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Paperback)
Yasmina Reza / Faber & Faber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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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가 쓴 코메디. 입소문을 따라서 나도 읽어보았다.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어 상연되었고, 유튭에서 한국어판 연극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 


크게 보면 세 친구 사이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친구들 중 하나가 거금을 치르고 그림 하나를 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그림이 거의 단색의 한 화면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의 단초가 된다. 허영에 빠져 저런 쓰레기에 거금을 쓴 것인가? 


읽으면서 계속, 너무 프랑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히 규정하기도 어려운 애매한 뉘앙스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말싸움을 벽 뒤에서 듣고 있어야 하는 상황. 그 지리멸렬을. 그런 애매한 뉘앙스들의 뒤에 무엇이 놓여 있을까? 나는, 살인이 벌어지는 것으로, 아니면 그림을 파괴하는 것으로 결말이 나겠지 하며 작품을 읽었고, 작가는 많은 관객들이 이런 결말을 예상할 것을 짐작하고 결말을 살짝 비튼다. 물론 이런 비틈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 연극은 현대 회화에 대한 것도 아니고, 친구들 사이의 힘의 관계---푸코를 불러오든 헤겔을 불러오든---에 대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둘은 이 연극의 기술적 장치들에 불과하다. 현대 회화니 철학이니 하는 이런 요소들이 이 연극을 심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데 관심을 가진 나같은 사람을 낚기도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연극은 뉘앙스들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뉘앙스가 실체적 힘을 갖고 나타나는 모든 현상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가볍게, 음... 프랑스적 삶에 대한 자기 성찰 아닌가,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현대인들의 편집증적인 삶의 양태들에 대한 기술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나는 후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의 그 눈빛이 나를 절망으로 이끌었다. 그의 그 눈빛은 무엇이었을까? 경멸이었을까? 그가 그때 지었던 그 눈빛이 경멸의 눈빛이었는지 누가 확인해 줄 수 있을까? 혹 나의 피해망상의 결과는 아닐까? 그렇더라도 그런 눈빛에 정신적 고통을 겪고, 삶의 일부를 부정당할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런 눈빛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제도나 법이 필요하지 않는가? --- 아마 현대의 필연적 발명품 중 하나는 법적, 제도적으로 규율되기 힘든, 이런 무수한 뉘앙스의 공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다시금, 모던의 조건, 혹은 포스트모던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일런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어느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사건들은 곧잘 이념화된다. 아동인권조례의 폐기나 교사에 대한 일정한 면책 조항의 도입을 촉구하는 것 등은 그런 이념화의 시발로 보인다. 그러나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이 법이나 제도로 쉽게 규율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즉, 뉘앙스의 공간에서. 그것은 폭력이었을까? 그것은 낙인이었을까? 그것은 학대였을까? 그걸 가지고 규율을 어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사람들은 과연 진상 학부모였을까? 등등. 문제삼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지만, 일단 문제가 되면 그것은 결코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견고하고 완고한 실체가 되어 버린다. 물론 답은 없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조건짓는, 현대성의 한 양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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