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때 친구네 놀러갔다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드라마 미생을 보았다. 친구 말이 한국 드라마는 기승전-연애인데 이 드라마에는 러브 라인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 드라마(현장 드라마?) 스타일인 것 같았다. 오프닝 장면도 좋았고 시나리오도 배우들 연기도 다 좋은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미생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오늘 최종회를 봤다. (솔직히 중간 중간 건너 뛰었다. 그래도 10편 이상은 본 것 같다.)

 

해외에서 몇 년만에 한국 드라마를, 특히 현대극을 보는 보는 느낌은 어떨까? 이 드라마가 유달리 디테일에 강한 것인지 한국의 드라마가 다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디테일들에 눈길이 끌렸다. 예를 들면 상급자와 하급자가 술을 먹는데 상급자가 자작을 하자 하급자가 팔을 쭉 뻗어서 상급자의 술잔에 손을 대는 시늉을 하는 장면. 아마 외국인들은 이런 장면들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마찬가지로 원 인터네셔널 신입 사원들의 엄청 경직된 모습도 내 눈길을 끌었다. 장그래는 말할 것도 없고 장백기, 안영희도 고참이 부르거나 하면 화들짝 놀라 "기립"하는 장면을 자주 보여 주었다. 마치 군대에서처럼. 또 많은 경우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하는 지시는 찍어누르는 말투였다. 그래서 하급자가 상급자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들이받는" 모양새가 되어 버린다.

 

인턴 때는 날아다니던 신입 사원들이 정식 입사 후에는 하나같이 장그래가 되어 버린다. 물론 그 뒤에는 저마다 사정이 있긴 하다. 그러나 조직 내적인 폭력에 신입 사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들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받아들인 결과는 언제나 장그래였다.

 

그래서 오차장과 장그래가 자기들만의 회사에서 의기투합하게 되는 것은 하나의 환타지다. -학벌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회사, 사내 정치 없이 회사에 기여한 바에 따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회사. 그러나 현실에서라면 원 인터네셔널과 오차장의 회사의 영역이 겹칠 것이니 당연히 원 인터가 오차장네를 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드라마는 당연히 현실에 대한 극화이기 때문에 과장이 있다. 그래서 장그래가 주인공으로 선택된다. 장그래는 홀어머니를 모시는, 학벌 무의 가난한 청년이다. 그래서 장그래의 키워드는 생존해야 한다는 절실함이다. 이런 절실함은 월급 70만원에도 기꺼이 일하게 만들고, 수당없이도 잔업을 하게 만들고, 상사의 개인적인 수발도 기꺼이 들게 만들고, 조직의 부조리에 맘 편하게 순응하게 만든다. 냉정히 말하면 이 모든 것들이 다 폭력이다. 생존의 절실함은 조직의 폭력을 개인에 내면화시킨다. 그러므로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은 항상 개인의 절실함을 강조한다. "요즘 애들은 도대체 절실함이 없어. 요구만 많아..."

 

드라마 미생이 가장 아프게 찌른 곳이 이런 부분이었다. 왜 21세기 한국의 대형 종합상사의 파릇파릇한 청년들을 그리는 드라마의 주제가 생존에 따른 절실함이어야 할까? 그것은 당연히 우리 사회가 절실함을 요구하도록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 사회가 폭력적이라는 뜻이다.

 

아마 여기 영국 친구들이 미생을 봤다면 드라마에 가득 찬 폭력들에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나는 드라마가 과장된 것이라고 설명하겠지만 그들은 여전히 납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상사의 폭력에 대해 부하 직원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지? 드라마가 너무 개연성이 없잖아? -쳇, 한국 사람들은 이 드라마가 과장되긴 했지만 현실적인 드라마라고 좋아하는 것인데...

 

어쨌든 이렇다.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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