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펑크를 내어 대타로 마라케시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덕분에 그 스케쥴에 따라 꽤 좋은 호텔에도 묵어보고, 가이드를 따라 모로코의 원주민이랄 수 있는 베르베르 사람들이 사는 아틀라스 산 마을에도 가보고, 낙타도 타보았다.
모로코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는데 공항에서 잡아 탄 택시에서부터 바가지를 당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조금 긴장을 해야 했다. 아닌게 아니라 숙소 근처 제마 엘 프나 광장이나 광장 북부의 유서 깊은 염색 공장 지대 가는 길의 그 혼란스러움은 외지인들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해 보였다. -좁고 포장이 잘 안된 골목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걷고, 외치고, 가게에서 빵을 사고, 그 틈을 굉음을 내는 오토바이와 노새 달구지가 비집고 지나가고, 길 가장자리에서는 퀭한 눈의 사람들이 손을 내밀며 동냥을 한다. 난생 처음 보는 북새통이었지만 곧 익숙해지기는 했다.
모로코에 조금 익숙해지려하자 떠날 때가 되어 아쉬웠고, 사원에 들어가 절을 하고 싶었는데 외지인은 사원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서 아쉬웠고, 제마 엘 프나 광장의 노천 음식점이나 일반 음식점에서 파는 기름에 튀긴 물고기 요리를 더 이상 먹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내년에 다시 가서 사막 여행을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제마 엘 프나 광장. 악기 연주도 하고 재담도 한다. 그러면 구경하는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웃고 하다가 동전을 던져 준다. 또 이렇게 사진을 찍고 있으면 바로 돈 달라고 한다. 우리에게 불어 아냐, 아랍말 아냐, 하고 묻기에 모른다고 했는데도 굳이 끌어다 앉혀 놓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재담을 끊임없이 늘어 놓는다. 모로코 사람들이 즐기는 모양을 감상하다고 동전 던져 놓고 몰래 도망 나왔다.
아랍 사람들이 모로코에 들어와 이슬람화시켰기 때문에 모로코에는 거대한 이슬람 문화 유적들이 많다. 위의 유적 이름을 까먹었다.
베르베르 사람들 집에 가서 먹은 타진이라는 요리. 닭고기에 감자, 올리브 등을 넣어 찜을 한 것 같았다. 기대보다는 썩 독특한 맛은 아니었다. 나는 튀긴 생선 요리를 더 좋아했다.
베르베르 사람들 동네. 자신들의 언어가 있으며 산악 지대에서 주로 산다. 관광 관련 사업, 양치기, 농작 등을 해서 먹고 산다고 하더라. 사람들이 다들 착하고 부지런해 보였다.
목요일마다 열린다는 베르베르 사람들의 장. 한국의 시골 장과 전혀 괴리감이 없다. 염소 파는 구역도 있고 닭을 파는 구역도 있다. 우리는 녹차를 샀다. 차주전자도 살 걸 그랬다.
아마도 유태인 거주 지역 사진일 것이다. 아주 옛날 스페인의 박해를 피해 유태인들이 모로코로 이민 왔고 이스라엘 건국 이후 많이들 빠져 나갔다고 하더라.
이슬람 코란 학교 하나를 찾아 갔었는데 공사 중이라 들어가지 못했다. 근처 골동품 가게에 가서 작은 병 하나를 사고 주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고대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홀로 천막을 치고 살았다던 흰 수염 휘날리는 도인들에 관심이 많다고 하자 주인 양반이 이메일로 이슬람 철학에 대해 차근 차근 설명해 주겠다고 했는데, 내가 먼저 메일을 보내 봤지만 아직 답이 없다...-.-
모로코 마라케시 사람들은 정말 가난해 보였다. 중년대에 치아가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 길을 물으면 앞장 서서 가이드하고 나중에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싫다는 데도 악착같이 따라 붙으며 흥정을 하거나 호객을 하는 사람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며 이 사람들은 자아가 없거나 아주 작은 자아를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아란 생존하는데 아주 거추장스러운 도구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현대의 어떤 사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알다시피 마르크스는 역사를 계급 투쟁의 역사로 보았다. 가진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투쟁. 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의 최종적인 승리. 그 현대 사상은 마르크스를 이렇게 비트는 것 같았다. 인간의 역사는 자아에 고착하는 사람과 자아에서 탈주선을 긋는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라고. 그리고 자아에서 탈피하는 사람들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마라케시에서 나는 이런 관념론의 관념성을 본 것 같았다. 편집과 분열의 이항 논리만으로는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예컨대, 최소한 마라케시 사람들의 비자아와 고타마의 비자아를 구분해 줄 장치가 필요하다, 등등.
베르베르 사람들의 장터에서 가이드가 우리에게 귤을 주었었다. 그것을 맛있게 먹고 난 후 나는 내내 귤 껍데기를 손을 들고 다녔다. 길 바닥에는 더러 더러 귤껍데기가 뒹굴고 있었지만 차마 내 가 먹은 귤의 껍데기를 땅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정말 강한 자아를 갖고 있구나... 확실히 자아가 문제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