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 제3판 나남신서 410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 나남출판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에서 가져 온 푸코의 “성의 역사” 제1권. 예쁘게 장정된 이 얇은 책을 보니 1990년대 한국에서 이 3권짜리 “성의 역사”가 일으킨 열풍이 새삼 떠오른다. 이 책은 거리를 지나는 누군가의 손에도 들려 있었고, 어느 곳 탁자 위에도 놓여 있었다. 눈에 띄는 장정이어서 그런지 어디서나 이 책과 맞닥뜨리고는 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그런 흐름에서 낙오되어 있었던 것 같다. 뒤늦게 책을 샀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줄을 그으며 읽었다. 그러나 별 감흥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이번에 다시 책을 펼쳐 들었는데, 첫 몇 페이지를 읽다가 문득 원저의 출판 연도가 궁금해졌다. 1976년. 상당히 늦게 나온 책이다. 무엇에 대해서? 68에 대해서. 이 책에서 풍기는 사후적, 평가적 분위기는 그런 거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68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야심 찬 기획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책의 급진성이 특히나 도드라져 보인다. 푸코가 그 기획을 제대로 성취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것인데, 이는 푸코의 방법론을 고찰한 다음에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리라.

나는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 마디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개정판에서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몰라도, 초판에서는 원서의 ‘섹슈얼리티’가 ‘성적 욕망’으로 번역되어 있다. 내 생각에 이는 완전한 오류다. 이 책의 주요 테제 중 하나는 성을 욕망이나 본능, 유기체적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식으로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요 테제 중 하나인 억압 가설의 폐기는 사실상 욕망 이론의 폐기와 다른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푸코에게 섹슈얼리티란 무엇인가? 성sex을 핵으로 하는 이러 저러한 현상들의 총체인가? 푸코는 이러한 관점에 반대한다. 푸코에 따르면 섹슈얼리티란 특정한 시대와 장소를 배경으로 하여 육체, 쾌락, 담론, 지식 등의 영역들이 권력의 전략에 따라 연결된 거대한 복합체다. 푸코가 보기에 이러한 복합체는 17, 18 세기 유럽의 부르주아 계급에서 나타나 전계급으로 확대되어 갔다. “성의 역사”라는 책이 평가적이라는 말은, 그리고 그것이 급진적이라는 말은, 성을 유기체적 에너지의 흐름으로 해석하고, 그러므로 억압과의 관련 하에서 그것의 해방을 주장하는 이론들은 도학적이고 억압적인 담론들 못지않게 근대적 섹슈얼리티의 직접적인 산물이라는 푸코의 비판에서 잘 드러난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푸코의 정의에서 칸트주의의 흔적을 느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섹슈얼리티가 유럽 고전주의 시대의 권력의 전략에 있어 어떤 중요한 기제라면, 예컨대 조선 시대의 섹슈얼리티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 것일까? 분명 우리는 섹슈얼리티의 일반적 용법에 따라 이러한 사고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조선 시대의 섹슈얼리티와 유럽 고전주의 시대의 섹슈얼리티를 비교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말은 전자와 후자 사이에 어떤 공통적인 것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누구나 이 공통적인 것을 성sex이라 지칭할 것이다. 이때 우리가 성이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은 어떤 ‘실재reality’이다. 그러나 푸코는 이 성 역시 특정 섹슈얼리티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와 푸코 사이의 논쟁은 순환적일 수 밖에 없다. 이 논쟁은 정신 밖에 실재가 존재하느냐를 두고 벌어진 실재론-관념론 논쟁의 현대판이고, 그 기반은 주관성-객관성의 이원론이다. 내 생각에 이러한 이원론은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여하튼 푸코는 여전히 그 이원론에 기반하여 칸트주의적 해법에 기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기 어렵게 만드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푸코가 스타일리스트라는 점일 것이다. 푸코는 문장의 수사적 효과를 무척 중요시하여 어떤 대목은 거의 시처럼 읽힐 정도이다. 또 푸코는 실증적 자료들을 제시하는 수고를 들이는 대신 인상주의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일화들을 불쑥 불쑥 들이 민다. 결과적으로 푸코는 자신이 그토록 반대하는 헤겔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즉, 독자들은 수미일관하는 논증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동시에 그것의 허구성, 기만성을 의심케 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마지막 장에서 푸코는 봉건 시대의 죽음에 대한 권리와 근대의 삶에 대한 권력을 대비시킨다. 전자를 봉건 시대 군주의 권리로, 후자를 근대 국민 국가 관료제가 행하는 권력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서 푸코는 근대에 있어서의 대규모 전쟁, 사형 제도, 자살 등 죽음에 대한 권리와 더 많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들을 삶에 대한 권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해나간다. 명쾌하다. 그러나 문제는 죽음에 대한 권리와 삶에 대한 권력을 병렬적으로 대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홉스봄이 말하는 두 개의 혁명(산업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이 유럽 세계 전체를 뒤흔들 때까지 유럽 세계의 사람들 대부분은 농촌 공동체에 살았다. 그들의 삶의 대부분을 규율한 것은 군주나 영주의 폭력적 명령들이라기보다는 농촌 공동체의 관습과 전통이었을 것이다. 근대 국민 국가의 중앙집권적 관료 조직의 장치들이 대체한 것은, 그러므로 바로 이 관습과 전통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민의 삶을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기제로서 대비되어야 할 것은 이러한 관습(전통)과 근대적 제도, 기관일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푸코가 공들여 서술한 마지막 장 전체의 의의가 허물어져 버린다. 푸코는 전통, 관습에 대해서는 아예 논하고 있지 않으므로 이러한 붕괴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방법이 없어 보인다. 헤겔주의적 이론들의 운명을 따르는 셈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관습과 근대적 장치들 사이의 대비라는 관점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금욕주의를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럽 세계에 국민 국가가 등장했다는 것은 국가가 국민이라는 단일체를 관리할 수 있는 물질적 수단(대표적으로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과 각종 제도적 장치들(행정 조직, 학교, 헌법 등등)이 구비되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여기서 사회, 혹은 공적 공간의 창출이라는 측면에 주의해보자. 공적 공간이 창출되면서 사적 공간(가족, 마을 공동체 등)도 동시에 특정되고, 그러면서 둘 사이에 미묘한 긴장 관계가 성립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학교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학교란 인구의 생산 계열(노동, 출산, 가업 잇기 등등)에의 즉각적인 투입을 보류하면서 창설된, 가정과 내적 관계에 있는 공적 공간이다. 여기서 내적 관계는, 예컨대 공적 공간(학교)에서의 수음에 대한 비판과 훈육은 학업이나 신체 능력의 신장, 더 넓게는 건강한 국민의 양성이라는 국가 수준에서의 이념과 관련되겠지만, 그것이 가정에 투사되면 애초의 이념과 다른 논리가 발현되어, 요컨대 청소년의 금지된 성적 활동과 부모(성인)의 합법적 성적 활동이라는 두 영역을 뚜렷이 대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시한다. 이 두 영역 사이의 긴장 관계는 프로이트에 의해 잘 포착된 바 있고, 그것의 본질은 (내 생각에는) 아이의 눈을 의식하게 된 어른의 성일 것인데, 이른바 빅토리아 시대의 금욕주의의 많은 부분은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실은 근대에 발생한 공적 공간이라는 아이디어는 푸코의 것이다. 푸코는 이를 (혼인 장치와 대비되는) 섹슈얼리티 장치라는 개념으로 포착했다. 내가 이를 사적 공간, 공적 공간이라 한 것은 당대 유럽 역사의 전체 운동 속에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포괄해 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푸코라면 이러한 총체사적인 입장을 단연코 거부할 것이다. 푸코는 권력이라는 하나의 계열 안에서만 문제를 다루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근대라는 시기에 공적 공간, 혹은 섹슈얼리티의 장치가 등장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내게는 이것이 커다란 문제로 보이는데, 발생론적 과정을 구축할 수 없는 이론은 자의적 구성에 빠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좀 더 이론적인 차원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푸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권력 관계는 의도적이고 동시에 비주관적이다. 권력 관계 구석 구석에 계산이 스며들어 있다. 일련의 목표와 목적 없이 행사되는 권력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권력이 개별적인 주체의 선택 또는 결정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108페이지) 우리는 푸코에 쉽게 동의할 수 있다. 비-주체적인 의도란 충분히 가능하며 건전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제는 권력, 의도, 전략이라는 개념을 실제로 구축해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개념은 자의적인 것이 되고 만다. 도대체 푸코는 근대적 권력의 전략이 육체에 대한 규율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해 그것이 과학인가 신화인가 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 것과 동일한 이유에서 우리는 푸코의 자의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리학 이론들의 역사가 잘 보여주듯이 이론과 실천은 동일한 차원에 있다. 근대 세계의 역학을 푸코의 주장대로 권력의 지배 전략과 그 저항이라는 단차원 안에서 이해해보자. 이런 관점에서, 예컨대 한국에서 최근 문제가 된 사립 유치원 사태에 어떤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푸코적인 해법은 신자유주의적인 것과 매우 유사한 것이 될 것이다. 푸코식의 정치 철학은 파산할 수 밖에 없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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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로 2019-01-02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weekly님 (글도 자주 써주세요ㅎㅎ) 약간 관련 있는 푸코의 언급이 생각나 찾아 봤는데

˝내 책을 읽은 사람들, 심지어 내 작업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조차도, 내게 종종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당신도 결국 알고 있겠죠? 당신이 이야기하는 것이 허구일 뿐이라는 것을요!˝ 그러면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하지요. ˝그 누가 자신이 허구가 아닌 것을 쓴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요?˝

이렇게 나오면 더 할 말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조금 앞에서는 ‘여전히 자신에게 진리의 문제는 매우 까다로운 것‘이라고도 말하네요. 저도 최근에 읽은 김에 첨언을 해봅니다. (개정판에선 sexuality를 성생활로 번역하고 있네요. 약간 농담조로 할법한 ‘성성‘ 이라는 번역어를 택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weekly 2019-01-03 17:1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이여로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용해 주신 푸코의 말이 저는 여러 면에서 아주 아주 마음에 드네요.:)

섹슈얼리티라는 말의 번역에 대해서 저는 한국의 번역자들이 지나치게 원칙주의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냥 ˝섹슈얼리티의 역사˝라고 하면 안되는 것인지... 불경을 처음으로 중국어로 번역하던 시대에도 ‘원칙‘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엊그제 비비씨에서 방영하는, 존 르 까레 원작의 6부작 "북치는 소녀" 완결편이 끝났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다 하여 방영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었는데, 나도 보면서 그 세련되고 섬세한 연출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서구와 아랍 문화에 문외한인 한국인 감독이 어떻게 저런 섬세한 연출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요즘 비비씨 드라마들이 하나같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찬욱의 이 작품을 더욱 신선하게 느낀 것일 수도 있겠다.


"북치는 소녀"는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을 소탕하려는 이스라엘 정보 기관, 그리고 거기에 휘말려 들어간 젊고 예쁜 영국인 연극 배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최대한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겠지만 이 작품이 친-이스라엘적인 것이라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반대의 입장에 서는 것은 이곳 영국에서는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최근 1, 2년간 영국 노동당 안에서 벌어진 가장 커다란 논란은 반-유대주의에 관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에 행하는 탄압을 비판해도 될까? 비판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스라엘 정부의 탄압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반-유대주의를 구성하거나, 그것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우스운 일이다. 이중으로 조소를 보낼 만 하다. 첫째, 영국이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천적인 기초자라는 점에서(즉,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근원적인 가해자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리고 둘째, 반-유대주의라는 금기는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 중에서 대표적으로) 영국이 그동안 저질러 온 반-인륜적인 행태들을 히틀러라는 절대악 뒤에 숨기려는 가련한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이런 인화성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게 껄끄러워 아예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삼국의 감독을 데려 오기로 한 것은 아닐까 하고... -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방영이 시작되고 나서 허겁지겁 책을 주문했는데, 책이 늦게 오기도 했고, 이야기가 굉장히 느리고 섬세하게 전개되어 후다닥 읽을 수 있는 성격의 책도 아닌지라 결국 초반부 밖에는 읽지 못했다. 여튼, 여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가 마치 책에서 튀어나온 듯 책에서 묘사된 인물 그대로여서 감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 혹은 이 책의 근원적인 문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더라. 즉, 젊은 영국 여자(즉, 서방 세계의 젊은이)가 강자 이스라엘 편에 서서 약자 팔레스타인 저항 조직을 파괴하려 한다는 것은, 아무리 많은 페이지를 동원해 그 동기를 구축하려 해도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는 결코 드물지 않겠지만...


존 르 까레는 스파이 소설이라는 대중 쟝르의 대가이다. 더하여 단순히 대중 소설 영역을 넘어서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 작가 중 하나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의 책들을 읽다보면 이러한 평가가 결코 헛말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대표작 중 하나랄 수 있는 "북치는 소녀"의 이런 근원적인 넌센스와 마주하게 되면, 이런 넌센스를 극복하는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뭐 그냥 재미로 읽는 대중 소설인데 뭘 더 바래, 재밌으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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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원주인 할아버지의 편지. 화가이신지라 필체가 독특하고 아름다웠지만, 슬프게도 내용은 이사한지 열 달 만에 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예산을 한참 넘어가는 이 집을 가든에 반해서, 딱 한번 보고나서 바로 사기로 결정했었다. 그리고 집 이름을, 할머니 이름을 따서 쉬일라스 가든이라고 부른다. 편지를 읽고 나니 올 봄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집에 초대했어야 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평생을 살던 집이, 가든이 가시기 전에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올 초에 집공사를 끝내고 계속 손님이 와서 묵었기 때문에 가을녁에야 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년 봄에는 꼭 모셔야지 하고... 우리에게도 이 집은 특별하다. 서로의 생일도 결혼 기념일도 챙기지 않는 우리에게 유일한 기념일은 우리가 이 집에 처음 입주한 그 날이다. 우연찮게도, 할아버지의 편지에 따르면, 쉬일라 할머니의 부모님이 이 집의 첫 번째 주인으로 이 집에서 살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날이라고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가든을 가꿔주신 것에 감사하며

편히 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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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치사상사연구
마루야마마사오 / 통나무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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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를,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지루하게, 다 읽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름의 관점이 서게 되자 저자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아쉽게도 그때부터 이 책은 매우 지루한 책이 되어 버렸다. 이런 관념적인 책은 어느 일부분에만 부동의한다든지 하게 되지 않는 것 같다. 전부를 긍정하지 못한다면 전부를 부정하게 되는 것 같다.

해제를 쓴 김용옥은 저자 마사오가 이 “연구”를 이십 대의 나이에 썼다는 사실을 매우 강조한다. 그만큼 이 저작이 기적과 같은 작품이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연구”는 이십 대의 저작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관념적이라는 뜻이다.

저자의 기본적인 문제 설정은 이렇다. 동양에서 일본만이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 어째서일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의 근세 유학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근대적 사유의 맹아가 싹텄기 때문에, 메이지 유신 이후 그 맹아를 이어받아 근대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일본의 근세 사상사에서 성리학이 사상적 도전을 받아 해체되고 근대적인 사유의 맹아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자연에서 작위로’ 라는 개념틀을 이용하여 꼼꼼하게 그려나간다.

그러나 이런 관념적인 지도가 현실을 제대로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관념론은 실증적 연구의 도전을 이겨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저자 자신이, “연구” 출간 30년 후에 쓴 영어판 서문에서 이런 진화론적 도식의 난점을 분명히 인정한다. “사회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주자학의 보급과 … 주자학에의 도전은 거의 동시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72페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 도식을 전부 파기한다 하더라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반주자학적 개개 학파나 그들 사이의 연관 관계에 대한 해석들은 살려낼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나는 후자에 있어서도 대단히 부정적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근세 유학(혹은 신유학, 혹은 주자학)에 대한 참신한 해설인 것 같다. 단순히 이론적인 논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차원과 정치-윤리적 차원을 동시에 고려하여 입체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태극도설”에서 만물(인간과 자연)이 태극에서 나왔다고 한 것을 주자는 “태극이 곧 리”라고 해석하여 리 중심적인 학설을 세웠는데, 이것이 곧 주자학의 정통적 해석이 된다. 이 정통적 해석은 어떤 통일적 세계관을 도모한다. 인간과 자연,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정치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등 모든 것이 태극 혹은 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통일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극 혹은 리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도덕적인 것으로 사유된다. 그러므로 세상만사는 도덕적 가치 관계에 의해 구획되는데 그 실제는 최대한 의리, 명분을 고양하고 최대한 욕망을 억누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신문물은 쓸데 없이 인간의 욕정을 자극하므로 억제되어야 한다, 시가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고양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교훈을 주는 것으로 그 존재 의의가 있다, 등등.

그러므로 자연히 이런 도학주의적 관점에 반대하는 입장이 나오게 마련이다. 예컨대, 번개가 치는 것에 어떤 도덕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임금은 정치만 잘하면 되는 것이지 그의 성적 취향을 굳이 따져야 하는가? 공자의 제자 중에도 주먹이 먼저인 사람이 있는데 모든 사람이 다 안회처럼 조용히 명상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이는 이론적으로 말해서, 도덕으로 덧칠된 리의 우위성을 부정하고 반대로 기의 우위성을 주장한다는 것, 리는 오히려 기에 종속하는 것으로 사유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기일원론적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기일원론이 파괴한 것은 리 중심의 통일적, 보편적 세계관이었다. 예컨대, 인간은 사물과 달리 욕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의 법칙과 사물의 법칙은 다르고, 그런 관점에서 인간의 욕망 자체도 긍정되어야 한다, 인간 중에 안회와 같은 사람도 있고 자로와 같은 사람도 있으니 이들의 기질지성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고양되어 성인이 된다고 세상을 잘 통치하는 것은 아니다. 즉, 정치는 또다른 기술의 영역이다, 등등.

그러므로 리 중심적인 입장을 주자학 우파, 기 중심적인 입장을 주자학 좌파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 마사오가 일본 근세 사상사에 있어서 반-주자학적 경향이라고 부른 것을 우리라면 그저 주자학 좌파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는 주자학 좌파든 우파든 똑같이 주자학적 개념 안에서,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사회 경제적 위치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태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한국에서라면 주자학 좌파를 넓게 봐서 실학의 일부라고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재미있는 문제들이 떠오른다.

첫째, 일본의 근세 사상사와 한국의 그것이 평행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우연의 일치는 아니고, 조선의 주자학, 특히 이황의 견해가 일본에 널리 소개된 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저자 자신은 “연구”를 쓸 때 이러한 점을 소홀히 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근세 사상사를 비교 연구한 것이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그런 비교 연구를 통해 드러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이데올로기와 사회-경제 체제와의 관련성일 것이다. 마사오는 주자학 우파가 체제 안정적이므로, 예컨대 정립되어 있는 일본 봉건제에 잘 들어맞는다고 이야기한다. 일리 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체제라는 것은 설사 그것이 평형 상태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평형은 항상 동적 평형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체제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변혁을 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변혁을 꾀하는 세력이 항상 좌파인 것도 아니고, 정권 담당자들이 항상 우파인 것도 아니다. 프랑스 혁명사나 한국의 근세 사상 논쟁사를 보면 도드라지는 내용이고, 최근 터키나 예전의 이란의 예를 보더라도 결코 무심히 넘길 수 없는 부분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부분까지 신경을 쓰지는 못한 것 같다. 물론 이를 저자의 한계로 비판하고 가볍게 넘어가 버릴 수는 없다. 일본의 근대화가 위로부터의 혁명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정치적 근대화 과정의 모델로 여기고 있는 프랑스에서의 부르주아 계급같은 혁명 계급의 대두가 일본에서는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가 근대성의 맹아적 사유를 보이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일본의 근세 사상가들 대부분은 봉건제의 유지에 진력을 다한, 말하자면 반동적 사상가들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러한 부분에 저자의 기만성이 있다고 본다.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는 철저하게 봉건적이지만, 그 수단적 이론 논쟁에 있어 주자학 좌파로 분류될 수 있는 사상들을 저자 마루야마는 근대적 사유의 단초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마루야마의 “연구”는 사회 경제적 차원을 구색 맞추기 위해 동원했을 뿐으로 관념적 논쟁사 이상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셋째. 해제자 김용옥은 “독기학설”에서 실학이라는 개념의 성립 가능성을 부정한다. 지금 그 논변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대체로 이른바 실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학파를 설립한 것도 아니고, 서로가 이런 저런 경향의 학문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실학의 실체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김용옥이 보기에 실학이라는 개념은 서구 역사의 근대라는 범주를 한국 역사에 때려 맞추려고 현대적 관점에서 만들어낸 허위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정확히 마루야마의 “연구”의 안티-테제로 구성된 이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40년대에 나온 마루야마의 “연구”의 문제 설정의 한계는 그냥 눈감아 줄 수 있지만 그보다 50년이 더 지나 나온 김용옥의 시대착오적 문제 설정은 솔직히 좀 지나치다 싶다. 첫째, 조선 후기라는 시대는 서구의 주도에 의해 지구 위의 모든 인민들이 하나의 역사를 향해 모여들고 있는 시대였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정치 집단과 사상가 집단들은 중국 이외에도 또다른 강력한 세계가 있음을 의식하도록 강제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 서구라는 타자는 조선이나 일본의 실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둘째, 조선에서건 일본에서건 성리학적 보편주의는 사실상 중국 중심주의에 지나지 않음이 간파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주자학 좌파를 매개로 하여 그 보편주의가 해체되고 새로이 시야에 들어선 것은 자신들의 역사, 자신들의 문화, 자신들의 정치, 자신들의 백성, 자신들의 학문 등등이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실학을 하나의 실체로 정의할 때, 그 정의가 꼭이 대자적인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대자적인 정의는 항상 대타적인 것을 경유한다. 지금의 경우에는 중국의 타자화와 동시에 타자로서의 서구의 발견이 조선이나 일본의 자기 자신의 발견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마루야마의 “연구”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일본이 자기를 깨닫게 되는 순간들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마루야마는 이를 자연에서 작위로의 변화라고 말하는데, 내 생각에 이는 완전한 억지인 것 같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제2장은 너무도 어설퍼 보인다. 마루야마의 해석과는 달리 제2장은 성리학적 중국 중심주의가 해체되면서 일본 자신의 지역성이 발견되고, 그 지역성의 정체성을 담보할 장치로 천황이라는 제도가 발굴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중세 보편주의가 깨지면서 자신의 지역성을 재발견하는 과정은 유럽 세계에서도 똑같이 벌어진 일이었다. 훗날 일본의 군국화 과정에서 그 천황이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했다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왜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이 어떤 내재적 답변을 요구하는 한에서 이 질문은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이고 위험한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한에서 이 질문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리라. 만일 이 질문을 실증적으로 접근한다면 수 많은 우연성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 등등. 그리고 그 답은 중층적 관점에서 일본의 오늘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의, 혹은 한국의 오늘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의 일본의, 혹은 한국 각자의 고유한 근대화 과정을 답변 구성 과정에 경유시키는 것. 그러므로 굳이 이런 질문을 설정할 필요도 없다. 일본이나 한국의 오늘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질문도 다 이런 식의 틀을 통해서 답을 제공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면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다. 아시아권에서 서구적 자유민주주의에 근접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유일한 나라는 한국이다. 어째서인가? 혹은 이러한 양상이 지속될 것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하면, 경제 수준이 고도화하면 정치, 사회, 문화 영역 전반이 고도의 자율성을 누릴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지만, 대표적으로 싱가폴에서 그런 예측은 깨졌다. 일본도 정권 교체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기 보다는 일 당 내의 계파 사이에서 정권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중국도 일인 독재의 길을 열었다. 북한이 개방된다 하더라도 일당 독재 체제는 고수하려 할 것이다. 이들 나라들은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이들이 양당제나 다당제의 단점들을 부각시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오바마가 오바마 케어를 만들면 트럼프가 그것을 폐기하려 한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분열한다. 그러므로 다당제는 쓸데없는 혼란과 정력의 낭비만을 초래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당 독재에서 오는 부패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일당 독재론자들은 당내의 부패 방지 기구들에 의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것 저것 플러스 마이너스를 해본다. 어떤 체제가 더 나은가? 글쎄다. 이에 답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은 아니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이제는 사회가 진전하면 필연적으로 서구적 모델에 안착하게 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목적론적 사고라고 비판받을 만한 시대라는 것이다. 여튼 선택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이해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베트남이 곧 경제적으로 강력한 국가로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베트남은 유교권 국가에 속한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유교적'이라는 것이 곧 이데올로기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제적 토대와의 관련성 하에서 이러한 범주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해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동양권 나라들의 오늘을 이해하려는 실증적 노력을 통해 도출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들이 그동안 집요하게 추구되어 왔을까? 여튼 이러한 틀거리 속에서 “연구”를 읽었을 때 “연구”는 일본 근세의 사상들과 오늘의 우리들(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의 어떤 연속성을 자각하게 해주고 적잖이는 당황하게 한다. 예를 들면,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나이든 사람이건 나이 적은 사람이고를 떠나, 이리 저리 자기 자랑하고 나대는 사람을 “인성이 안좋다” 라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그 사람의 기질지성으로 보지 않고 본연지성이 가리워져 있는 것으로, 즉 윤리적으로 하자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경향의 옳고 그름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과 우리들 사이의 친연 관계는 상상 외로 강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법론적으로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경유하는 것은 전혀 헛된 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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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자지라 방송에서 본 것인데, 마침 유튭에도 있길래 퍼왔다.


한국을 동경하다 한국에 건너 온 한 이라크 여성을 그리고 있는 짧은 다큐멘터리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하여 세 세대만에 선진국에, 혹은 (보수적으로 잡아서) 그 근방에 다다른 놀라운 나라이다. 아마 지금 후진국이거나 중진국인 나라들에게 발전 모델이 되어 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일 수도 있겠다. 저 이라크 여성은 특히나 한국의 로맨티시즘에 빠져 있는 것 같은데, 아닌 게 아니라 한국은 아직 로맨티시즘이 살아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선진국은 개인주의, 계약주의적 경향이, 후진국은 가부장적인 기조가 강할 수 밖에 없다는 것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의 이런 비-개인주의적 모습들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정서적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능한 일일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잔존해 있지만 윤리적인 면에서만 의미가 있는 가부장주의, 아직은 많이 어설픈 개인주의, 아직 강고한 가족주의 등이 혼재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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