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한국 뉴스들에도 많이 나오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유럽은 지금 난민 문제가 가장 큰 이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나라가 독일이다. 그리고 가장 찌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나라가 영국이다.
독일은 자신의 나라에 들어오는 시리아 난민을 무조건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었다. 이유 규정에 의하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이런 선언을 하면 더 많은 난민이 몰려 들텐데 말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벼운 농담으로 대응했다. 메르켈이 더 이상 정권을 연장하고 싶지 않은가 보군, 독일은 출생율이 낮으니까 세금을 내 줄 젊은 노동력이 급하게 필요했을 거야...
여론 조사에 의하면 독일에 들어오는 시리아 난민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일 국민은 93%에 달한다. 물론 이에 반대하면서 경찰과 싸우는 네오 나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93%라면 사실상 독일 국민 전부 다가 아닌가? 놀랍고 대단했다. 독일 국민들은 세계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한다. 적어도 나는 독일을 존경한다. 그래서 곧 쏘세지에 맥주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독일과 달리 영국은 유럽의 강국으로서 자기 역할을 하지 않으려 한다. 기본 입장은 난민은 못 받겠고 돈은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은 영국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다. 지난 총선에서 극우 정당이 20% 정도의 지지를 받았고 이 정당의 주된 타겟이 바로 이민자 문제였다. 집권 보수당이 이 극우 정당과 경쟁하려니 이번 난민 사태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걸로 경쟁한다는 것은 둘이 똑같다는 것이다.)
관망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렇게 영국이라는 해는 완전히 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유럽의 리더는 독일이고 유럽의 수상은 메르켈이다. 독일이 수행하는 역할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독일이 수행하는 역할이 독일에게 자기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할 때도 독일은 그 역할을 피하지 않았다. 자기 이익의 추구라는 골든 룰보다는 보편적인 가치(이번 경우에는 휴머니즘)라는 틀 안에서 사태를 보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일은 세계인들로부터 존경을 벌었고 스스로에 대해서는 독일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탁월한 정치인은 탁월한 교사다. 메르켈을 포함한 독일 국민들은 보편적 가치에 대해 세계인들에게 훌륭한 수업을 해주었다.)
난민 사태와 관련해서 네이버에 들어가 댓글들을 좀 읽었다. 물론 실망했다. 독일에는 기꺼이 존경을 표하면서도 스스로가 독일처럼 행동하여 존경을 받을 가능성은 닫아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실 원리다. 동양 고전을 빌어 말하면 소인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어도 끝까지 생존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생존만이 우리의 지상 과제이다.
얼마 전에 쿠바와 미국이 국교 정상화를 했다. 대단한 뉴스였다. 저 조그만 섬 나라가 한때 제3세계 운동의 구심점이기도 했다. 여기 사람들이, 예를 들어 예술가를 평가하는 최고의 기준은 그 사람이 자기 세계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면 쿠바는 자기만의 뭔가를 갖고 있나? 그렇다. 베트남은? 알제리는? 북한은? 태국은? 등등. 이 모든 나라들의 고유성에 대해 우리는 긍정할 수 있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말이다. 그러면 한국은? 한국에서는 걸린다. 한국은 최근 북한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여 저 가난하고 낙후된 나라에 대해 공동 군사 시위를 한 나라 아니던가? 직장인이든, 예술가든, 한 나라든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고 주류에 파묻히려고 하는 것을 찌질하다고 한다. 찌질하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존경을 버는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최근 역사가 우리에게 부단히 가르쳐주는 것은 찌질하게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인 듯 하다. (다행히 요즘 영국도 충분히 찌질해서 내게 위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