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 브룩랜드라는 커다란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이 곳에는 자동차 박물관과 비행기 박물관이 있다. 자동차 박물관은 매주 기획이 바뀌는데 이번에는 클래식 이층버스였나 보다. 사람들이 잔뜩 모여 들었다. 나는 물론 안가봤다. 돈 내야 하기 때문에...

 

오솔길을 따라 걷는데 앞 쪽에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리를 절며, 휘척 휘척 걷고 계셨고, 강아지 한 마리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강아지가 심심했는지 내게 뛰어들었고, 노인들은 미안하다며 강아지를 제지했다. 뒤에서 볼 때는 한국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발 노인들이었는데 앞에서 보니 할아버지는 잘 생겼고, 할머니도 손톱을 잘 손질한 멋장이셨다. 날이 정말 좋지요? 할아버지가 영국인들이 애용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브룩랜드는 원래 자동차 경주로였고, 그 후에 비행기 공장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때 우리가 걷던 오솔길은 거대한 자동차 경주로의 일부였다. 할아버지는 그 비행기 공장에서 일했었고, 할머니 말에 의하면, 이곳에 좋은 추억이 서려 있어서인지 자꾸 여기로 산책을 나오자고 하신단다. 아, 비행기요? 그럼 콩코드도? 콩코드도 여기 공장에서 만들었단다. 공원 입구 쪽에 거대한 콩코드 모형이 있는데, 그래서였구나...

 

산책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이젠 모두 추억이지... 라는 말을 반복했었다. 이런 말은 듣는 사람을 아련하게 한다. 동시에, 추억이라는 말에는 윤기가 있다. 사랑스러움, 자랑스러움, 약간의 아쉬움 등등. 그러나 모든 기억에 다 윤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가난으로 고생을 겪은 사람은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과거를 추억으로 기억하게 될 세대에 속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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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6-04-22 0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부분...가난으로 고생을 겪은 사람도 윤기 있는 추억을 가질 수 있어요. 가난했던 시절이 풍요로운 지금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아름다우며 행복했다고 추억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weekly 2016-04-23 01:23   좋아요 1 | 수정 | 삭제 | URL
제가 너무 단정적으로 쓴 것 같습니다. 사실은 예전에 어디에선가 읽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과거에 대해 훨씬 적게 기억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떠올리며 쓴 대목이었습니다. 음... 그리고 그 `윤기`라는 것은 현재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현재 여유롭고 너그럽고 성숙한 인격을 가진 분에게는 힘들었던 과거도 윤기 있는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