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나크의 장 9 - 즉위-완결
최정연 지음 / 청어람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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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착하고 모든 이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어 사랑을 받던 아이. 어느 순간 그 아이에게 터무니없는 누명이 씌워지고, 그 순간 그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던 그의 말빨과 재능도, 그토록 사랑했던 아름다운 미소와 착한 마음도 그들을 유혹해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가증한 모습으로 돌변해버린다.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이 어떻게 보이냐는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보이느냐에 달렸다. 그를 모함하는 자들이 준 비뚤어진 안경으로 보면, 그 아이는, 가식적이며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인간이지만, 그의 마음의 진실을 보면(독자인 내게 속속히 보이는 그 마음을 보면) 그는 더없이 착하고 따스하며 마음이 약한 가여운 아이일 뿐이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어떤 친구, 다른 이들은 다 손가락질하는, 도둑질을 했다던 아이.나 역시 그를 믿기가 어려웠지만, 그냥 믿었다. 믿어주었다. 말도 안되는 그 변명도, 수없이 늘어놓는 허풍도 그냥 웃으면서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줬다. 그러다보니 정말로 그 친구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중에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사람들을 볼때, 사람들과 말을 나눌때, 그 사람들이 가식없이 다가오느냐, 아니면 가식덩어리로 비춰지느냐는, 나에게 달렸다. 내가 어떤 눈을 가지고 그들을 보느냐에 따라,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좋은 쪽으로 보고자 해도 가끔씩 나쁜 점이 보이는데, 하물며 나쁜 쪽만 보고자 한다면 어떨것인지. 결국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파헤치려 들면, 피곤한 것은 나, 힘든 것도 나, 무의미한 것도 나이다.

사람이 어떤 코너에 몰렸을때, 그 사람을 어떻게 보기로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틀려진다. 카류리드 왕자를 쫓기로 결정한 아르디예프 마법사, 에르가, 세미르, 딜트라엘 등처럼, 내가 좋아하던 이가 어떤 코너에 몰렸을때, 난 그를 따를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시작은 그냥 즐기고 재밌고자 했던 글이었는데, 중반에 돌변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린 순간부터 난 울었다. 변해가는 카류가 안타깝고 그 마음이 손에 잡힐 듯해서, 믿었지만 배신당하고, 또 믿었지만 배신당하는 그 과정을 보면서, 그만 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초반의 무작정 착하기만 하던 카류는 그 많은 배신 속에서 살아남아, 더더욱 이기적이 되어간다.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때로는 좋아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딛고서라도 살아남는다. 그 모습은 아름답다. 처절하게 살아남고자 하는 몸부림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응원해주고 싶어진다.

대체 어느 누가 죽기를 바란단 말인가. 그리고 또한 책속의 인물이라고 해도, 주인공이 죽음으로 치닫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은 대체 누가 있을까. 불완전하더라도 고통의 연속이라도, 나라면 절대 극복하지 못할 아픔 속에서 일어나 앞을,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모습을 보기 원한다. 그 모습을 통해서라도 대리만족을 얻길 바란다.

8권 중반, 세미르가 죽고, 아르디예프를 죽음으로 몰아가면서도, 드래곤인 카이를 붙잡고 나를 떠나지 말라고 하던 그 카류의 이기심과 약함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서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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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0-1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오랜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