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국 정치의 적나라한 수준을 매일 매일 확인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한국은 덜 이념적인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원칙이 없는 것이다. 사실을 말하면 한국은 원칙이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안함 관련 군인들의 기자회견을 떠올려보자. 군인들을 환자복을 입혀 국민들 앞에 서게 했는데, 이런 장면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것일 것이다. 군인은 환자이기에 앞서 군인이고, 누구 누구의 자식이기에 앞서 군인이다.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이 원칙이고 이런 것이 이념이다. 


또, 생각나는 대로 예를 하나 들어보자. 국정원 직원이 상부에서 명령받은 대로 여론 공작을 하다 민주당 제보로 선관위와 경찰에 걸려 들었다. 이 사람은 누구의 딸이고, 20대의 여성이기 이전에 명령 수행 중인 국정원 직원이다. 이런 상식에 입각한다면 이에 관련하여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적이다. 


또, 예를 들어보자. 지난 대선 박근혜 선거캠프장은 헌법재판소장(대법원장이던가?) 출신이었다. 그리고 총리직을 맡으려고 했다. 아... 헌법 기관의 장에 있었던 사람도 이 정도로까지 생각이 없을 수 있구나 싶어 거의 경악을 했었다. 


NLL 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 기관의 원칙(이념)이 절대적으로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방부나 국정원은 절대적으로 국민과 국가의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 설사 회담록에 애매한 표현이 있고 북한이 노무현이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방부와 국정원은 국가 이익에 맞추어 노무현은 NLL을 포기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 만약 국방부, 국정원, 새누리당 주장대로 노무현이 NLL을 포기한 것이라면 박근혜 정부가 도대체 무슨 명분과 논리로 NLL 고수를 천명할 수 있을까? 이 뻔한 자가당착도 대단하고, 이런 중대한 사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박근혜의 무능력도 대단하다. 


두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첫째는, 노무현 시절 한국이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에 기뻐하며, 이제 정권을 누가 잡든 이 시스템 자체가 훼손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마음을 놓았던 것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것과, 그 오판의 댓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지금 돌이켜보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수립이 거의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국의 정치적 풍토가 척박했지만, 그럼에도 정권 교체에 성공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의 상황이 거의 암울한 수준이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꿈꿀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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