회 준비기도란 것을 하고 매일매일 모여서 교회의 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기도 했었을 때가 있었다. 모태신앙으로 살아온 세월만큼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었지만 그렇게 뜨겁게 주님을 사모했던 것은 그 때가 최초였었다. 그리고 한 달 두달, 초신자처럼 초조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매일매일을 울고 기도하고 가슴을 치며 보내고, 그렇게 또 몇달이 흐르고 서서히 원망과 체념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원망하면 안된다는 말은 또 들어서는 그 감정으로부터 그 상실감으로부터 도피하여 닥치는 대로 만화,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있던 순간은 달콤했고,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었고, 또한 책을 덮고 나서도 모든 것에 무감각해져 그 토록 가슴을 치던 괴로움은 느끼지 않아도 됐었다. 좋은 거라고, 편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토록 달고 달았던, 황홀했던 예배가 그냥 그렇게 그냥 좋은.. 그냥 그런.. 예배로 느껴지기 시작하고, 찬양을 부를 때도 큰 기쁨은 얻을 수 없었다.

... 실로 그 때 이후로, 처음일 것이다. 오늘처럼 목 놓아 울어본 것은.

무엇 때문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최춘선 할아버지가, 그의 삶이, 그의 행동과 말들이, 이상하게 가슴을 쳐서, 쥐어뜯지 않고는, 울부짖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다만 쓰라리게 부딪혀 오는 것들, 후회. 저런 사람도, 저런 가장 미천한 자리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충만하여, 진정 가난하게 되어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난 대체 이게 뭔가.

기도라는 것은 무언가를 구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은 당연히 날 축복해서 부요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날 축복하지 않으면 뭔가 서운하고 섭섭하고 뭔가 이상하고, 기도를 받는, 말씀은 듣는 의미가 그다지 없어지고, 매일매일 고된 회사 생활을 버텨나가기가 힘들고,. 그랬다. 내 죄를 지고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은 이미 내 머리 속에서는 지워지고 없었다.

예수 십자가 자비의 초대. 왜 이리 이 말이 마음을 울리던지.

어찌 그리 오만했던가. 어떻게,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교만했던가. 당연히 부해져야만 한다고, 축복만을 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지 않았을 때는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이 구역질날 정도의 오만함이여. 물질을 부어주심으로써 쓰임받는 자도 분명 있으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를 부하게 하기 위함이라 하였지만, .....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나는 이 얼마나 추악한 모습이었나. 내 마음 속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피로 얼룩진 희생은, 그분이 이 땅에 인간으로써 겪어야 했던 가난함과 고통과 괴로움, 피곤함, 배고픔, 모욕과 수난은, 사라져 있었다. 아아... 이 더럽고 더러운 자여. 은혜도 모르는, 짐승만도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부끄러움으로 미칠 것만 같았다. 딱 그 심정이었다. .... 내가 느낀 것은 감동이 결코 아니었다. 그 사람의 행적의, 그 사람의 거울을 통해 본 나의 추악한 모습이었다. 아직도 한 쪽 발목을 세상에 담근 채, 이 정도는 괜찮겠지 라고 자위하는 위선적인 모습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타협을 하는가. 얼마나 많이 진리를 왜곡하고 본질을 흐리는가. 겉으로는 독실한 척, 신령한 척, 믿음 좋은 척,  .. 척이란 척은 다 하고 다니지만 실상은 어떤가. 어떻게 감히!! 주님 앞에서,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 안에서, 거짓된 모습을 가장한 채, 고개를 뻣뻣히 들고 다닐 수 있다는 건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어떤 권위를 힘입어서?! 어떻게 진실된 종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슬람에서는 그 알라를 향해 머리를 땅에 대고 경배하며, 불교에서도 부처상을 향해서 백번이고 천번이고 머리를 땅에 까지 닿는 절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나의 모습은 어떤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때, 고개를 뻣뻣히 쳐들고 머리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며 건성으로 찬양을 부르고 대표기도가 너무 오래한다고 불평하고 다닌다. 그러면서 주를 진실되게 믿는 사람들을 향해 '광신도'라며 손가락질하고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고, 자기의 좁아터진 식견이 전부라고 믿고 함부러 다른 이들을 판단한다.

 

 

 

... 이 책을 읽는 동안, 감동을 느끼길 원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발자취를 따라, 묵묵히 걸어간 저 최춘선 할아버지의 모습을 거울로 삼아, 이제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이켜 볼 때다. 변화할 때다. 무엇보다도 나 부터가, 그리고 우리가, 그리고 교회가, 그리고 이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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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월요일이다.

열나게 전화를 받고, 나니 3시 30분이었다. 그리고 6시까지 논다. 음하하.

물론 다른 사람들은 지금도 열나게 전화를 받고 있고, 6시까지 거의 풀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다!

여하튼... 노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수요일부터 평가가 강화되서 그 때부터는 정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지금처럼 빨리 받는 버릇이 들어서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여하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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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과 새침데기
데보라 시먼스 지음, 이지수 옮김 / 신영미디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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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글의 주인공 중에서 남주인공은 정말 로맨스소설에는 드믄 성격이다.

대부분의 소설에서의 남주는, 거의 한두가지 성격으로 요약된다. 흔히 카리스마 남주라고 불리우는, 엄청나게 강한 성격의 남주로서 남성적 매력이 폴폴 풍기고 끝내주게 멋진 외모에다가, 심심하면 으르렁거리고 살기를 피워낸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와는 정 반대의 인물, 여자에게 계속 끌려다니는 약한 성격의 주인공이다. 전자나 후자나 꾸며진 성격이라는 것이 드러날 정도로 비현실적이어서, 재밌게 보고 멋있긴 하지만 그다지 공감이 가질 않는다.

그런데 이 글의 남주, 랠리는 다르다. 보는 내내 정말 감탄하면서 봤기 때문에 다소 과장이나 지나친 미화가 섞여 있더라도 양해 바란다.

제목이 악당이니까 아마도 랠리를 가리키는 것이겠지만, 랠리는 전혀 악당이 아니다. 아마도 제인이 보는 시점에서의 악당이지만, 이렇게 착하고 예의바른 악당 봤나? 랠리, 이 글의 남주는 순하고 착하다. 잘생긴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남성적인 매력이 풍겨오는 것은 당근 기본이다. 약간 유약하고 자신감 없고 겉모습에 지나치게 신경스는 게 흠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흠잡을 데 전혀 없는 외모의 남자가 어딘가 어리숙하고 기죽어 있는 모습은, 뭐랄까.. 모성본능 자극한다. 그리고 매치 안되는 부드러원 말투와 유연함과 쾌활함이라니! (대다수의 로맨스소설의 남주 역시 부드러운 말투는 하지만, 그 내면에는 위협이나 가장, 그리고 무심함과 냉정함이 숨어있기 마련이지만, 랠리는 그렇지 않다!) 느물거리는 것이 아니라 쾌활하다. 거기다 상냥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화내는 법이 없다. 상대방이 아무리 자기를 긁어대도 어깨를 으쓱거리고 유머를 흘릴 뿐, 전혀 요동하지 않는다. 

글 속에서의 랠리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자기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유머를 선택했다고 했는데, 바로 그것이다. 제인이 중간에 자기를 모독하는 장면이 나오지만(설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흔히들 일어나는 살기라든지 눈이 엄청나게 날카로워져서 여주인공에게 보복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상처는 받았지만, 그것을 그냥 넘어가고, 오히려 제인의 비명소리에 허겁지겁 달려온다. 선량한 랠리녀석! 이 별명이 정말 딱 맞는다.

흔히 완벽한 외모의 남주에게서 보이는 번뜩이는 눈빛, 죽일 것 같은 기세, 바드득 이를 간다든지, 강제로 여자의 입술을 뺏는다든지, 상처받은 야수같은 모습은 없다. 화는 나지만 그 뿐, 오히려 한줌거리도 안될 상대에게 겁을 먹는다. 겁을 먹다니! 한심하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너무나 사랑스럽지 않은가? 이렇게 선량한 인물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조심스러워하고 다가서는 것을 주저한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완고하고 딱딱하고 엄격한 부모가 있었지만, 그는 증오심이나 반항심 같은 것은 키우지도 않았다. 더구나 유머로 자신을 지키긴 하지만,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그것을 애써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과 고통에서 신경을 끄고 넘겨버려서 진심으로 상처받지 않는다. 설혹 그랬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성격을 변하게 할 정도로,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표시할 정도로는 아니다. 자신을 지킬 줄 아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되지 않은 오해로 미쳐 날뛰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류와는 차원이 다르다. 사랑을 그리 받으면 자라지도 않았는데도 무심함과 새침함으로 가장한 상대의 호의를 읽을 줄 알고, 안 그래도 부드러운데다가 벌꿀처럼 달콤해지기 까지 한다. 세상에 이런 남주라니! 이렇게 비현실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인물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지금처럼 이렇게 감탄할 성격이 아닌데도, 감탄을 하게 되 버린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난 아무래 보고 또 봐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이 랠리라는 인물은.

놀만큼 놀았으면서도 그 내면은 정말 순진무구한 소년, 사랑에 빠진 어린아이인 동시에 최고의 매너를 갖춘 신사, 말릴 수 없는 장난끼 그득한 개구장이, 벌꿀처럼 달콤하고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년, 동시에 폭발할 것 같은 남성미 넘치는 남자, 유약하고 자신감 없는 소심한 소년이다. 이 말도 안되는 조합이 이렇게 멋지게 어울린 인물은 본 기억이 없다.

여주인공, 제인은 평범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언니와의 비교로 인해 아예 어릴 때부터 꾸미고자하는 아름답고자 하는 노력조차 포기하고 대신에 지성과 날카로운 입담을 무기로 삼은 여자, 처음에는 랠리를 경멸하지만 차츰 그를 이해하게 되고 또한 존경하게 되고 그의 사랑을 받으면서 아름다워진다. 충동적이고 직선적인 성격이어서 말 실수도 많이 하지만 잘못했을 때는 잘못했다 솔직히 시인하는 점이 그녀의 장점이다. 그녀의 영혼 또한 그늘이 없다. 조금 엇나갔을 뿐 기본 자체는 순수하고 깨끗하다.

이 글의 남주, 랠리는 그런 그녀의 순수함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보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또한 그녀로 인해 쪼잔하기까지한 외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다. 멋지긴 했으나, 미성숙했던 소년이 사랑으로 인해서 진정한 남자가 된다고나 할까?

이 글의 뒷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너무나 현실적인 인물들.. 난 이 책을 사랑한다. 라고 말이다. 정말 나도 같이 말하고 싶다. 과장되지 않은(물론 다소의 과장은 있다. 어디까지나 로맨스소설이 아닌가. 미남미녀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물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공들여 묘사된 랠리라는 남주인공, 어찌 사랑하지 않고 견딜 수 있으랴. 이렇게 재밌고 매력적인 글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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