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중국의 대통령이 왔다. 계속 비비씨 머릿 기사로 나온다. 윌리엄 왕자가 시진핑 대통령의 우산을 받치고 있는 장면이 보도되기도 한다. 어마어마한 돈이 걸린 방문이다보니 영국 정부 쪽에서는 중국쪽 심사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스러워 한다. 그런데 이것이 좀 지나쳤나 보다. 어제자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서는 영국 정부가 [미국이나 독일 정부와는 달리] 중국에 너무 발발 기고 있다는 논조의 기사를 여럿 내보냈다.
영국은 10여 년 만에 핵발전소를 짓기로 결정했다. 중국과 프랑스의 기술과 자본으로 말이다. 장기적인 전력 공급 방안을 마련하고,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도 만족하면서 예산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물론 공짜 점심은 없다. 에너지와 같은 인프라 산업을 해외 자본과 기술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옳은가? 핵발전소를 안짓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 아닌가? 영국 정부가 아낀 예산은 10년 후부터 영국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바로 빠져나가게 되는 것 아닌가? 등등의 비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몇칠 전에는 영국 정부가 대체 에너지 관련 기업에 주는 보조금을 삭감한 것이 뉴스가 되었다. 그 결과로 기업 세 개가 파산했고 1000개 가까이 되는 일자리가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글쎄, 보조금에 의지하지 않고는 자립할 수 없는 기업이라면 망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차라리 그 돈으로 기존 가스나 전기 회사에 혜택을 주어 가계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럴까? 그러나 어쨌든 이것이 현재 영국 정부의 생각이다. (대체 에너지 산업에 대한 보조금 삭제 문제도 이유 의회에서 제기하여 뉴스화된 것이다.)
아마 어느 나라든 조금만 깊게 들여다 보면 저마다의 문제가 보이게 마련일 것이다. 내가 영국 정치를 바라보면서 거듭 느끼는 것은, 이 나라 정치인들이 참 상상력, 비젼이 부족하구나 하는 것이다. 말이든 뭐든 한국은 창조 경제든 신성장 동력 발굴이든 그런 논의들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영국은 그런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영국에서 기껏 의제가 되는 것은 고속 전철을 건설한다, 남의 돈과 기술로 핵발전소를 건설한다 따위이다. 최근 영국 철강 산업은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해고하면서 장기적으로는 폐업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대안 모색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일자리가 준다는 것에 대한 호들갑 수준 이상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걸 보면서 영국 제철소의 설비들만 낡은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분명 과한 생각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