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공사가 있어서 동네 스타벅스에 갔다 왔다. 아침인데도 사람이 꽤 있었다. 나는 맬컴의 비트겐쉬타인 회상록을 읽었다. 재밌다. "[An explanation] must be public."(p 47) 같은 문장이 나의 주의를 잡아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토론의 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나의 테제는, 어떤 기준계를 상정하는 한 모든 판단은 측정이다, 라는 것이다. 거의 동어반복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떤 토론의 참여자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당연히 그는 동의할 수 없다는 말 이상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쉬운 게임이다. 나는 그에게 가차없는 비판을 퍼부어댄다. 그것이 게임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조깅하는 모습을 본다. 한 겨울에 짧은 바지만 입고 그렇게들 뛴다. 사실 영국은 춥지 않다. 나는 보일러를 켜지 않고 살고 있다. 복싱 데이때 선물로 받은 두툼한 잠바도 입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조깅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영국에 와서 한국의 뭔가를 그리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산이다. 심장의 압박, 머리에서 흘러 내리는 땀, 그것을 식혀 주는 바람, 발 아래 놓인 전경, 정신의 휴식 등등... 아쉽게도 영국에 와서는 산을 보지도 못했다. 한창 머리가 복잡할 때 나는 산을 무척 필요로 했었다. 영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나도 짧은 반바지를 하나 사서 포레스트 검프처럼 끊임없이 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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