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카테고리는 류비셰프를 따라 내가 일한 시간을 기록하고 분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게을러져서 업데이트를 통 안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이쯤에서 류비셰프 방법에 대한 사용(후)기를 간단히 적어보기로 한다.

장점: 일하게 한다. 생산적이게 한다. 분석가능하게 하고 예측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효율적이게 한다.

단점: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한다. 예를 들면 책 한권을 읽는 것보다 두권을 읽는 것이 더 생산적으로 보일 것이다. 한 시간 공부한 것보다 두 시간 공부한 것이 더 생산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함정일 수 있다.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책, 즉 좀 더 가벼운 책쪽으로 나를 유혹한다. 책 한권을 읽고 소화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적어도 한번 읽은 것은 읽지 않은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책 한권을 채 소화하기도 전에 다른 책으로 손을 뻗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의 사고는 겉보기에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을 때 가장 활발할 수 있다. 나같은 경우엔 걸을 때가 그렇고 책을 덮고 누웠을 때가 그렇다. 그러나 이런 시간들은 시간 기록에서 제껴 놓아야 하는 시간들일 경우가 많다. 책을 덮고 누웠을 때 나는 타이머를 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은 기록상으로는 아무 시간도 아닌 경우가 많은 것이다. 최근에는 읽는 시간보다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데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쓰기를 마치려 한다. 더우기 쓴다는 것은 시간 기록상으로는 완전한 실패로 보일 때도 있다. 즉, 몇 시간 동안 쓴 것을 결국 폐기해야 했을 때. 이걸 기록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시간 기록에 극도로 게으르고도 마음에 별 가책을 받지 않고 있다.

둘 중 하나다. 위의 단점은 류비셰프 방법 자체의 단점이든가, 내가 운용을 잘못한 탓이든가. 아마 후자일 것이다. 그러나 전자에도 얼마간 의혹을 던질 수 있는 것이 류비셰프에게서 비슷한 증상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류비셰프는 엄청난 양의 생산물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쓰던 것과 같은 류의 업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일급 업적이냐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집중도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류비셰프는 툭 하면 새로운 주제로 튀어 나갔다고 한다. 산만하게 방대한 영역을 휘젖고 다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산만함의 이유를 그의 시간 통계 장치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어 시간 주업무에 집중하고 나면 누구나 피로를 느낀다. 다른 학자들이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주업무에 복귀하는 순간에 류비셰프는 다른 부업무에 빠져 들었을 수 있다. 또다시 피로가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류비셰프는 또다른 업무로 스위치 했을 수 있다. 물론 류비셰프는 하루 중 상당량의 시간을 주업무에 투입하였다. 그러나 그 시간과 에너지는 다른 부업무들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배분된 것일 수 있다. 즉, 기록된 만큼보다 덜 집중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류비셰프도 하루 8시간 동안 5 페이지의 진척을 보였다는 기록보다는 다양한 항목에서 다양한 성취를 얻은, 그러니까 좀 더 긴 기록을 좋아했을 수 있다. 그것 역시 다양한 관심사로 그를 이끄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어떤 관심사에 대해서건 그에 투여한 시간과 업무 항목은 그를 충분히 만족시켰을 것이다. 시간 자체는 차이를 보여주지 않으므로.

이렇게 쓰고 보니 단일하고 집중된 일을 하는 경우에는 류비셰프의 방법이 적당치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티븐 킹은 하루에 열 페이지를 쓰는 걸 작업 규칙으로 삼는다고 한다. 만약 스티븐 킹이 류비셰프의 시간 통계를 사용한다면 그의 시간 통계 내역은 무미건조할 것이다. 류비셰프의 경우라면 평균 업무 시간량만 나와준다면 어제까지 하던 작업을 거침없이 제쳐 두고 딴 일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이 나와 버렸다. 베드로 앞에 두툼한 시간 통계 장부와 수많은 영역에 걸친 수많은 성과물을 자랑스레 펼쳐 보이는 것보다는 내가 가장 잘 하는 영역에서 높은 순도로 이루어진 성과물을 내놓는 것이 내게는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

이로써 나의 게으름에 대한 흠잡을 데가 별로 없는 면죄부가 작성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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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2 2012-06-05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고~; 방금 놀랍다는 댓글쓰고 또 한번도 쓰고...다시한번 쓰게 만드시네요ㅋㅋ;;
저는 글로 작성하신 그런 케이스를 "내 열정" 혹은 편집증(강박), 여튼 병적인거라고 생각하고있었는데...미적인 결과물이나...기타 등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 반복패턴을 합리화 했더라지요...사실 아직도 정답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