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칠 전에 비비씨에서 르뽀 프로그램을 하나 봤다. 한국의 입양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한국인에게는 가족이 에브리띵인데 아직 혈연주의를 못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우리가 익히 아는 내용이기도 하고 해서 지금 이 주제로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리포터가 한국을 "고도로 산업화된 부유한 나라"로 소개한 부분이 나의 주목을 끌었다는 것을 말해 두려는 것이다.
한국은 부유한 산업 국가다. 이곳 영국에서 텔레비젼은 삼성 아니면 엘지다. 많은 사람들이 삼성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도로에서 기아, 현대 자동차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아마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은 잘 사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도 한국의 국민 소득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한국은 튼실한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는 부유한 산업 국가다. 이것이 한국의 객관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 사람들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났다고 판단한다. 한반도에서의 체제 경쟁은 한국의 완벽한,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창의와 자율과 다양성에 기반한 새로운 단계의 사회로 넘어가는 데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아직도 북한을 냉전주의적으로, 체제 경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것이리라. 그런 사람은 비웃어주어도 좋고 그냥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어짜피 소수일 테니까...
그러나 이제 우리는 거대한 착각에서 깨어난다. 누가 소수인가? 과연 한반도에서 체제 경쟁은 끝났는가? 많은 한국인들은 아니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 같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가가 역사 교과서를 전적으로 통제하며 단 하나의 관점만을 유포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바람직한 것인가? 이에 대해서도 대다수 사람들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국정 교과서를 가지고 주민을 통제하는데 우리만 사상을 자유 분방하게 풀어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기어이 이런 유보가 등장하고 만다. 이런 유보에서, 북한이 독재로 주민들을 꽁꽁 통제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어느 정도의 독재는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유보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이 유보의 비논리성을 따지지는 말자. 이 유보의 현실적 근거는 너무도 풍부하니까. 한국은 정의상으로는 전쟁 중인 국가 아닌가?
문제는 한 사회의 관심과 에너지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다음 단계의 사회를 위해 자율과 창의와 다양성을 말하는 동안 우리의 반대편에 있는 세력들은 한반도에서의 체제 경쟁은 주석궁에 탱크를 몰고 가서야 끝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걸 비웃었다. 그러나 이 세력들은 한국인의 의식에 북한을 끊임없이 현전케 하는데 성공했다. 많은 수의 한국인들은 한국이 아직도 북한과 체제 경쟁을 하고 있다는 데 동의하는 쪽으로 입장 변경을 한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그 사람들을 지켜내는 데 실패했다. -나는 이에 관한한 우리가 완벽하게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종편이 콘텐츠가 없으니 북한 뉴스만 한다고 비웃던 사람들은 어떻게 졌는지도 모르게 져 버린 것이다.
(정부가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게 되면 이제 타겟은 정권 자신이 될 것이다. 모든 관심은 정부 발행 교과서로 향한다. 한국인들에게 근대사에서 민감한 부분은 북한, 그리고 일본이다. 보수 세력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식민지 시대를 긍정적으로 그리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과연 한국인들이 용인해 줄까?)
(보수 세력들은 하고자 하는 일은 다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마지막 남은 것은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꾸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 대통령 선거 개표 때마다 조마조마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한국이 어디까지 갈런지...)
몇 칠 전에 친구가 놀러 왔다. 삼성, 소니에서 일하다가 퇴사했고, 잠시 쉬다가 핀랜드로 엠비에이를 갈까 한다고 말하더라. 영국 시민권이 있으니 핀랜드에서 일을 할 수 있고, 또 엠비에이 과정이 이유 회원국에는 공짜란다. 친구가 돌아간 후 핀랜드에 대해 유튭을 찾아 보았다. 핀랜드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시스템.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용모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연구하고, 개발하고, 협력하고, 촉발받고, 경쟁하는 모습... 방금 말한 친구도 소니에서 20여 개 국적의 동료들과 이야기하다가 엠비에이 정보를 얻었다고 한다. 이런 다양성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코스모폴리탄적인 환경은 한국에 절대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때에 독재의 회귀니 국정 교과서니 하는 쓸데 없는 이슈에 사회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한국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정말이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