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에 모처럼 런던에 놀러 나갔다가 우연히,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의 참가는 별 것 없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에서 나와 판매하는 관련 신문, DVD, 버클을 사고 서명을 하는 정도. 


사진에 영국 의사당 건물이 보인다. 수상 관저인 다우닝 거리 10번지 바로 앞에서도 사람들이 확성기를 들고 이스라엘에 무기를 파는데 바쁜 나머지 이 무차별적인 학살에 대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영국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라!"를 외치고 있었다. 대 여섯살 정도의 아이들이 온 몸에 빨간 물감을 칠하고 바닥을 뒹구는 포퍼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2. 런던은 곳곳이 공사판이었다. 부동산 붐이 한창이었다. 친구가 워털루 역 뒤쪽에 흑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엘리펀트 카슬에 가자고 했다. 그곳의 길거리 음식들이 맛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그 '개발'이라는 것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우리는 그저 발걸음을 돌렸다.


이렇게 개발이 시작되면 그곳에서 수십년 동안 저렴한 임대료를 내며 살던 사람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 언론에 종종 이런 뉴스가 나기도 한단다. -내가 요즘 신문, 뉴스를 통 보지 않는다. 암튼, 한국에서 많이 듣던 이야기를 영국에 와서도 듣게 된다.


3.


지난 가을, 겨울에 비가 많이 와서 잔디 꼴이 말이 아니었다. 봄부터 씨도 뿌리고 신경을 많이 썼더니 이제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다. 내년 정도 되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을까 싶다. 작년 여름에 땅 파고 하느라 나름 고생을 조금 했기 때문에 볼 때마다 흐뭇하다.


정원이 정말 좁아보인다. 실제로 봐도 다를 바는 없지만:)


4. 요즘 뉴스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한국 뉴스 등은 내가 즐겨 가는 사이트나 블로그에서 얻어 듣는다. 친구들과 한국 뉴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한국이 이상한 나라가 되었어"라는 말로 짧게 이야기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새누리당이 연속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새누리당적인 색채가 사회 전체를 물들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사회에서 새누리당적인 세계관이 주류로 오래 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곧 변곡점이 오리라고 기대한다. 


5. 부모님이 노인 연금 7만원 돈 정도 받던 거 끊겼다고 하신다. 크게 의미있는 액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섭섭하다고 하신다. 그 7만원 돈은, 젊었을 때 고생하면서 세금도 내고 나라에 기여 한 것에 대해 나라가 고마워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계셨다고 했다. 


6.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한국의 운전 문화에 대해 읽었다. 또 다른 분의 블로그에서 연세대의 골품제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새누리당 정권이 지속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분노할 것도 없고 한탄할 것도 없다. 그냥 우리의 모습 그대로이니까.


교육부 장관의 논문 표절 문제로 난리가 났을 때 나는 흄을 읽고 있었다. 웹에서 한국어 문서를 찾다 마침 두툼한 pdf 문서가 있어 읽다 보니 흄의 생애를 서술한 부분이 표절이었다. (다른 부분은 모르겠다. 나는 거기서 읽기를 멈췄으니까.) 에이어의 책에서 출전 표시 없이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었다. 저 pdf 문서는 연구비를 받아 작성한, 신진 학자의 것일 것이다. 나는 교육부 장관보다 이 분에게서 더 심각한 문제를 느낀다. 


바로 이러한 부분들이 한국에 대한 착각을 거두게 한다. 새누리당, 경상도, 노인 세대... 이런 요소들 때문에 한국이 발목을 잡힌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저 요소들을 제하고 보아도 한국의 모습이 크게 달라 보일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의 한국은 우리들 모두의 평균적인 모습이니까. 


아마 교훈은 정치적 현상에 웃고 울지 말고 내실을 다져야 하리라는 것일 것이다. 적어도 내게 주는 교훈은 그렇다. 


7. 요즘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읽고 있다. 얼마 전에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이 사이트에 나 자신이 쓴 존재와 무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다. 무지 무지한 고집이 잔뜩 들어간, 그러나 내실은 하나도 없는 글이었다. 창피했다. 폭파시켜 버리고 싶었지만 내 삶의 중요한 국면을 기록하고 있는 글이고 사이트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암튼, 그 글은 내가 존재와 무를 샀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책표지만 잔뜩 늘어놓는 이상한 독서법의 유행에 대해 경멸하고 있었다. 그러자니 나는 이 책을 꼭 독파해 내야 하리라는 의무감을 가지게 되어 버렸다. 


존재와 무는 이제 서론이 끝나간다. 나는 문장 하나 하나까지 완전하게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 본 철학책 중 최고로 어렵다. 그러니 들인 시간에 비하면 진도가 엄청 느리다. 내가 이 책을 완독하게 된다면, 그때 여기에 다시 자랑글을 쓸 생각이다. 사르트르가 슬슬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다 읽었을 때의 흐뭇함을 상상하는 것이 요즘 나의 주요한 설레임 중 하나이다. 저녁에 소파에 누워 염가판 존재와 무의 깨알같은 활자를 따라가는 것은 완전한 행복이다.


8. 오늘은 do nothing day. 나는 요즘 폭주 기관차같다. 인위적으로 날을 정해 주지 않으면 오직 한 곳만을 바라보면서 폭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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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4-07-3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밖으로부터의 시각/관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어떤 글들보다 인식/깨달음의 낙차가 큽니다.

한국은 우물 속에서 앞으로도 한 100년 이상은 벗어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100년을 가기는커녕 그 전에 아예 없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국민’이라는 개념 혹은 대상은 결코 신성(불가침)한 개념/대상이 아닙니다.

정치인들, 정통성 없는 불의한 정권보다

나/당신/이분/저분들을 포함한 국민들이 훨씬 더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이 사실은 가장 결정적인/critical 사실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비판을 받아야 할 대상은 ‘국민’이라는 신성한 대상입니다.

이 신성불가침의 신화 아닌 신화를 깨뜨리지 않는다면/못한다면

한국엔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막 다 읽은 참이었다. 이번이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그렇다. 처음 헌책방에서 사서 가볍게 읽었을 때는 지루하기만 하고 아무런 감응이 없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책에 줄을 쳐가면서 읽었던 것 같다. 마지막 페이지에 호러블하다고 코멘트해 놓은 게 있다.


이번 읽을 때 이 책은 확 달라져 있었다. 문장 하나 하나가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런 섬세함을 포착하지 못한 나의 정신의 둔탁함에 한숨이 나왔다. 그나마 하이데거는 그 명성으로 나의 주의를 두번, 세번, 네번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하이데거에 대해 서핑을 해보다가 하이데거의 일기가 출간되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이데거의 반유대주의가 있는 그대로 드러난 귀절도 있다는 것이다.


"... 하이데거는 자신이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세계 유대주의가 서구의 근대를 추진한 주요한 요소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또 노트에서 하이데거는 "세계 유대주의는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군사행동에 관여할 필요가 없는 반면 우리는 우리 민족의 최고의 피를 희생해야만 했다"고 적었다.


또 철학노트는 하이데거에게 반유대주의는 미국과 영국 문화에 대한 강한 적의와 겹쳐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런 문화를 '조작을 통한 지배'라고 부르는 것의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한 구절에서 하이데거는 파시즘과 세계 유대주의처럼, 소비에트 공산주의와 영국 의회주의는 서구의 근대를 비인간적으로 만든 추동력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볼셰비키즘의 부르조아 기독교적 형상은 가장 위험하다. 그것의 파괴가 없다면 (부정적 의미의) 근대의 시대는 여전히 온전하게 남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출처는 레디앙. 2014년 3월13일자 가디언 기사를 대부분 참조한 기사인 것 같다.)


아마 이 귀절들에서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이 별안간 훤해지는 느낌을 받은 사람도 있으리라. 


하이데거가 말하는 시원, 망각, 그리고 회복. 회복은 망각을 거슬러 시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이데거가 대결하고, 해체하여 근거없음을 밝히려 애쓰고 있는 사유가 바로 그 망각의 사유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어쩌면 저 일기의 귀절들이 하이데거 왈 망각의 사유의 구체적 참조점들 중 일부를 지시하고 있을지 모른다.


정말로 이렇다면 하이데거는 철학 사상 최대의 스캔들이 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동안 하이데거가 정치적으로 순진해서 나치에 동조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나치 동조와 관련해서 변명만 해대는 것을 보면서는 인간적으로 덜 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 일기의 귀절들은 하이데거가 나치와, 방법과 분야는 달라도, 실지에 있어서는 동일한 심정에서 동일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하이데거의 사상이 많은 유태인 사상가들을 포함한 좌파 사상가들에게 특히나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이데거는 독일 계통 사상가들의 정서적으로 특징적인 일면을 보여주는 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으로 비트겐슈타인 역시 현대의 과학주의와 영국 문화의 피상성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의 철학적 투쟁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의 권리를 확보하고 그 안에 머무르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촌스러운 보수주의자일 수도, 신비주의자일 수도, 시대착오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비트겐슈타인의 기본 성향일 뿐이니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성향이 더 심오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정치성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대결하고자 하는 사유가 어디에 귀속되는지 명확히 정의해 놓고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그의 나치 입당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치는 망했지만 기본적으로 나치와 동일한 고민에서 출발한 하이데거의 사상은 여전히 현대의 가장 심오한 사상으로 남아있다...


하이데거에 대해 서핑을 하기에 전에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반짝 반짝 빛나는 문장들에 대해 포스팅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헛헛 헛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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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남부에 한인들이 몰려 사는 뉴몰든이 있다. 몇 칠 전 뉴몰든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으며 한인 신문을 보았다. 최고은이라는 이름의 생소한 가수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6월 말에 영국에서 열리는 글래드스톤베리 축제에 초대받았다는 것이다. 이 축제에는 잠비나이 등도 초대받았다고 했다. 나는 둘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집에 와서 바로 유튜브를 찾아 보았다. 

최고은. 기타 하나 들고 노래하는 싱어 송 라이터였다. 앨라니스 모리셋이나 돌로레스 오리어던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한 창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내면적인 성찰을 담은 멜로디와 가사들. 나는 놀랐다. 요즘 시대에 이런 노래를 하는 가수가 있다니. 나는 최고은을 20대 초중반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놀랐던 것 같다. 사실 최고은은 31살이라고.

최고은에 대한 기사를 웹에서 찾아 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판소리를 전공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영어로 노래하는 것에 더 편해 한단다. 이상한 이야기긴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로 노래하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질 만한 주제들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내가 처음 최고은의 노래를 들었을 때 느꼈던, 시대착오적이라 여겨질 정도의 이질감이 지금의 한국과 최고은 사이에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되니까. 

나는 최고은을 보면서 전라도 출신의 여성 작가들, 신경숙, 한강 등에게서 느끼게 되는 그런 분위기를 떠올렸다. 기본적인 바탕을 이루는, 말하자면 촌스러움,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있는 내면성, 자폐적이라 생각될 정도의 내면성, 그리고 그에서 획득한 깊이, 마지막으로 그 깊이와 보편성 사이에서의 갈등과 긴장. 아마 그는 자신의 감성만으로 노래할 것이고 청자 중 일부는 그 긴장과 갈등 속에서 그 노래를 들을 것이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런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가는 정말 희귀하다는 것이다. 

잠비나이. 유튜브에서 그들의 음악을 처음 듣는 순간 나는 너무나 놀랐고 흥분했고, 솔직히 눈물이 날 뻔 했다. 거문고로 리프를 치고 해금으로 퍼스트 기타를 한다는 아이디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잠비나이는 바로 이런 변태같은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있었는데, 그 음악은 실험적인 프로젝트 수준이 아니라, 드럼, 베이스, 기타로 오랫동안 정형화된 밴드 구성 이상으로 든든한 규범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리듬 파트에 실린 해금이나 피리는 분명 전통적인 주법에서 크게 이탈한 것 같지 않은데도 현대적으로 들렸고, 때로는 어느 기타나 전자 사운드보다 더 파괴적인 소리를, 때로는 어느 보컬리스트보다 더 깊은 감성의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잠비나이 멤버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리라. 그들의 음악에는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전혀 없다.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니 뭔가 주저함이나 석연치 않음이 있을 만도 한데, 잠비나이는 확고함, 단호함으로 그런 허약함을 일소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은 시원하고 재미있고 힘이 있다. 긴 곡들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전혀 느끼지 않게 한다. 잠비나이의 음악은 마치 백발로 태어난 노자처럼 완성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런 것들이 너무나 놀라웠다. 그들은 아직 어린데 말이다.

한국의 곳곳에서 젊은 세대들이 끊임없는 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도 기뻤다. 그래서 글래드스톤베리 축제에 가려고 티켓을 알아봤다. 그런데 이미 매진. 아마도 1년 전에 미리 예약을 했어야 하나 보다. 어쨌든 이 팀들이 유럽에 자주 온다니, 네덜란드만 되어도 가서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른 얘기. 현대의 한국에 보편성의 획득이라는 과제는 상당히 시급하다. 예를 들면 나는 엊그제 채리티 샵에서 산 달라이 라마의 책을 읽었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 문화의 지역적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중국 불교, 일본 불교, 태국 불교..." 등을 언급해 나갔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국 불교는? 하며 섭섭해 할 것이다. 내가 접해 본, 서양 사람이 쓴 불교에 관한 책에는, 한국 불교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불교를 전달해 준 다리로만 의의가 있다든지, 한국 불교는 중국 불교에 어떠한 창의적인 부가도 한 것이 없다든지 하면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천년을 훨씬 넘는 동안 불교에 대한 아무런 창의적인 기여가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제 그것은 현대의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에 어떻게 보편성을 제공해 주느냐 하는 문제로 전환된다.

내 방 책장에는 한국에서 가져 온 한국의 예술에 관련한 책들이 몇 있다. 그런데 별로 만족스럽지는 않다. 대체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 우리 것은 이름다운 것이야"라는 관점에서 쓴 책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내가 여기 영국 친구들에게 한국의 미에 관한 책들을 소개해 주고 싶어한다고 하자. 과연 한국에서 온 책들이 도움이 될까? 별로. 그 책들은 주로 신토불이적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관점에서 쓰여진 책은 한국 사람 자신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잠시 잠비나이의 이야기를 더 해보면. 잠비나니의 곡에서 들리는, 베이스 기타 역할을 하는 소리에 대해 생각해 보자. 베이스 기타 소리를 내는 것 같은데 너무 두텁지 않아 온 곡을 안개로 휘씌우지 않고, 그래서 곡의 날렵함을 유지하게 해주고, 또 드럼 스틱 소리같은 것이 기가 막힌 조화를 지속적으로 이루어 내고 있는데, 이런 소리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내는 것일까? 답은 우연히도 거문고라는 것이다. 이 기술은 보편적인 언어로 되어 있는데, 그 구현은 우연히도 거문고로 되어 있다. 우리가 보편성을 획득하는 방식은 항상 이와 같다. 물론, 음악 분야에서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은 좀 더 쉬울 수 있겠지만.

예를 들어 한국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려면 역사적으로든 현대적인 평가에 있어서든 최소한 중국과 일본에 대한 참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명시적 언급으로든 배경으로든 말이다. 이 경우에는 그 참조들이 우리가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다리, 플랫폼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언어를 습득해야 하는데, 이 작업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게으름은 이 작업이 요구하는 어마어마한 노고때문이라는 변명에 고개가 살짝 끄덕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점, 태도일 수도 있다. 보편적 시각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려는 관점, 태도. 자신을 측정가능한 대상으로 내놓는 용기. 분명한 것은 이런 관점, 태도, 용기를 가졌었더라면 숭례문 복원 공사가 실패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이 한국의 현재 전반을 특징 짓듯이, 나는 숭례문 복원 공사의 실패가 한국의 고유 문화에 대한 현재 양상을 특징짓는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는 세계를 향해 직접 이야기하는 방식을 방법론으로 택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잠비나이가 보여준 신념이 이런 것일 게다. 자신이 고유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 그것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 이런 것이 변화를 추동하는 에너지일 것이다. 나로서는 잠비나이와 같은 패기의 밴드를 발견한 것이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는 것보다 더 기쁠 것 같다. 자신의 독자성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 그것을 확고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 이런 것들이야 말로 현대 한국에, 특히 기성세대에게  절대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포스팅하는 것으로 해야 겠다.)

(혹 댓글이 있어도 대댓글은 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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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06-03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잠비나이 정말 대단하네요!!!! 순간 훅 빨려들어갔어요 ㅠㅠ 글래드스톤베리.. 내년엔 꼭 한번 가보심이..^^ 짱짱한 뮤지션들 거기 다 오더라구요.

qualia 2014-07-3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어떤 한국 롹 밴드들한테서도 단 한 번도 놀란 적이 없었습니다.

근데 어느날 잠비나이를 듣고는 처음으로 놀랐었죠.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 나와서 라이브하는 것을 들었더랬습니다.

잠비나이는 국악과 국악기를 현대 대중음악에 도입/접목/융합하는 데서, 전혀 새롭고도 차원이 다른 방법론/연주기법/조율/소리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노란둥이인 우리들이 팝과 롹을 하려면, 음악에서 김치 냄새와 된장찌개 냄새를 완전히 제거해내는 방법부터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우선은 흰둥이들의 팝과 롹을 완벽에 가깝게 ‘모방’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단계를 거치지 않은/못한 한국적 팝과 롹, 혹은 재즈는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런 단계도 거치지 않고 한국적 팝/롹 운운하는 것은 거의 모두 얼치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잠비나이가 국악과 국악기를 팝/롹에 도입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잠비나이는 자신들의 음악에서 김치 냄새와 된장찌개 냄새를 (어느 정도) 제거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박대통령의 담화에 관한 기사들 몇몇을 읽었다. 박근혜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는 믿지도 않았으므로 담화에 실망한 척 하지도 않겠다. 

박근혜의 담화는 현재 한국이 처한 가장 커다란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영국에서 세월호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자. 초동 대처가 잘 못 되어 어린 학생을 비롯한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고 하자. 미국이나 영국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까? 우리는 이에 대해 수도 없이 보고 들었다. 수색과 구조 등 현장 상황을 최우선으로 관리한다, 이후 사고의 원인과 대책에 대한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조사와 연구에 들어간다, 이 결과에 기초하여 대안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이론'은 한국의 현실에는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박근혜의 해경 해체 선언이 바로 그런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준다. 사고 난지 한 달이 좀 지난 싯점에, 아직 수색 진행 중인 상황에서, 청와대 비서들과 몇 칠 논의한 결과를 바로 국민과 국회 앞에 내놓는 조급하고 비-시스템적인(비상식적인) 행동이 바로 세계 10위권대의 경제력에 걸맞지 않는, 한국의 정신적 빈곤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절차를 쫀쫀하게, 혹은 찌질하게, 혹은 고지식하게, 혹은 유도리없게, 혹은 까칠하게 밟아나갔다면 세월호는 결코 물 위에 뜰 수 없었을 것이고, 숭례문 복원 공사가 수포로 되지 않았을 것이고, 박근혜는 사고 한 달 만에 해경 해체를 선언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말하자면 성향적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의 성향이 현재의 한국에 병존하고 있는데, 이 성향이 때로는 세대 갈등으로, 때로는 좌우 갈등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에서 말하는 좌우 갈등이 무슨 대단한 이념 갈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절차를 밟아나가는 일처리에 상대적으로 편안해 하는 성향과 그것을 답답하게 여기는 성향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적 함의를 다 떠나서 후자의 성향도 분명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이탈리아나 터키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이다. 반면, 우리가 결국 걸어가야 할 방향은 전자라는 것도 분명하다.

나는 충남지사 안희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의 인터뷰를 하나 읽었다. 앞서 말한 성향의 차이가 안희정과 정진석(한나라당)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문제: 충남에 복철을 놓아야 한다. 국토부는 충남의 입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재정부가 돈이 없다며 난색을 표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정진석의 답: 나는 박근혜와 친하다. 그에게서 돈을 따오겠다.

안희정의 답: 국토부와 협의하여 보고서를 만들겠다. 장기적인 차량과 철도의 운송량 퍼센트 변화를 보여주면서 지금 복철을 건설해야 시기를 맞출 수 있다고 재정부를 설득하겠다.

자, 누구의 태도가 더 옳은가? 물론, 안희정이다. 그러나, 당신이 충남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 관한 한 누구를 찍고 싶은가? 솔직히 정진석이 더 미더울 수 있다. 안희정은 허황된 말 뿐일 수 있다. 이것이 노년 세대의 입장일 것이다. 노년 세대는 절차를 차근 차근 밟아나갔다면 한국이 이만큼 발전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삶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노년 세대는 무엇보다도 정진석, 박근혜와 진심으로 뭔가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세대일 것이다.

이런 성향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10년, 20년 정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이런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젊은 세대를 잘 지켜내는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일베라는 사회 현상을 만들어낸 집권 세력은 정말 대단한 천재다. 그러나 우리가 질 리는 결코 없을 것이다. 

(혹시 댓글이 달려도 대댓글은 달지 않겠습니다. 이제 진짜로 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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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친구 A가 휴가를 받아 놀러왔다. 영국에서 7년 살다가 직장 접고 한국에 가서 1년여 살았고, 이제 8월달이면 다시 영국에 올 계획이란다. 영주할 생각으로. 다른 친구들도 불러서 우리 집에서 중국 요리를 시켜 먹었다.

한국 이야기,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친구 A의  아이는 초등학생. 2살 때 영국에 왔지만 집에서는 한국어만 썼기 때문에, 어눌하긴 하지만 한국어를 곧잘 한다. 이번에 한국에서 1년 정도 산 셈인데, 한국어 발음이 무척 좋아졌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를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고 했다. 세월호 때문에 아이가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세월호 사태에 대해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단다. "영국에서 크루즈 탈 때는 구명복 입는 법, 어디서 구명정 타는지 다 훈련 받았는데, 세월호는 그런 훈련을 안해서 사고가 난 것이다." 

친구 B의 아이는 이제 4, 5살. 영국에 온지 1, 2년 정도 되었는데, 아이가 자꾸 영어로 말하려고 한단다. 즉슨, 영국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 B는 아이가 영국 시민권을 따고도 한국에서 군대를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단다. B는 장교 출신이다. 내가 그 점을 지적하니 B는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대부분의 한인에게 영국은 남의 나라다. 영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한인들도 성인이 되고 나면 한인 친구들만 친구로 남는단다. 영국에서 좋은 대학을 마친 한인들도 한국 회사의 현지 법인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에서 여기 사람들에 섞여들어 주류에 진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영국은 '이런' 사회적 이동성에 관한 한 굉장히 개방적인 나라이다. 프랑스에서 10년을 산 한 친구는 영국 테레비젼을 보고 놀란다. 앵커가 흑인이었으니까. 프랑스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면서. 영국 뉴스에서는 이슬람식 머리 수건을 쓴 여성 리포터도 볼 수 있다. 

한인들도 영국 사회와 긴밀한 접촉을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장기적으로 영국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될 날이 올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아닌 것 같고, 사실 앞으로도 잘 모르겠다. 

거칠게 말하면 '남'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열외의 시민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열외의 상황이 편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항구적인 조건으로 열외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B가 자기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싶어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어떤 상황이 되든, 영국 사람으로서든, 한국 사람으로서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아이가 구비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영국 사회가 진입하기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세월호 사태가 폭로한 가장 가공할 만한 사실은 한국 사회가 신뢰도 제로의 사회라는 것일 것이다. 도처가 다 그렇다. 심지어는 숭례문 복원 공사에 참여한 한국 전통 건축물 복원에 있어 최고라는 장인도 자기 직업에 대한 자긍심은 세월호 선장과 비슷한 수준인 것 같다. 다 돈 밖에 모른다. 그러므로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아무도 믿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총체적으로 신뢰가 붕괴된 사회가 또 있을까 싶다... 

그래서, 인터넷 댓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말한다. 그러나 이민은 결단코 답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민을 할 정도면 한국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거나 쌓을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영국으로 이민을 온다면 영국 사회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체성을 갖는데 무한히 힘들 것이다. 즉, 영국이 남의 나라로 느껴질 것이다. 한 사회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상당량의 행복감은 그런 정체성의 분열을 통해 날아가 버린다.

실력 있고 생각 있는 사람들이 한국을 많이 떠난다면 한국 사회를 분열시켜 가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겨 온 사람들은 쌍수를 들고 기뻐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세월호 사태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참 많다는 것 아닐까?

내가 요즘 사는 책의 90%가 채리티 샵(기부 물품을 판매하는 자선 사업 가게)에서 산 것이다. 일반 서점에서는 못 보던, 한국 관계 책들도 서너 권씩 나온다. 그러면 꼬박 꼬박 산다. 어제 산 책은 전통 사찰에 대한 책이었다. 영국 사람이 쓴 책인데 인쇄는 한국에서 했다. 숭산 스님과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그러나, 오탈자도 많고 책 구성이 엉망이다. 다른 사람에게 받은 서문이 인트로덕션과 상당히 겹치는 등, 실력이 문제건 성의가 문제건 문제가 많았다. 나는 좀 창피했다... 이런 것만 봐도 느껴지는 게 분명히 있다. 한국은 아직 할 일이 많은 나라라는 것. 

정치에서건 문화에서건 한국은 손 댈 곳이 너무도 많은 나라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 많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이 많고, 아직 제대로 확립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젊고 창의적인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있는 나라다. 물론, 무능하고 윤리의식이 결여된 기성세대가 곳곳에 눌러앉아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러므로 젊은 신진 세대들은 우선 그 장애물을 우회하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같은, 이미 늙어 버린 사람은 마땅히 귀명창이 되어야 하겠지.

(우회하는 법. 이번 지방선거 기사에서 서울의 박원순, 충남의 안희정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한 사람은 지명도 떨어지는 시민 운동가 출신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친노 중의 친노로 감옥까지 갔다 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서울 시장이 될 수 있었고, 충남 지사가 될 수 있었을까? 난 잘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지자체장이 되었고 이번에 재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한나라당 성향 사람들도 이들을 지지한다는 것. 예를 들면, 박원순은 전통적인 한나라당 강세 지역인 강남 구들에서 서울 평균보다 높은 지지율을 받고 있다는 것. 어떻게? 강남 지역에 적당한 경제적 이득을 제공함으로써. 안희정도 충남에 많은 투자를 끌어오고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그렇게 야금 야금... 우리가 노무현의 실패에서 배워야 할 것.)

(혹시 댓글이 달려도 대댓글은 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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