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 철학의 진로를 바꾼 17세기 두 천재의 위험한 만남
매튜 스튜어트 지음, 석기용 옮김 / 교양인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17세기의 위대한 사상가인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가 스피노자의 작은 하숙집에서 만나 철학을 논한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흥미로운 소재임에는 틀림없는데 불행하게도 저자는 흥미를 유지하기 위해 철학보다는 소설에나 어울릴 듯한 기술을 발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철학적으로는 공허하고, 윤리적으로는 무책임하다는 평을 해주고 싶다.

저자에 따르면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를 분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정력을 다 쏟아부은, 그러나 정작은 그 자신 스피노자주의자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라이프니츠는 "...로크의 <인간 지성론>, 뉴턴의 물리학,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루이14세의 정치, 중국 철학의 역사 등에서 그의 경쟁자(즉, 스피노자--인용자의 첨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517페이지) 감지하고 그것을 분쇄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주장의 파격성에 걸맞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한 예를 들어 보자. 저자에 따르면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가 죽고 난 후 얼마 있다가 갑자기 데카르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라이프니츠가 열거한 데카르트의 오류 중 하나는 "... 물질이 가능한 모든 형태를 잇달아 취한다..."인데 이것은 라이프니츠가 "...스피노자의 것으로 간주한 이론(가능한 모든 것이 존재한다)과 비슷해 보인다..."(이상 모두 399페이지)는 것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말하자면 저 이론은 스피노자가 분명하게 오류라고 지적한 바 있는 데카르트의 이론 중 하나다. 즉, 그것은 데카르트의 이론이지 스피노자의 이론이 아니다. 게다가 스피노자에게서 그러한 이야기를 들은(사실은 답신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라이프니츠의 절친한 친구 취른하우스였다. 라이프니츠 역시 스피노자의 답신 내용을 알고 있었을 거라는 얘기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데카르트의 저 명제가 바로 라이프니츠의 자연철학과 형이상학의 한 계기였을 거라는 게다. 결론을 다시 말하면 라이프니츠의 데카르트 공격은 라이프니츠-데카르트 사이의 문제이며 라이프니츠가 자신의 철학을 형성해 가는 한 과정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고 스피노자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저자는 당대의 기계론자, 유물론자, 진보론자, 이성론자들을 다 스피노자주의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같으면 저런 무리들 중의 하나로 스피노자를 끼어 넣었을 텐데 말이다. 저자의 이런 인식은 저자가 스피노자 철학의 섬세한 부분에 대한 감각은 갖고 있지 않음을 증명해 주는 것 같다. 물론 이 자리는 그에 대해 논할 자리가 아니므로 논의는 생략하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을 소설처럼 구성해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엉뚱한 강조, 철학 이론을 억지로 비틀어 댄다는 느낌들을 감내하면서 책을 읽다보면 그러한 강조와 비틈이 일종의 복선이었다는 것을, 책의 구성을 유연하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엉뚱한 강조나 비틈은 사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기 마련일 터이다. 나로서는 다만 저자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길 뿐이다. (스피노자가 자신보다 철학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어떤 경멸적인 몸짓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저자가 계속 발전시키는 과정을 보라. 스피노자의 nature를 "본성"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보라. 전부 스피노자-라이프니츠라는 무대를 위해 만들어 놓은 강조이고 비틈이다.)

책의 저자로서는 자신이 애써 쓴 책이 오래 살아남고 또 반복해서 읽히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서는 값싼 기교를 포기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두번 읽었다. 첫번 읽을 때는 약간의 미심쩍음을 압도하는 찬탄 속에서 읽었다. 그러나 두번째 읽을 때는 페이지 도처에 "stupid!"라는 문구를 적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한번 읽고 말았어야 했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빵가게재습격 2011-07-1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weekly 2011-07-17 11:31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지금 다시 돌이켜 보니 이 책의 장단점이 더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단점: 스피노자-라이프니츠의 대결 구도를 만들기 위해 라이프니츠의 적들에 전부 스피노자의 꼬리표를 달아놓았다는 것. 그런데 그것이 너무 너무 지나치다는 것 등등.

장점: 이 책을 읽고나면, 특히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에 접근할 때 느끼게 되는 황당함과 기이함이 상당 부분 줄어들리라는 것. 라이프니츠가 단자론을 만들 때 무엇을 얻으려 했고, 무엇을 피하려 했는지 하는 맥락을 이 책은 잘 짚어준다는 것 등등.

리뷰 쓸 때 이런 것들을 좀 더 아울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앉은 자리에서 너무 급하게 썼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고칠 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