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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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교 축제때 "대머리 여가수"라는 연극을 한다기에 친구들 따라 극장에 갔었다. 언제 대머리 가수가 등장할 것인지만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에게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참으로 참기 힘든 것이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극장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고 대머리 여가수는 결코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걸 확신한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열심히 준비한 배우들과 스탭들은 텅 비어 가는 객석에 결코 실망하지 않았으리라. 예술을 이해 못하는 대중이라는, 그들의 미래, 즉 그들의 잔혹한 현실을 미리 맛보며 의지를 단련할 계기로 삼았으리라. 

그리고 나는 이제야 이오네스코의 희곡 "대머리 여가수"를 읽게 되었다. 아, 그때 연극에 조예가 있는 친구가 있었더라면 저 연극을 보고나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소주병을 까게 되었을 것인가? 인류의 머리 위에 올라 서서 얼마나 많은 부조리를 찾아내며, 그것들을 얼마나 많이 비웃어 댔을 것인가?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리고 우리는 휴머니스트로서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랄리스트로 비-모랄에 대해 분개하는 것으로 양식을 삼고 스스로의 살아 있음을 확인할 뿐인 것이다. 아, 도대체 인간이란! 

그러나 인간이란 한계를 알아야 한다. 데카르트의 말대로 무한은 신에게 보류해 두고 논리의 난간에서는 인간의 유한성으로 신의 무한성을 측정할 수 없다는 명제를 들어 올리면 되는 것이다. 나의 한계는 인간의 한계이며 그것은 신의 무한한 능력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카르트는 잘 숨을 수 있었고 잘 살 수 있었다. 반면 한계를 알지 못했던 이오네스코의 그 여학생은 교수의 칼끝에서 피와 장기의 분출을 피할 수 없었다. 인간은 한계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 섬 안으로 피신한 인간이란 스스로에게 가련한 존재다. 대륙이 그의 꿈이라면 언제건 꿈이 현실에 침윤하여 알코올이 물에 섞여들듯 그렇게 섞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섞인 것은 더 이상 물이 아니다. 그는 그동안 잘 숨었고 잘 살았다. 이제 그의 삶에 궁극의 가치를 부여할, 그가 각고의 연구로 완성한 메시지를 공개하자. 그는 성인이 되고 인류는 구원받을 것이다. 

모쪼록 그대의 한계를 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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