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a Vertes looks to the future of medicine (from TED)
나는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DNA 구조를 해명하는 과정을 발견자인 제임스 왓슨이 매우 주관적인 관점에서 기록해 놓은 "이중나선"이란 책을 무척 좋아하고, 지금도 반복해 읽는다. 파인만의 "농담도 잘 하시네요!"가 내 작은 책장의 한 자리를 언제나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유도 같다. 이런 이야기들에는 흔치 않은 모험과 화자의 독특한 개성이 담겨 있다.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
에바 베르테스의 TED 토크에도 강연자의 개성과, 문제 해결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지적 모험이 가득 담겨 있다. 나는 이 강연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았다.
지적 모험이라는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들어보자. 19살 소녀 에바의 특출난 점은 그가 질문을 던질 줄 안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암은, 많은 경우 손상된 조직에서 발생한다. 음주로 손상된 간이나 흡연으로 손상된 폐에서 암이 발생하는 경우가 그렇다. 에바는 여기서 잠시 멈추어 서서 왜 그럴까, 하고 묻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답을 제시한다. 즉, 가설을 세운다. 그런데 에바의 가설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심오하고 비젼이 넘치는 것이다. 에바는 암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정의한다. 즉, 에바는 암을 인체의 자가 치료 과정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심오하고 아름답다. 나도 강연을 보면서 절로 감탄사를 내뿜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떤 개념이 심오하다거나 아름답다고 하는 것과 그것의 진리성은 별개다. 아마 에바의 가설도 그 명쾌함에서 오는 미적 외관을 끝까지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가설이 매력적이라는 것은 후속하는 사고와 연구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좋은 질문이란, 혹은 좋은 가설이란 생산적인 것이다.
에바는 하나의 질문이, 하나의 가설이, 하나의 해결이 다른 수 많은 질문들을 낳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연구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쏟아부어야 할 것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이 소녀는 자신이 터를 크게 잡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하, 19살 나이에 인생을 걸 연구 테마를 잡았다고 확신하다니!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열정일 것이다. 그리고 열정은 하나의 환경일 것이다. 에바라는 이름을 물려준 에바의 할머니는 헝가리 태생의 화학자였다고 한다. 에바는 혈연으로 연결된 동명의 여성 과학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가운데 의학 서적을 학생의 눈이 아닌 연구자의 눈으로 읽는 습관을 들였을 것이다. 또, 어린 나이에 의학계의 큰 상을 탐으로써 자신의 노력에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성공보다 더 성공적인 것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용케도, 암에 대해 연구하려거든 이러 저러한 학위를 따야 한다, 그러니 질문을 멈추고 차분히 교과서를 읽으라고 조언하는 세상에 밝은 어른들을 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열정을 지속시킬 수 있는 환경을 성공적으로 강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에바가 조성한 환경에는 우연적인 요소들도 많지만, 중요한 것은 에바가 그 우연적 요소들을 자신의 환경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에바의 강연을 들으면서 가장 놀라운 점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에바 스스로도 그 점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에바가 자신의 가족사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