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원리들
토마스 아퀴나스 지음, 김율 옮김 / 철학과현실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라틴어 대역으로 되어 있고 본문보다 긴 역자해제가 있다. 그러므로 역자 부분과 저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봄이 좋을 듯 하다.

역자 부분. 번역도 좋고 해제도 좋다. 특히 해제는, 마치 대학 강의실에 앉아 강의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본문의 압축된 서술을 풀어주고, 확장해 주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고, 저자가 범한 오류나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을 바로 잡아주고, 철학적인 또는 신학적 맥락을 환기시켜 주고 등등. 나는 이보다 좋은 해제를 읽어 본 적이 없다.

저자 부분. 실제 저자는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이지만 내용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해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굳이 둘의 사상을 변별하여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그냥 아리스토텔레스를 목적어로 이야기를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한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나도 그 정도의 아량은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보여준 신선함은 내가 기대했던 것의 최소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나마 마지막 제6장 정도만이 신선했던 것 같다.

본문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자연의 원리들은 곧 생성의 원리들을 말한다. 이는 생성의 가능성을 부정한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반박으로 구상된 것일 테다. 그러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기획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의 원리들은 단 하나의 관념, 즉 목적이라는 관념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을 전제하고서야 질료인이나 형상인 등도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바로 이 관념, 즉 자연에는 목적이 있다는 관념은 받아들이기 심히 곤란한 것이다. 우리의 철학자(나의 블로그에서 "우리의"라는 정관사는 스피노자의 것이다)가 에티카에서 거의 이성을 잃다시피 하면서 비판하는 것도 이러한 관념이다. -스피노자는 목적에 대한 관념을 철저히 거부했기 때문에 그의 우주에는 의지가 자리할 곳도 없게 된다.

암튼 상황이 이러하므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파르메니데스의 대화를 다음과 같이 그려 볼 수 있겠다.

파르메니데스: 젊은이, 내 비밀 하나 일러 주네만 우주에 목적 따위는 없다네.
아리스토텔레스: 장로님, 무슨 터무니없는 말씀이십니까? 목적이 없다면 생성도 운동도 있을 수 없습니다.
파르메니데스: 내 말이 바로 그것이라네.

전대의 거의 모든 철학자들에게 자연 철학은 하나의 무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 철학에서 실족하였다고 그의 철학 전체가 모래 아래로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와 그의 학파에 대한 탐구는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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