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비비씨에서 방영하는, 존 르 까레 원작의 6부작 "북치는 소녀" 완결편이 끝났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다 하여 방영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었는데, 나도 보면서 그 세련되고 섬세한 연출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서구와 아랍 문화에 문외한인 한국인 감독이 어떻게 저런 섬세한 연출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요즘 비비씨 드라마들이 하나같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찬욱의 이 작품을 더욱 신선하게 느낀 것일 수도 있겠다.


"북치는 소녀"는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을 소탕하려는 이스라엘 정보 기관, 그리고 거기에 휘말려 들어간 젊고 예쁜 영국인 연극 배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최대한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겠지만 이 작품이 친-이스라엘적인 것이라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반대의 입장에 서는 것은 이곳 영국에서는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최근 1, 2년간 영국 노동당 안에서 벌어진 가장 커다란 논란은 반-유대주의에 관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에 행하는 탄압을 비판해도 될까? 비판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스라엘 정부의 탄압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반-유대주의를 구성하거나, 그것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우스운 일이다. 이중으로 조소를 보낼 만 하다. 첫째, 영국이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천적인 기초자라는 점에서(즉,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근원적인 가해자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리고 둘째, 반-유대주의라는 금기는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 중에서 대표적으로) 영국이 그동안 저질러 온 반-인륜적인 행태들을 히틀러라는 절대악 뒤에 숨기려는 가련한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이런 인화성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게 껄끄러워 아예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삼국의 감독을 데려 오기로 한 것은 아닐까 하고... -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방영이 시작되고 나서 허겁지겁 책을 주문했는데, 책이 늦게 오기도 했고, 이야기가 굉장히 느리고 섬세하게 전개되어 후다닥 읽을 수 있는 성격의 책도 아닌지라 결국 초반부 밖에는 읽지 못했다. 여튼, 여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가 마치 책에서 튀어나온 듯 책에서 묘사된 인물 그대로여서 감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 혹은 이 책의 근원적인 문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더라. 즉, 젊은 영국 여자(즉, 서방 세계의 젊은이)가 강자 이스라엘 편에 서서 약자 팔레스타인 저항 조직을 파괴하려 한다는 것은, 아무리 많은 페이지를 동원해 그 동기를 구축하려 해도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는 결코 드물지 않겠지만...


존 르 까레는 스파이 소설이라는 대중 쟝르의 대가이다. 더하여 단순히 대중 소설 영역을 넘어서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 작가 중 하나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의 책들을 읽다보면 이러한 평가가 결코 헛말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대표작 중 하나랄 수 있는 "북치는 소녀"의 이런 근원적인 넌센스와 마주하게 되면, 이런 넌센스를 극복하는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뭐 그냥 재미로 읽는 대중 소설인데 뭘 더 바래, 재밌으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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