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잠시 바람 쐬러 나갔다가 도서관 앞마당에서 R을 만났다.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서둘러 변명을 해대기 시작했다. "다른 공부하느라 스피노자를 읽지 못했다. 스피노자를 읽고 일전에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고 나서 너한테 연락하려 했었다..." R은 자기도 스피노자를 읽을 틈이 없었다며 웃었다. 나는 두통이 있어 바람 쐬러 나왔다고 했고 우리는 같이 에스프레소 카페에 갔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의 두통은 사라졌다. 나는 스스로를, 모든 것을 알지 못하면 하나도 알지 못하는 스타일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구체적인 문제에 접근할 때 그 문제 영역 일반에 대한 기초에서부터 접근하곤 한다. 시간이 많이 드는 방법이다. R은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R은 로크의, 실체에 대한 복합 관념이 왜 적합한 관념이 아닌가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는 동안 나도 R처럼 다소 가볍게(?)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다음 주 토요일날 R의 집에 R의 작품을 보러 가고, 또 친구들과 조각 전시회에도 가기로 했다. 사실 나는 아직 대영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등에도 가보지 않았다. 지하철 역 구내를 지나다가 바하의 콘서트를 광고하는 포스터를 보고 핸드폰으로 찍어 놓았지만 감히 거길 갈 생각도 못하고 있다. 그래, 좀 더 여유를 갖고 살자...

R이 쓴 에세이 초고를 읽고 검토해 주기로 했기 때문에 일요일에는 그와 관련된 작업을 했다. 두 시간을 작정했지만 무려 5시간을 그 일에 매달렸다. 많은 문제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나는 하루에 해야 할 일을 서너 가지 정도 정해놓는데 한번도 그 일들을 다 마친 적이 없다. 한 두 개가 최대한이다. 류비셰프처럼 한 항목에 두 시간 정도씩 할당하여 처리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예정한 시간을 훌쩍 뛰어넘고도 아직 까마득한 작업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류비셰프의 방법은 내게 맞지 않는다. 문제를 파악하는 데만 해도 두 어 시간이 걸린다. 그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해 보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네 다섯 시간은 필요하다. 즉, 나한테는 한 항목에 대한 최소 할당 시간이 4 시간 정도이다. 차라리 이렇게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하나의 문제에 최소한 네 시간을 투여해야 한다는 것이 하루에 한 두 문제를 다루어도 족하다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하루에 두 어 개 이상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결론은 더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철학에 있어서는 양보다는 질이라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양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질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시간당 넘어가는 페이지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철학에서 스피드가 중요한 일은 없으니까. 그러나 얼마마한 시간이 걸렸든 충실하게 숙고되어 넘어간 페이지들, 고되게 사고를 기록한 노트의 페이지들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철학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두 번 생각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결론이 공부를 더 열심히,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언제나 유쾌한 일이다. 학기가 시작된지 이제 한 달 여가 지났다. 그래, 탐색전은 끝난 것이다.

어제 공부를 하다가 문득 느낀 것이 있다. 내가 로크를 다루든, 스피노자를 다루든, 비트겐슈타인을 다루든, 인식론 상의 문제, 혹은 심리 철학 상의 문제를 다루든, 내가 어떤 기반, 어떤 관심 위에서 그 문제들을 다루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바로 그 기반, 바로 그 관심은, 명제 태도라는 철학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내 손에 우연인 듯 들어와 있는 램지의 철학 논문들도 바로 이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 관심은 작년 연말에 쓴 비트겐슈타인의 "논고"에 대한 작은 논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마 나의 석사 학위 과정은 이 개념을 명확히 바라 보기 위한 장치들을 만들어 내는데 바쳐질 것 같다. 말하자면 이 개념이 나를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유학 기간 중 매일 매일 꼬박 꼬박 블로그에 일지를 기록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잘 안될 것 같다. 할 말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고, 할 말을 줄여야 한다는 것도 문제다. 가끔씩, 한 두 마디 하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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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4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weekly 2012-11-14 20:08   좋아요 0 | URL
말씀 감사합니다. 실은... 어제 R이라는 친구가 철학 공부를 그만 두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R은 그림과 조각에서 경력을 만들고자 하는 친구인데 철학에 흥미를 느끼고 있긴 하지만 거기서 재미를 찾아내지는 못하는 상태였던 게지요. 만약 이 친구가 철학에서 경력을 만들 야망을 갖고 있었다면 저는 중도 포기를 오히려 반겼을 것 같습니다. 그건 마치 피아노에 열정을 갖고 있지만 손가락 운동 신경도, 귀도 그리 예민하지는 않은 피아노 연주자 지망생과 같은 경우일 테니까요. 그러나 이 친구는 예술의 길을 걷고 있고 앞으로도 그 길을 걷고자 하는 친구이기 때문에, 그리고 저는 작가, 화가, 음악가, 영화 감독 등등은 모두 사상가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철학 훈련이 이 친구의 진로에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고, 그래서 일단 학기는 마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습니다(어짜피 학비도 다 냈잖아?). 너가 흥미를 갖고 있는 철학에서 fail하지 않고, 거기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된 상태에서, 즉 철학 애호가가 된 상태에서, 철학을 떠나도 그때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에세이 쓰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은 내가 도와 줄 수 있다(반대 급부로 저는 이 친구에게 프랑스어를 배울까 생각 중입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철학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동기화, 즉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내지 않는 한 저 엄청난 철학 문헌들이 종이와 잉크 낭비에 불과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가장 존경받는 철학자 여럿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판국이고... 말씀하신 것처럼 경제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졸업 후 전망 문제도 있고, 길게는 이천년, 짧게는 수십년 동안 수많은 연구자들의 집중된 탐구로 난도질 되어 있는 문제들에 대해 내가 지금 새로이 제기하고 있는 이 아이디어가 과연 새로운 것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가까운 회의도 있고... 그러나 아마 이 모든 것들이 이 공부의 여정을 구성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피아노 연주자에게 피아노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피아노가 그의 우주일 수도 있고, 쓸모없는 나무통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피아노가 쓸모없는 나무통일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가 피아노 안에 있는가, 혹은 그 밖에 있는가를 통해 결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무화의 가능성 위에 가치를 세우되 그 가치를 절대화하지 않는 한에서 그것은 가치 있는 것일 테지요. 그것이 곧 여정이라는 말의 정의일 테구요... 격려되는 말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