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워털루에서 공연장이 있는 그리니치까지 배를 타고 갔다. 그리니치 사시는 분이 공연 시간까지 그리니치 여기 저기를 안내해주셨다.

피터 가브리엘의 나이가 나이인만큼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연주도 좋았고, 피터 가브리엘의 보컬도 좋았다.

곡의 절반은 신곡이었다. 대중적인 곡들로 셋리스트를 가득 채울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아마 피터 가브레엘은 세상에 뭔가 할 이야기가 있어 신보를 내고 공연을 재개한 것이리라. (그의 신보를 사지는 않았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라고 누가 얘기했다 하던가? 이 말이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모르겠다는데,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근년에 제프 벡이나 예스의 베이스 주자 크리스 스콰이어같은 사람들이 타계하였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어, 작년까지만 해도 연주를 했었는데? 하는 것이었다. 오전까지 활동하다가 오후에 죽는 것, 이런 삶은 참으로 이상적인 삶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시 말하면, 누구도, 심지어는 죽음도 누구에게, 이제 거기서 멈추세요, 라고 말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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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튭으로 한국 뉴스를 검색하다가 지역 축제나 전통 시장 등에서 상인들이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 문제라는 기사들이 연이어 올라온 것을 보았다. 아직도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얼마 전에 다녀 온 스페인 말라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철학이 주관심사 중 하나인 나에게 스페인은 그렇게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이번에 처음 스페인에 가면서도 단순히 관광을 간 셈 치고 아무 준비없이 몸만 비행기에 실어보냈었다. 그러나 다녀오고 나서는 계속 스페인 관련 정보를 찾아본다. 아내는 스페인어를 배운다고 하고, 나는 지금 중세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철학자 마이모니데스의 전기를 읽고 있다. 다시 가보고 싶고, 심지어는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나라이다. 유튭을 찾아보면 스페인을 방문했다가 스페인에 반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짧게 다녀온 나도 스페인의 매력에 대해 말을 하라면 할 말이 너무 많다. 그러나 다 치우고 딱 한 사례만 이야기하기로 하자.


첫 날, 말라가의 유명하다는 한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러나 줄이 너무 길게 늘어서 있어서 그날은 그냥 포기했다. 말라가를 떠나기 전날 밤에 다시 갔는데, 여전히 줄이 늘어서 있었다. 좀 기다렸고, 차례가 되어, 한국 식당처럼 활기차게 시끄러운 식당에서 해산물 등과 맥주 등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기를 치워가게 하고 나서 계산서를 기다리며 우리는 텅 빈 식탁 앞에서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밖에는 여전히 사람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테이블을 빨리 돌리면 그것이 다 돈일 터인데, 식당 안을 분주하게 오고가는 종원원들, 매니저 누구도 텅빈 식탁을 사이에 두고 수다를 떠는 우리에게 눈치를 주지 않았다. 식기를 치우게 하면 당연히 계산서를 가지고 오겠지 했는데, 스페인에서 둘은 별개의 사건인가보다. 계산하시겠냐고 묻지도 않는다. 식기들을 치우고 말끔한 식탁 상태에서 대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그걸 고려하는 것인가 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계산을 하고 나서도 뒷맛이 깔끔했다. 가격이 무척 저렴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남부 말라가 한정 체감 물가는, 말라가 관광 중심부에서조차 한국보다 낮았다. 


스페인은 세계 최대의 관광국이기 때문에, 역으로 보면 그에 걸맞는 시스템이나 소양이 갖추어져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떠한 과정을 거쳐 그러한 시스템이 구축되었을까? 물론 나는 모른다. 그러나 어떤 원리에 의해 그러한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철저한 존중이다. 내가 손님으로서 식당에 들어갔으면,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는 그 줄을 서고 있는 사람이나 식당 사장의 사정이지 손님인 나의 사정이 아니다. 나는 손님으로서 그 식당의 서비스를 최대한으로 즐기면 그만이다. 내가 관광객이든 지역 사람이든 그런 것 또한 식당 직원이나 사장, 식당의 다른 손님들의 관심사일 필요가 전혀 없다. 손님으로서 나는 그 식당의 서비스를 최대한으로 즐길 권리가 있고, 내가 손님으로서 철저하게 존중받는 것과 똑같은 원리에서 식당의 직원들을 철저하게 존중해주면 된다. 아마 이러한 원칙이, 적어도 말라가의 식당 주인과 직원들에게 철저하게 공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한국의 지역 축제 등의 상인들에게 이러한 원리는 말도 안되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나 기호에 대한 철저한 존중은, 한국에서는 드문, 서구 문화의 주요한 특질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적 특질은 다양한 맥락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그러므로 평면적으로 그것을 좋다, 나쁘다, 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경우 식당을 방문한 손님에게 그 식당이나, 그 식당이 속한 지역, 문화에 대해 좋은 인상을 주는 데에는 이 원리가 아주 효과적인, 그러니까 실용적인 가치를 갖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만일 문제를 이처럼 개인적 선택에 대한 존중과 같은 원리로까지 끌고 들어가는 것이 지나친 억지가 아니라면, 지역 축제 등에서 외지인이나 어수룩해보이는 사람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려 드는 행위를 꼭이 이러 저러한 상인들의 일탈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전에 숙명여대 학생들이, 성전환하여 법적으로 여성인 학생의 입학을 반대하여 그 학생이 결국 입학을 포기하고 만 일이 있었다. 숙명여대 학생들은 그 학생의 선택을 전혀 존중하지 않은 셈이다. 아마 그 반대한 학생들의 상당수는 한국 사회가 개인적 선택이나 취향에 대해 억압적이라는 점에 공감할 것이다. 아마 기성세대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밖에서 보면, 기성세대나 젊은 세대나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저마다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손님이고 커피 한 잔을 주문했으므로 10시간이든 그 이상이든 이 카페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것들이 한국의 현재를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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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한 귀퉁이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는데 열무고 깻잎이고 등등 잘 자란다. 내가 심고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이라 뭘 모르고 너무 빽빽하게 심었다. 덕분에 열무는 매일 뽑아다 먹고 있다.) 한 두 뺨 크기의 무화과 나무도 심었다. 언제부터 무화과가 달려서 따 먹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엊그제 손님이 왔었는데, 그 분 왈, 자신은 미니멀리스트 삶을 추구한다고...:) 정원에 이것 저것 일을 벌려놓고 있는 모양을 보고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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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우리집 정원이다. 5월의 꽃들이 망울을 한창 터뜨릴 때인데 영국은 요즘 계속 가물다. 물도 좀 뿌려주어야 하고 등등으로, 이것 저것 정원일이 끊이지 않는다. 작년에 꽃들이 조금 적게 피어서 걱정했는데, 올해는 풍성하게 피어주고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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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유튭에서 우연히 에코프로라는 기업을 알게 되었다. 유튭에 삼프로 채널의 해명 동영상이 떴고, 이게 뭔 얘기지 하며 검색해보다 밧떼리 아저씨, 2차 전지, 에코프로... 등등으로 이어지는 토끼굴을 따라가게 된 것이다.


미래 한국의 먹거리가 되어 줄 중요한 산업 영역에서 한국의 기업들이 독보적인 기술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흐뭇해졌고, 그런 기업이 아직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런데 한 가지 판단하기 극히 어려운 미묘한 점이 있었다. 2차 전지 주식들이 저평가되었다고 주장하는 측(대표적으로는 밧데리 아저씨)은 한국 기업들에 대한 풍부한 기술적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공매도 세력(즉, 기관)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분개와, 중국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 대한 일종의 애국심을 집중적으로 자극하고 있었다. 한국 2차 전지 관련 주식을 살 것인가를 두고 아내와 상의하면서 우리는 이 둘을 분리해 전자만을 고려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둘이 깔끔하게 분리될 수 있는가? 비이성적인 측면에 호소하여 대중적 지지를 모아놓고는 곧장 수직 낙하한 허다한 사례들이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우리는 관련 주식들을 사지 않았다. 사려고 했는데, 해외에서 한국 계좌를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해서 포기했다.)


그러다 어제 에코프로의 창업자이자 전회장인 이동채가 법정구속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새로운 토끼굴이었다. 이동채가 공시전에 중요 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를 하여 이득을 챙겼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것이다. 공매도 세력의 불공정 게임에 분개하는 그 많은 유튭 채널들이 이동채의, 시장을 교란하는, 이런 적나라한 불법에 입을 닫고 있었다는 것에 의아했고, 이런 범죄에 대해 일심에서 집행유예가 났었다는 것에도 놀랐다. 이동채는 지주회사인 에코프로 산하에 오로지 이동채 가족의 지분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인 가족 회사를 만들어 두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에코프로 산하 기업들이 일반 주주의 이익에 반하여 이동채 가족 회사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 사례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에코프로 주가가 가파른 상승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이동채의 바로 그 가족 회사가 주식을 대량 매도하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기술 관련 회사인 에코프로가 난데없이 포항에서 골프장 사업을 하면서 기존 사업자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사실도 검색하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한숨이 나왔다. 여기 작은 삼성이 있다. 기술력에 대해서는 ... 아마도 인정. 그러나 창업주 주변에, 창업주의 지분율 확보라든지, 가업 승계라든지 하는 이해 관계의 관철을 위해 온갖 불투명한 장치들이 다 동원되고 있는 것 같다. 남는 것은 불투명성이다. 그런 불투명성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가 알 수 있는가? 당장 창업주 이동채는 내부 정보를 이용하여 주식거래를 하고 이득을 챙겨서 차명 계좌에 넣어둔 것 아닌가? 이런 불투명한 시장에 무엇을 믿고 투자를 할까? 한국의 주식 시장이 그 오랜 기간 상자 안에 갇혀 있는 이유를 이번에 알게 된 것 같다. 그것은 시장의 불투명성이다. 물론, 이런 불투명성을 안고도 삼성과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다. 현실은 현실이다. 에코프로의 실적만 제대로 나온다면이야 이동채가 가족 회사를 만들어 일반 주주의 이익을 아주 일부 빨아간들 대수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투명성 제고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전체의 이익이 꼭이 나의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어쨌든 나는 이동채의 법정구속 관련 소식을 찾아보고는 도대체 한국의 기업들이 2023년을 살고 있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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