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와 화이트헤드의 "사고의 양태"를 읽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책은 "스피노자는 왜"와 같은 날 산 것이다. 서가를 둘러보다가 제목에 끌릴 수 밖에 없었고(스피노자의 "형이상학 단평"의 한 주제가 그것이므로) 첫 페이지를 펼쳐 보는 순간 살 수 밖에 없었다.
"...우리 경험 내의 요소들은, 그들이 중요성을 얻는 데 필요한 적정 시간 동안 존속되는 한, 그들의 가변성에 비례하는 <명석 판명성>을 띠게 된다..."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저 문장은 나의 최근의 사고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리고 나의 사고엔 부가적인 노력이 곁들여 지는 데, 그것은 나의 사고를 스피노자적인 틀 안에 구겨 넣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저 문장을 스피노자적인 틀 안에 구겨넣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매튜 스튜어트의 "스피노자는 왜"라는 책은 내게 또다른 가능성을 고민해 보도록 한다. 어쩌면 저 문장은 라이프니츠적인 관심을 더 많이 표현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매튜 스튜어트의 책에서 신-자연의 쌍으로 표현된 것들은 현대적으로는 가치-사태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매튜 스튜어트는 자신의 기획(근대성에 대한 두가지 태도로서의 가치론적 신관과 자연주의적 신관)에 맞추기 위해 스피노자를 과도하게 단순화시켰다. 즉, 스피노자에게서 가치론적 관점을 배제시켰다. 나는 스피노자에게서 가치론적 관점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이 스피노자의 체계에 정합적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숙제가 하나 더 생겼다.
(어제 거제에서 부친 짐이 도착했다. 그리고 지금 이 포스팅은 어떤 바위 위에서 모기를 쫒아가며 작성하고 있다. 모기 몇 마리가 엉겨서 자판 위에 떨어진다. 한 마리는 내 손에서 사망했다. 그러므로 빨리 피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