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튭에서 목포 적산가옥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니 많이 나온다. 몇 개 봤는데 이 영상이 가장 아름답고 기억에 남는다)


최근 본 한국 뉴스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민주당 손혜원 의원의 투기 의혹을 보도한 SBS 뉴스였다. 어제 SBS 뉴스에서는 이해 충돌의 회피 원칙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예컨대, 손혜원이 정부에 게스트하우스 활성화 대책을 요구하면서(공익) 동시에 자신과 관계 있는 사람에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토록 했다면(사익) 이는 이해 충돌의 회피 원칙에 저촉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의문이 아주 그럼직한 가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구체적으로 이 사안을 검증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검증해야 할까? 손혜원이 요구한 대책과 그 게스트하우스의 개발, 운영 사이의 어떤 관계. 예컨대, 그것이 정책화됨으로써 손혜원 측이 게스트하우스를 구매하고, 리모델링하고, 홍보하고, 운영하고 하는 등등에 있어 어떤 직간접적 이익을 얻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 이익은 어느 정도인가? 꼭이 이익을 본 것은 없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다음 역시 검증 대상이 될 수 있다. 손혜원이 그 과정에서 의원 특권으로 접근 가능한 정보를 이용하였는가? 혹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였는가? 혹은 본인이 직접 구매, 운영하지 않고 제삼자를 내세운 점에 있어서 불법은 없었는가? 등등.


그런데 SBS의 보도에는 사실상 이 검증 부분이 없다. SBS는 이런 검증 절차를 수행하지 않았거나, 그 결과가 애초 가설과 부합하지 않자 이를 보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는 정말 심각한 문제다. 가설과 결론을 아무렇게나 뒤섞으면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왜 SBS는 이런 허술한 보도를 하였을까? 손혜원의 목포 구시가에 대한 구상은 도심재생 방식의 개발이다. 그런데 SBS의 모기업은 토건 기업이고 이런 기업은 재개발 방식의 개발로 먹고 살기 때문에 손혜원의 방식과는 이해가 배치된다. 그러므로 SBS 뉴스는 모기업의 이해에 상충되는 손혜원을 공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 이렇게 아주 그럼직한 가설 하나가 성립되었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가설이다. 그러나 SBS가 하는 방식대로라면 우리는 이 가설을 그대로 결론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SBS 뉴스는 모기업의 이해에 상충되는 손혜원을 공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라고. 그리고 해외 사례든 뭐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례들을 아무 것이나 가져다 앞 뒤로 배열해 두면 된다. 


우리는 어떤 논쟁에서든 승리할 수 있다. SBS가 이를 반박하기 위해 수 많은 증거를 들이민다고 해보자. 그래도 우리는 요지부동이다.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토건 기업을 모기업으로 하는 방송의 뉴스가 부동산 개발 관련 보도를 하는 것 자체가 이해 충돌의 회피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나? SBS 뉴스가 정말 진정성 있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SBS의 뉴스 부문을 없애든지, 아니면 모기업이 SBS를 운영하는 것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부질없는 논쟁들... 이런 부질없는 논쟁들이 온 세상에 꽉 차 있다. 피곤하고 싶기 때문일까?)


사실 이번 논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라 손혜원이 문화의 영역에서 그동안 해온 일들이었다. 재작년 한국에 갔을 때 서울 성북동에 있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성북동 심우장을 찾았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변소 냄새가 풍기고 이윽고 만해 선생의 자택이 나온다. 아직 서울에 이런 달동네스러운 골목이 남아 있다는 것에 놀랐다. 예를 들면 내가 태어난 서울 옥수동의 달동네는 재개발로 이제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작년 한국에 갔을 때는 김제의 이모 댁에 들렀는데 아파트 단지가 서 있었다. 또, 익산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역주변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 저런 아파트가 서지? 너른 땅에 마당 있는 집을 지을 수도 있을텐데... 물론 각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요즘의 한국에는 어떤 각성, 혹은 좀 더 중립적으로 말해서 어떤 새로운 관점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예컨대, 성북동 동사무소에서 본 한옥 짓기 학교 포스터. 그것을 굳이 전통의 발견이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발견이라고 해야 하리라.


구시가를 개발한다고 이명박 식으로 싹 다 밀고 아파트, 상가를 지어야 할까?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한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나전칠기같은 것은 박물관에나 들어가야 할 물건일까? 영국 사람들 동네에 한 두개씩 화랑이 있고 집집마다 벽에 그림이 한 두 점씩 걸려 있는 것처럼, 앞으로 한국의 집들 거실에 칠기들이 한 두 개씩 놓이게 되리라는 것은 아주 쉬운 예상일 것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피아노만큼이나 가야금, 거문고를 배우게 되리라는 것도. 창, 문 등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수성이 되살아나리라는 것도. 영국의 가든은 집 뒤에 숨어있다. 그래서 그 집의 가든이 어떤지는 그 집에 들어가 봐야만 알 수 있다. 영국 사람에게 집이란 그의 성이라는 말은 이런 폐쇄성을 의미한다. 반면 전통적인 한국의 마당은 집 앞에 있다. 마당을 거쳐야만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이런 마당의 개념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마당에 대한 이러한 감수성을 한국 사람들은 앞으로 더욱 자각하게 될 것이다. 런던의 브릭 레인이나 서울의 인사동도 특색있는 거리이기는 하다. 그러나 내 눈에는 둘 다 너무 상업화되어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관광객을 위한 거리같다는 느낌, 거리 자체가 자신의 컨텐츠를 생산하는 것을 멈추었다는 느낌. 목포 구시가의 개발에 대해서 손혜원이 한 이야기 중 내게 가장 큰 공명을 준 것은, 거기 직접 가서 살면서 카페를 하든 게스트하우스를 하든 하라, 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목포 구시가가 일차적으로 그곳의 주민들, 목포의 시민들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그렇지 않으면 또 하나의 상업지구가 되어 흔하디 흔한 관광 거리가 될 것이라는 뜻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야만 자체적인 콘텐츠 생산이 가능해진다.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고풍스러운 적산가옥들이 있고, 손혜원에 따르면 나전칠기 박물관이 올 것이고, 칠기 장인들이 공방을 낼 것이고, 카페, 찻집, 게스트하우스, 소극장, 작은 공연장 등등이 들어설 것이고... 한국은 콘텐츠가 매우 매우 풍부한 나라이기 때문에 이 정도 규모의 거리를 메우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이런 점들에 대해 대충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SBS의 난동을 계기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비젼을 가지고, 큰 규모에서 실행하고 있는 '부자'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너무도 놀랍고 흥분이 된다는 것이다. SBS가 이 사업에 대해 이렇듯 대대적인 홍보를 해주었으니 각종 콘텐츠를 가진 사람들이 목포를 정착지로 활동할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까 싶다. SBS 뉴스가 신뢰성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 것이 이 좋은 일의 댓가라니 거의 꿈만 같이 완벽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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