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전업 학생이다. 시간 여유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그렇지 않다. 그리고 매일 매일이 무지 무지 졸립다. 처음엔 시차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고... 아마도 새로운 환경에서 받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때문인 것 같다. 내가 이 말을 했더니 친구들이 웃었다. 그래서 난 새로운 변명을 만들어 냈다. 부쩍 약해진 시력 탓이 아닐까? 이번엔 비웃음을 샀다...-.- 암튼 여차 여차해서 매일의 일상을 적어놓자는 계획은 그저 계획으로 남아있다.

1. 이곳 영국의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은 "sorry", "excuse me" "thank you" 등이다. 굉장히 사려 깊고 공중의식이 발달한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한번은 길을 걷는데 자전거가 오길래 길을 비켜 준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자전거를 타고 오던 아줌마가 나를 향해 활짝 웃으며 "땡큐"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감사의 말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거기는 인도고, 너는 보행자이니 그 공간에 대한 우선권은 너에게 있다, 그런데 그 공간에 대한 우선권을 나에게 양보해 주었으니 고맙다. 내 생각에는 "sorry", "excuse me"라는 말이 사용되는 문맥의 거의 대부분이 공간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물론 가장 기본적이고 기계적인 문맥이다.

영국의 사람들은 빨간불에도, 건널목이 아닌 곳에서도 예사로 길을 건넌다. 나는 이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한국에서 그랬기 때문이다. 보행권이 우선이고 시스템보다는 효율이, 즉 내 몸 편한게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국의 거제도에서 살게 되기 전까지만 그랬다. 거제도에서 내가 배운 것은 보행권보다는 생명이 우선이라는 것이었으니까)

영국의 사람들은 보고 난 신문을 기차에 버려 두고 내린다. 그래서 기차가 종점에 가까와지면 좌석은 신문들로 뒤덮여 버린다. 나는 처음엔 차마 그걸 따라 하지 못했다. 그러다 곧 적응되어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텔레비젼 보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텔레비젼 시간표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길을 걸으면서 담배를 피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고 여자들도 많다. 어떤 여성이 담배를 피워 문 채 유모차를 밀고 가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유모차 옆에는, 아마 딸인 듯한 아이가 따라 걷고 있었다.

한번은 내가 친구랑 나란히 지하철 연결통로를 걷고 있는데 어떤 큼직한 흑인 아저씨가 우리 곁을 크게 빙 돌아 비켜 간 적이 있었다. "excuse me" 하며 길을 비켜달라고 해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아예 크게 반원을 그리며 비켜 간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주 예쁜 여자 곁을 지나게 된 수줍은 남자나 택할 동선이리라.

영국의 사람들이 공중의식을 발휘하는 경우의 거의 대부분은 자신이 다른 어떤 특정 사람의 권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되는 때인 것 같다. 예컨대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침해하게 되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엔 우리가 공중의식이라고 일컫는 모습을 영국의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는 힘든 것 같다. 어쨌든 보고 난 신문을 기차에 버려두고 나온다고, 건널목이 아닌 곳에서 길을 건넌다고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2. 지금 런던은 조금 무섭다. 요즘 나는 저녁에 집에 올 때마다 역구내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이브닝 스탠다드를 받아 읽는다. 이 신문은 조금 보수적인 것 같다. 요즘은 이민 규제나, 리비아에서의 영국의 역할을 축소할 것 등등을 매일 매일 주장한다. 어제 이 신문에 난 기사는, 경찰차에 누가 폭탄을 던져서 폭동 경보가 발령되었었다는 것, 이번 주말에 노팅힐에서 있을 카니발이 조금 위험해 보인다는 것, 영국으로 유입되는 이민이 20% 늘었다는 것, 싱가포르 출신의 캠브릿지 여학생이 버스에 치인 후 한참을 차에 질질 끌려가는 사고를 당한 후 병원에서 죽었다는 것 등등이었다. 한국에서는 듣기 힘든 뉴스들이고 미묘하게 인종적 문제와 연관될 수 있는 것들이어서 긴장이 되는 게 사실이다. (사실은 학원에서 알게 된 한국인 학생과 주말에 카니발에 갈까 했는데 그만 둬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기차 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기사를 읽고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3. 어제 BBC 1에서 토치우드를 처음 보았다. 닥터후 시즌1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에 토치우드를 찾아본 것이었는데 닥터 후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유머가 전혀 없었고 느닷없이 남성 동성애 장면이 등장했다. 두 남성의 전라와 성기가 자연스럽게 스쳐지나갔다. 사람의 이마에 총을 쏘니 이마에 총구멍이 생기는 장면, 주인공이 고층 난간에 서서 십자가 모양으로 팔을 벌린 후 뒤로 떨어져 자살하는 장면, 불사의 인간을 군중들이 칼과 도끼 등으로 끝없이 난도질하는 장면들이 화면을 휩쓸었다. 토치우드가 끝나고 곧 BBC 1 뉴스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드라마에서는 손에 든 흉기에 뿌연 안개 효과를 주고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 시청가능 연령 표시가 된다. 나는 영국 텔레비젼의 적나라함에 적잖이 놀랐다. 친구 말로는 영국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라고. 유럽에서는 채널만 돌리면 다 그런 성적인 장면이라고.

4. 요즘 영국의 신문(내가 본 것은 이브닝 스탠다드), 텔레비젼(내가 본 것은 브렉퍼스트)이 난리를 피우는 소재 중 하나는 앤 해서웨이가 최근 개봉한 한 영화에서 영국 요크셔 액센트를 엉망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 신문에서 그 얘기를 읽고는 그냥 웃어 넘겼는데 아침에 BBC 1에서 똑같은 얘기를 다루는 것을 보고는 "이 나라 정말 유치하군!"이란 말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언어에 대한 영국 사람들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클래스의 강사도 툭하면 영어를 이상한 언어라고 하는데, 물론 잘 보이게 가리워진 자랑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은 대영 제국의 마지막 향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의 영국의 혼란스러움을 놓고 제국의 일몰의  마지막 향수를 얘기하는 것을 종종 듣기도 한다. 이에 대한 내 친구의 코멘트. "해가 진지가 언젠데!" 하긴.^^

5. 어제 클래스에서 있었던 일. "used to"의 용법을 익히기 위한 상황극. 나는 전에 여자였다가 성전환을 받아 현재 남자가 된 역할, 나의 파트너(스페인 여성)는 나를 취재하는 기자 역할. 이러 저러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가다가 이런 질문이 있었다. "이제 남자가 되었으니 아이를 낳을 수 없지 않느냐. 미련없나?" 나의 대답. "물론 내가 낳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가정을 이루고 싶고 여자를 통해(through woman)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다." 그러자 그 친구가 "with woman" 이라고 정정해 주었다. 우리는 학생이기 때문에 서로의 문법적 오류나 발음상의 문제를 지적해 주지 않는다. 그럴 능력도 없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대화 중에서 누가 누구에게 어떤 정정을 해 준 것은 이것이 유일했다. 그것은 문법적 오류도, 발음상의 문제도, 표현상의 문제도 아닌, 어떤 올바름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르게 "with woman, sorry." 라고 정정과 사과를 했다. 대화가 끝나고 품평을 하는데 나의 파트너가 강사에게 나를 코멘트하면서 "완전히 남자예요." 하는 말을 들었다. 끙.

나는 내가 상황을 즐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법을 익히기 위한 상황극이었지만 나는 남성이 된 "여성"이었어야 했다. 나는 여성을 연기해야 했다. 즉, 여성을 이해하고 표현을 통해 그걸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였을 뿐이다.

아다시피 남성성이란 없다. 어떤 자연스러운 경향성이 환경에 의해 강화되는 것일 뿐. 예를 들어 나의 자연스러운 성향은 오른손을 쓰는 것이지만 환경에 의해 그 성향은 과도하게 경화된다. 그래서 왼손 쓰는 것에 서툴다는 것은 나의 본질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무능의 표현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덕은, 그러므로 우리의 윤리는 우리의 모든 가능성을 가능한 풍부하게 계발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럴수록 우리는 더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너무 스피노자주의적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많은 경우 솔직하다는 것은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의 전개가 아니라 단지 게으르다는 것,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습관에 의해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집에 돌아가는 찻간에서 이브닝 스탠다드를 읽는데 Howard Jacobson이라는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첫 문단에 있는 문장.

Aged eight, he already knew writing was a form of erotic power which he used to make his mother's friends laugh. "To get a woman to throw back her head in laughter is a hot thing."

끙. 유 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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