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애플(WWDC 2011을 보고)

아래 포스팅(http://blog.aladin.co.kr/weekly/4850380)의 4번 항목은 과장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다시피 스티브 잡스는 기판의 회로 배선처럼 사용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약간 미친 CEO임에 틀림없다.

(공학적으로 우수한 것은 미학적으로도 우수하다는 것을 많이들 경험해 보았을 것이므로 그리 튀는 얘기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휴대폰을 손으로 정상적으로(!) 잡았을 때 수신율이 떨어지는 제품을 세상에 내놓을 회사는 아마 애플 밖에 없을 것이다. 휴대폰 안에 유닉스라는 거대한 운영체제를 구겨 넣고도 내장형 배터리 하나만으로 충분할 거라고 믿는 회사도 애플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 사례들은 사용성과 미적 기준이 충돌하였을 때 스티브 잡스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혹은 애초 어떤 항목이 더 높은 우선순위에 있었는지를 시사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스티브 잡스의 변명은 이러할 지도 모르겠다. 사용성이란 기술의 발전으로 계속 개선될 수 있는 것인 반면 미학은 영원한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미학이란 궁극의 사용성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미학이란 미래의 사용성이다.

(그러므로 스티브 잡스는 예술가다. 예술가들은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모두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 의해서는 즐겁게 향유될 수 있는 어떤, 말하자면 영원한 가치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창조물을 평가한다.)

(물론 안테나 게이트는 미학보다는 공학, 즉 기술적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의 고집을 인정해 주느냐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불평을 하면서도 그의 고집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탈착불가능한 배터리는 분명 많이 불편하다. 그러나 배터리를 탈착가능하도록 만들면 나의 아이폰4의 외양 디자인이 어떻게 변할까를 생각해 보면 끔찍하다. 차라리 지금의 불편한 사용성을 감수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조차 든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전적으로 스티브 잡스의 존재로 인한 것이다. 나의 자연스러운 성향대로라면 미적 요구 때문에 내장형 배터리를 선택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미친 얘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티브 잡스는 교주거나 예술가, 또는 교사, 또는 사상가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면 피카소 이전이라면 우리는 피카소의 그림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든 것은 요즘 웹 서핑을 많이 하면서 한 장의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술과 리버럴 아트의 교차로에 스티브 잡스가 서 있는 사진. 물론 스티브 잡스식의 포장하기일 뿐이라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재반박하겠다. 모든 것은 포장하기일 뿐이라고, 나는 그대의 잘 된 포장을 요구하겠노라고, 그러니 나를 감탄시킬 그대의 포장을 내게 보여주시라고...

























(이미지 출처: http://live.gdgt.com/2010/01/27/live-apple-come-see-our-latest-creation-tablet-event-coverage/#07-53-00-pm)

스티브 잡스의 이상은 두 가지 인간형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직관적 사용성이 전제하고 있는 인간형이다. 예컨대 어린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등이다. 파일의 디렉토리 구조가 나에게는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저 분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그 차이를 안다.

다른 하나는 애플 제품들의 미적 가치관이 염두에 두고 있는 인간형이다. 애플의 제품들은 버튼이 여러 개 달리고 번쩍번쩍 하는 최첨단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답지만 저런 것이 어떻게 동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경우마저 있다. 즉, 스티브 잡스는 공학 제품을 마치 예술 작품인냥 내놓는 것이다. 즉 그것을 미적 경험의 장소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reviews.cnet.com/2300-33_7-10002000-3.html)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제품들이 일상적인 도구로 사용되기를 바라면서도 일상적인 가치 이상의 것을 그 도구들에 심어 놓는다. 어린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전혀 어렵지 않은 사용성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독특한 미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한다. 이 둘 사이에 모순이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미적 가치, 미적 경험을 일상적인 것 이상의 가치, 일상적인 것 이상의 경험과 동일시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물론 전자가 후자에 포함되는 것임을 잘 안다. 그러나 말을 순하게 하고 싶다.)

미적 경험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미적 경험의 환경 안에 놓여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미적 경험이란 미적인 것의 소비와 생산 모두를 의미한다. 그리고 미적인 것의 소비와 경험을 가능케 하는 환경을 우리는 미적 도구라고 말한다. 이 미적 도구를 다른 말로 무엇이라고 하는가? 리버럴 아트(liberal arts)!

(헤... 우선은 여기까지 하자. 이 글은 나의 아래 포스팅에 대한 나 자신의 댓글(주석)로 시작되었다. 해서 글이 이렇게 크게(?) 발전할 줄 몰랐다. 그러므로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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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 2012-06-05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놀랍군요, 이렇게 깊숙한 내용의 글을 쓰시다니...^^
대개는 이런 설명은 감적인 부분으로만 이해할 수 있기 떄문에 듣는 사람이 생각이 매우 깊거나 아예 생각이 없을때가 아니면 잘 안씁니다만...잘보고 갑니다.

덧붙힘 : 디자인과 효율의 적정 비율은, "특정 기준"을 중심으로 5.3 대 4.7이 아닐까 하네요, 여기서 5.3은 최대 5.7까지 올라갈 수 있고, "휴대폰" 이라는 기준에서 그 경우가 배터리 탈착이나 3.5인치 화면 등이 예라고 할 수 있겟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