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조정래의 소설에 크게 실망했단다. 조정래라는 이름에 걸맞는 작품이 아니라면서 오랫 동안 화를 내었다. 나는 깔깔 웃었다. 그 책이 내 손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난 몇 줄 읽어보고는 바로 책을 집어 던졌었다. 벽을 두드려 보면 그 집이 오래 갈 집인지 어떤지 알 수 있다. 그 소설에서 조정래의 문장은 완전한 날림이었다. 그 친구는 날림 공사를 한 시공사에 화를 내듯이 조정래에게 화를 내었다.
우리는 한참 빌리 엘리어트, 이문열 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의 한 문장 "이제 그 겨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맞나?)를 읊자, 친구도 그 귀절을 안다며 맞장구를 쳤다. 좋은 작품은 좋은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인가... 좋은 문장에서는, 내 관점인가 모르겠는데, 작가가 보이지 말아야 한다. 이문열이 좋은 소설가이긴 하지만, 안타까왔던 것은, 그의 작품에는 항상 이문열이 출몰한다는 것이었다. "선택"은 아주 대놓고 나댄 작품이고. 이문열이나 조정래같은 대단한 작가들도 참을성을 잃고 하고 싶은 말(해야 할 말이 아니라!)을 함부러 내던지는 실수를 하는구나... 하는 점에서 나는 차라리 위안을 받는다. 그분들이야 망작을 하나 냈으면 잠깐 괴로워 하다가 새로 좋은 작품을 쓰면 될 테고... 그런데 이문열도 다시 좋은 작품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