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칠 전에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 비판"을 중고로 샀다. 어차피 새 책은 구할 수도 없다. 처음 알아볼 때는 300파운드 이상이어서 살 마음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 온 웹 세계를 다 뒤져서 30파운드 안짝에 살 수 있었다. 그 즈음 가격은 대체로 100 파운드 이상에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 또 알아보니 70 파운드 이상이면 살 수 있겠더라.
"변증법적 이성 비판"은 사르트르의 두 철학적 주저 중 하나다. 나는 사르트르를 총체적으로 이해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꼭 구해 읽어야 했다. "존재와 무"의 인간은 아직 추상적이다. 구체적 인간은 사회 역사적 힘 안에 놓여 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철학은, 예컨대 매일같이 일베를 드나들며 글을 쓰고 퍼나르는 어떤 청년이나 대한항공 회장의 딸인 어떤 여자분에 대해 해명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나는 사르트르의 단언, 즉 인간을, 그러므로 인간들의 기획의 총체인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검토해 보고 싶었다.
아마 읽는 데 한참 걸릴 것이다. (중고책 서점에서 살 때 책 무게가 너무 나간다며 웃돈을 요청하더라. 웃돈이라 해봤자 한 급 높은 배달 서비스로 하자는 제안이었을 뿐이지만... 더 빨리, 안전하게 받을 수 있다니 기분 좋게 수락했었다.)
(몇 번 "내가 읽은 책"이란 타이틀로 포스팅을 했었는데 어폐가 있는 것 같다. 책은, 특히 철학 책은 한번 읽고나서 "읽음"이라는 도장을 찍어줄 수가 없다. 계속 관점이 달라져서 책도 달리 읽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오만은 접기로 한다.
같은 맥락에서, "변증법적 이성 비판"이 나온 이후로 "존재와 무"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었다는 프레데릭 제임슨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만일 이런 공감이 없었다면 "비판"을 사지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