럿셀의 "철학의 문제들"은 가장 성공적인 철학 입문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 이 책이, 분명히 인식론에 지나치게 치우친 감은 있지만, 철학의 보편적인 논점들을 객관적이고 균형감있게 소개해 준 책임에는 틀림없지 않는가? 아니다. 이 책은 럿셀 자신의 철학 체계를 스케치한 풍경화다. 이 책이 철학 입문서라면 럿셀 철학의 입문서일 뿐이다.

2). 그래도 이 책이 평이하고 쉬운 문장으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써진 것은 맞지 않은가? 아니다. 감춰진 맥락을 따라잡지 못하면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므로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3). 그래도 이 책이 애매한 용어를 자제하고 논란이 많은 부분은 배제하여 어느 정도 객관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문제들만 다루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의 주제는 acquaintance 이론이고 이 이론은 제5장에서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이론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전혀 명료하지 않다. 나는 이 이론을 이해하느라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러다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The difficulty with Russell’s principle [of acquaintance] has always been to explain what it
means. The principle is that a subject cannot make a judgement about something unless he knows which object his judgement is about. … the real dispute concerns what it is to have such knowledge” (Evans).

허탈함을 동반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4). 그래도 말이다. 아무런 스캔들도 일으키지 않고, 아무런 논란꺼리도 없는 것이 어떻게 철학의 고전이 되었겠나? 이 책이 이토록 오래 살아남았다면 객관/평이/명료의 한 얼굴과 그에 상치되는 또다른 얼굴을 함께 갖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그렇다. 고전은 항상 두 얼굴을 갖는다. 결론은 착하게 살지 말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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