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 맨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기에, 예전에 읽다 만 것을 다시 꺼내 읽어 보았다.

 

<채식주의자>는 세 편의 중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어느날 갑자기 고기를 먹기를 거부하고 나무가 되기를 원하는 영혜라는 인물을 중심에 설정하고 있다.

 

즉각적으로 이 소설은 타자성, 육체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대적 고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이 소설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기로서의 자신의 육체를 거부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나무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반항은 무엇에 대한 것일까? 그것은 삶의 어느 자락의 어느 한편에 어떤 빛을 비추어 줄까?

 

미리 말하자면 이에 대한 답은 없다. 아마 작가는 이런 문제 의식 자체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작가는 단지 고기를 먹기를 거부하고 자신을 식물적인 삶으로 향하게 하는 한 인물에 대한 간단한 아이디어밖에는 갖고 있지 않은 듯 하다.

 

작가에게 정신분석학자나 심리학자가 되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작가는 더 깊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소설적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깊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세 편의 중편들은 허다한 결점과 아쉬운 점들을 남기고 있다. 그것들을 세세하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러한 것들은 작가가 작품의 깊이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주제에 이런 허술한 이야기는 꽤나 실망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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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2016-05-21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의 맨 부커상 국제 부문을 수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이 포스팅을 한 것도 한강이 수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얼마 전에 런던 시내의 가장 커다란 서점인 호일스 서점에 갔을 때 입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한강의 책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었다. 뿐만 아니라 3층 벽면에 광고 패널이 여러 장 붙어 있기도 했다. 거기에는 ...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는 구절이 있었다. 지금 ...가 누구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를테면 젊은 비평가들이라든지 그런 것이었을 것 같다.

전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한강을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오늘의 한국 작가에 대해 묻는다면, 나의 빈곤한 독서와 안목에도 불구하고 누구 한 두 명을 반드시 지목해야 한다면, 나는 한강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말은, 적어도 내 생각에는 오늘의 한국을 이야기할 줄 아는 젊은 한국 작가가 그만큼 희소하다는 뜻이다. 누군가 용기를 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