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거제 해금강에 다녀왔다.
스티븐 나이들러의 "스피노자" 5장, 6장까지 읽고 책을 책장에 꽂아 두었다.
컬리판 The Collected Works of SPINOZA 중 "형이상학 단편"을 읽기 시작했다.
스티븐 베이커의 "뉴머러티"를 읽고 있다.

1.
곧 이곳 거제를 떠난다. 떠나기 전에 거제 이곳 저곳을 둘러 보고 싶어 해금강에 다녀왔다.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이 좋았다. 유람선은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해금강은 바다 색깔부터 달랐다. 신선대의 괴암들을 바라보다 문득, 저것들이 어떻게 생성되었을지 궁금해 졌다. 신선대는 화성암(맞나?)인 것 같은데 부위 별로 색깔이 달랐다. 또 두꺼운 편리(맞나?) 같은 게 겹쳐 있었다. 생성 기원이 다른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나란히 서 있기도 했다. 언어가 없어 답답했다. 지질학 공부를 하고 싶어 졌다. 시어리어슬리.






2.
스티븐 나이들러의 "스피노자"에 대한 흥미가 되살아나지 않는다. 나중에 필요할 때 다시 보겠지 싶어 책장 안으로 퇴장시켰다. 간단한 리뷰를 여기에 쓰기로 한다. 좋은 얘기를 하게 될 거 같지 않아 따로 리뷰 카테고리에 리뷰를 쓰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번역 상태가 좋지 않다. 굉장히 서둘러 번역한 느낌이 난다. 특히 스피노자의 철학 부분을 서술하는 부분에 약점이 많다.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 역자의 프로필을 보고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역자는 이미 스피노자의 "신학 정치론", "정치론"을 번역해 낸, 말하자면 나름 스피노자 권위자다. 그런데 마치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를 처음 대하는 사람인냥 번역을 해놓았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미스테리를 느낀다. 악역으로 이름 높은 "새로운 과학 사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프로필을 보면 역자는 바슐라르에 대한 논문과 책을 쓴 바슐라르 전문가다. 그러나 번역된 책을 보면 마치 바슐라르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번역을 해놓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화가 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이유에 대해서 지적 호기심을 느낀다는 말이다.

편집적인 부분을 보자.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은 "스피노자 철학을 도발한 철학자"이다. 그리고 번역 대본은 "Spinoza by Steven Nadler"로 되어 있다. 나는 스티븐 내들러가 "Spinoza: A Life" 외에 "Spinoza"라는 제목의 또 다른 책을 썼나 싶어 잠시 혼란을 느꼈다. 한국어판 책 제목을 달리 하더라도 원 대본의 서지 정보는 정확히 해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중에는 나같이 바보같은 독자도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소한 부분 몇 가지를 더 말하자. 책 앞 부분에 도판이 몇 개 있다. 올덴버그도 있고 므나세도 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없다. 결과적으로 이 책에는 스피노자의 초상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쪽수 번호가 책 안쪽 접히는 부분에 적혀 있다. 색인과 해당 페이지를 왔다 갔다 하다보니 그게 사용자 경험을 고려한 방식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말 하기가 좀 그렇긴 한데 한번 물어 보자. 도대체 "철학을 도발한 철학자"란 말이 무슨 뜻인가? 스피노자를 야만적 별종이니 탈주자니 전복자니 하는 수식어로 광고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내게는 그저 말장난으로 들릴 뿐이다. 스피노자에게 저런 타이틀을 붙인다고 책이 얼마나 더 팔릴까 싶기도 하다.
어떤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신학-정치적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그는 레인스뷔르흐, 포르뷔르흐, 레이든 등지에 은둔해, 암스테르담에서 그를 지지했던 '스피노자 서클'과 함께 지하 활동에 들어간다. 발리바르의 표현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민족 해방 투쟁의 후계자이자 시민적 자유와 양심의 자유, 지식인의 자율성을 옹호한 투사였다." 제발!! 이러지 말자.

이제 원저작자쪽으로 방향을 틀어보자. 솔직히 내들러의 책은 지루하다. 일반적으로 철학자의 전기는 철학자의 사상에 접근하기 쉽도록 짜여진 입문서 역할을 한다. 철학자의 개인사와 당시의 정치 사회적 역학 관계, 철학자가 영향을 주고 받은 지적 환경 등등이 적당히 버무려져서 철학자의 사상에 맥락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들러의 책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서술과 유대 관련 자료가 과도하게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편집자라면 적어도 1/3은 잘라내려 했을 것이다. 내들러가 섭렵한 자료들의 방대함, 그 철저한 고증에는 거의 경외감마저 들지만 정작 중요한 스피노자의 삶과 사상의 변증법은 대체로 평면적이고 생기없게 취급되고 있다. 요는 내들러의 관심과 기획이 내가 기대하던 것과는 달랐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면 내들러의 편집자는 어떻게 했는가? 나같은 독자는 뭣 모르고 내들러의 책을 구입했다가 꾸벅꾸벅 졸면서 책을 읽다가, 의무감에서 읽다가, 결국 치워 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사태를 내들러의 편집자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내들러의 편집자는 어떻게 했는가? "철학을 전복한 철학자"라는 아무 알맹이 없는 수사로 어떻게 해서든 눈먼 독자들의 지갑을 열려고 했을까? 책 맨 앞부분을 보면 양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참으로 부러웠고 그러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조직)이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다음은 (아마도) 이 책의 편집자가 이 책에 대해 소개한 글이다. 맨 첫 페이지에 있다.

"이 책은 각종 언어로 쓰인 스피노자의 전기 중 최초의 완전한 전기이며, 상세한 기록들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다. 그렇다고 스피노자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단순히 열거하지 않는다. 이 책은 17세기에 유대인이 살고 있던 암스테르담의 중심부로, 그리고 유대교에서 발생한 스피노자의 추방 사건을 포함한, 초기 네덜란드 공화국의 동요하는 정치적, 사회적, 지적, 종교적 세계의 한 가운데로, 독자들을 이끈다.
이 책은 철학자들, 역사가들, 유대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 유대 역사, 17세기 유럽의 역사 또는 네덜란드 황금기의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독자 대중을 위해 쓰였다."

정확하고 솔직한 소개글이다. 더할 것도 덜 것도 없다. 그리고 이런 것이 양식이라고 본다.

3.
컬리판 "스피노자"로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 부록으로 달려 있는 "형이상학 단평"을 읽기 시작했다. 내 느낌에는 스피노자를 이해하는데 부록"들"만큼 적당한 분량에, 상대적으로 쉽고 명료한 서술을 하고 있는 문헌이 없는 것 같다. 이제 첫 장을 읽었지만 스피노자의 명료한 사고와 논리에 감탄하고 있는 중이다. 번역을 해서 올려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만한 실력이 되기만 한다면. 이제 시간은 핑계가 아닐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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