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시 불어오는 바람 사이로
잊혀져간 그 모습 찾으러 갔었네
부는 바람에다 속삭여도
슬픔으로 젖은 나의 두 눈빛

내 맘에 와닿는 외로움을
그대 모습으로 달래도보지만
이젠 너무 멀리 떠나버린
그대이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없네

바람결에 우는 내 사랑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고
이젠 내 맘 속에 추억만 남아
흐르는 저 세월에 잊혀져가네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 사이로
잊혀져간 그 모습 찾으러 갔었네
부는 바람에다 속삭여도
슬픔으로 젖은 너의 그 눈빛
 

김현식 사, 장기호 곡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23969445


 

 어제,오늘은 저녁을 먹고 산책 삼아 답사 삼아 축제장소인 사무실 근처 공원에 들러 잠시 시간을 보내다 집에 왔다. 겨울이라기엔 이르지만 가을은 끝물, 일찍 내려앉은 어둠에 인적 드문 작은 공원에서 담배 한 대 피며 하늘을 올려다보면 괜히 마음이 시리다. 바닥엔 낙엽, 홀쭉해진 나무들이 아직 떨구지 못하고 달고 있는 나뭇잎 사이로 바라다보는 하늘이 참 쓸쓸했다. 

 아침부터 다짜고짜 몇 차례씩이나 전화를 해대며 쌍욕을 남발하는 경상도 어디 산다는 아저씨도 어쩐지 외로워 그런 것 같고, 별 하는 일도 없으면서 의정활동비는 35%나 올려받아야겠다고 결의한 우리 동네 시의원들도 어쩐지 관심 좀 가져달라고 떼쓰는 것 같고,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찾아와 되도 않는 소리로 이것저것 간섭을 해대는 인도 사람 A씨도 여전히 외롭고 또 외로워 저러는구나 싶다.

 어제는 프랑스에서 55일째 투쟁 중이라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 혼자서 민망하고도 웃겼는데... 분신한 노동자만큼이나 열악한 환경과 어이없는 악덕 사장의 행태 같은 것들에 열받는 거랑 별개로, 반드시 이기고 돌아가겠다고 귀국 비행기표도 버렸다는 그분들의 막다른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거랑 별개로, 도대체 이 땅 노동자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나 하는 공분 같은 거랑 별개로, 그냥 눈물이 흘렀다. 누선을 자극할 아무거나 있다면 그 핑계로 막 퍼질러 앉아 울어버리고 싶었다.

 누군가 곁에 있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하고 어색한데, 누군가 아무도 없다는 것 역시 그리 마땅치는 않고 뭐 그런. 그냥 괜히 앓고 싶고 울적하고 싶고 떠돌고 싶고 주저앉고 싶고 뭐 그런. 잠깐 미쳐돌아가는 마음을 따라 오랜동안 입을 닫고 있는 선생님께 뜬금없는 인사를 남겨놓고, 뭐하는 거니 자문할 새도 없이 뻔뻔히 '등록'을 누르고 돌아섰다.

 며칠 전에 본 동백꽃 프로젝트에서 자주 클로즈업되었던 서럽도록 빠알간 동백, 툭툭 자살하듯 떨어져버린 꽃송이가 무시로 떠오르고. 팔자 좋게 보길도에 둥지를 틀고서는 유유자적 살아가는, 멀리 사는 어린 애인이 내려올 때면 유치하기 짝이 없도록 간질한 로맨스에 들뜨고 전 애인의 아내가 찾아와 발작하듯 전한 부고에는 복받치는 눈물을 아낌없이 쏟아내버리는 '동백아가씨'의 주인공. 참 사는 듯이 사는 것 같아 좀은 부럽기도 하였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라는 질문에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말했다는 서갑숙의 이야기를 전하며 호들갑을 떨어대는 가십을 읽으면서, 생전 관심도 없던 그녀의 영혼이 친구처럼 느껴지지를 않나. 살 때는 좀 사는 것 같이 살고 싶다 하면서도, 그래도 존재가 없으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나고. 별달리 기다리는 것도 없이 설레이는 것도 없이 이렇게 혼자 살다가 잠깐 핑 돌면 그냥 가는 건가 싶어 괜시리 허무하기도 하고.

 그래도 제사는 지내야지 싶어 한껏 마음을 맡기고 노래를 듣다보니, 아저씨 가신 나이가 딱 지금의 내 나이네. 너무 오래 산 거 아닌가, 돌봐야 할 게 뭐 그리 있나, 돌아봐야 할 건 또 뭐가 있나, 돌아버리면 또 어떻게 될까, 뭐 그런 구질구질하게 끊지도 못하는 생각들 사이를 어슬렁거린다. 세상이 모두 외로워서 미쳐돌아가는 듯이 보이는 건, 적당히 앓을 새도 없이 무참히 돌아가는 일들에 치인 엄살이 삐져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핑계 삼을, 이제는 세상에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어울리는, 마음에 자리잡은 사람이 있다는 게 참으로 고맙기도 하다.

 조만간 에덴동산에 들러 인사 전하겠다는 약속은 아무래도 지키지 못할 듯 싶다. 뭐, 잘 계시겠지만. 살다가 살다가, 내가 잘 못 계시겠으면 그때나 한 번 가야지. 기념은 기억으로, 인사는 마음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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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7-11-0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 타시는군요. ^^

waits 2007-11-03 02:01   좋아요 0 | URL
그런가봐요, 근데 정신없이 바쁘니 또 아무 생각 없어지기도..^^;;

드팀전 2007-11-01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앨범...제가 무척 좋아했던 음반입니다.전 이 음반을 들으면 봄밤이 설레였던 대학 1학년대로 돌아갑니다.텅빈 국철 역내에 서 있는 제 모습도.

waits 2007-11-03 02:03   좋아요 0 | URL
노래는 곧잘 어떤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이 노래들 마음에 담고 듣던 때를 지나, 한참 후 어느 날 드라마의 예고편에서 흘러나오는 걸 듣고 울컥했던 적이 있었답니다. 그때만 해도 몹시 사무쳐서 한 동안 정신 못차렸었는데...
노래와 시간, 참 힘이 세다는 생각도 드네요.
 



 

슬픔 가슴 미어지는 비애
사랑은 분노 철저한 증오
사랑은 통곡 피투성이 몸부림
일치를 향한 확연한 갈라섬 

사랑은 고통 참혹한 고통
사랑은 실천 구체적인 실천
사랑은 투쟁 쉼없이 가야할
노동자의 새하얀 길이네 

온 바다와 산과 들과 하늘이
들고 일어서 폭풍치고
번개 치며 포효하여 핏빛으로
새로이 나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은
고요에 빛나는 바다
햇살 쏟아지는 파란 하늘
 

박노해 시, 이원경 곡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23857552 

 



 주말의 일기예보를 듣지 못했다. 하늘이 좀 흐리기는 했지만 앞마당 의자에 앉아 이야기 나누며 시작하는 하루에 어울리게, 적당히 햇발이 내리는 오전. 지난 금요일, 실은 거의 포기했었는데 꽤나 극적으로 본회의에서 표결 끝에 부결 처리된 거주외국인지원조례 덕에 다들 한 짐 덜었다는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이제 딱 2주 앞으로 다가온 축제와 11월 중순 쯤으로 마감을 정해놓고는 너도 나도 다른 일에 치이느라 자꾸만 미뤄진 가이드북 작업에 집중하자고.

 하여 마침 이직 기간 중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기로 한 우리의 든든한 자원활동가 S가 그제 잠시 알바로 나섰던 나이지리아 통역 출장에서 돌아와 상근활동가마냥 출근 시간에 맞춰 당도했다. 도대체 상점을 찾을 수가 없어 도하에 스탑오버했을 때 겨우 샀다며 내미는 자상한 선물, 그야말로 잔잔한 감동까지 선사하며 씩 한 번 웃고마는 S덕에 아침부터 괜히 마음이 훈훈해졌다.

 하지만 닥친 일은 또 일이라... S와 함께 가이드북이며 축제며 이것저것 회의를 하고 간단히 저녁을 먹고 맥주도 한 잔 하고 헤어졌다. 지난 겨울 처음 만난 S는, 그 한참 전부터 이주단체에서 꽤 적극적으로 자원활동을 했던 친구라고 들었다. 사무실 다른 동료들과는 짧지 않은 인연인 그는, 본업과 별개로 기특할 정도의 열정으로 세상과 이주노동자에 대해 성심과 열심을 보이는 친구다. 상도동에서 부천 구석까지 분명 가깝지 않은 길일텐데 손길이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달려오는 것은 물론, 우리가 하는 일 하나하나에 상근활동가 못지 않은 관심과 고민을 마다않는 사람이다.

 함께 일할 식구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늘 첫번째로 떠오르는 친구, 보잘 것 없는 초라한 단체인데다 급여도 변변치 않으니 차마 대놓고 말을 할 수 없기도 하지만. 실은, 그의 속에 끓고 있는 열정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그런 의중을 보이지 않으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참느라 애쓰는 편이다. 한 번씩 사무실에 왔다 갈 때마다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과 뛰어들고 싶은 열망 사이에서 그가 얼마나 갈등하고 고민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를 보내고 샘과 함께 집으로 걸어오는 길, 속내를 서로 감추지 않으며 한참 이야기를 해댔다. 지금은 돈 벌어야되니까 나중에 늙으면 같이 일하자고 하자, 그래도 혹시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세상에서 함께 일하자고 하면 안될까? 분신한 노동자의 이야기에, 여전히 진행중인 이랜드 불매에, 좀은 급하게 가입한 민중연대 덕에 테이블에 놓인 이런저런 서명과 모금에, 하나같이 진지하고 성실하게 관심을 보이며 기꺼이 함께 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친구.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만도 고맙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게 그러고보면 참 간단치가 않다.

 그리고 지난 여름 외노협 수련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이주판을 떠나 교회로 간다는 다른 단체의 상근자 송별회 자리에서 느꼈던 진한 아쉬움이 떠올랐다. 이 달이면 고작 일 년이니 나는 여전히 새파란 초짜지만, 몇 달 되지 않는 활동 속에서 처음으로 만난 친구 같았던 그가 참 좋았다. 실은 전혀 친하달 수 없는 관계였지만... 지난하고 징글징글했던 여수에서의, 소소하지만 근본적인 분열들에 분노와 회의를 감추지 못하고 쏟아낸 눈물을 받아준 게 그 친구이기도 했고, 어쩌면 그 덕에 작은 공부 모임을 꾸려 동대문과 용인과 부천을 오가며 정리되지 않은 고민이나마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선 활동가의 혼란이 좀은 전의와 각성을 동반하는 것이었다면, 나름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활동가에게 수년 째 반복되는 의미없는 분열의 답습을 목도하는 일은 무기력과 냉철한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누구에게든 편안함을 선사하는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가진 그 친구가 잔뜩 술에 취해 털어놓은 회복할 수 없는 절망감에 나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가시밭길 떠나 비단길 가는 게 아닌 바에야 잡을 수도 없는 게 그를 보내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말 통하고 편한 동료를 발견하자마자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아쉽기 그지 없었지만, 그건 그저 내 사정일 뿐이었으니까.

 그 여름 날 한밤의 술자리에서, 실은 민망하리만큼 과거의 향수에 도취되어 쩌렁거리며 투쟁가를 부르기까지 하는 사람들을 보며 적잖은 이물감을 느끼기도 했던 그 난망한 자리에서, 그가 문득 이 노래를 불렀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노래의 가사가, 당황스러울만큼 또렷이 기억이 났다. 이 노래를 듣고 부르던 날들의, 하릴없이 비장하고 애틋했던 도취된 심사가 떠올라 좀은 열적은 채로, 하지만 단지 수사의 힘만이 아닌 어떤 날 것이 주는 의연한 진실의 깨달음 같은 것들이 울컥 복받치는 그런 밤이었다.

 이따금 찾아와도 좋지만 동지가 되어 꿈꾸는 세상을 함께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욕심도 사랑이고, 흔들리고 부딪치면서 마음 나누고 눈물 뿌리며 함꼐 가고 싶었던 사람의 뒷모습을 떠올리는 것도 사랑인지 모르겠다. 함께 싸우던 동지의 불타는 시신을 보며 미치겠다를 연발하는 것도,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끝내 버티지 못해 기어이 제 몸에 불 붙여 발화하는 것도 어쩌면 사랑인지 모르겠다. 사랑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적 없지만, 오늘은 그런 게 사랑인가보다. 배설하듯 주절거려봤자 곧 잊어버리고 세상속에 파묻히겠지만. 눈물 나게 극진하고 눈물 나게 아프고, 실은 눈물 나게 가짜여도. 그래도 가끔은,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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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7-10-2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 나게 가짜면, 그게 진짜인거예요. 나 이 노래 참 자주 들었던 날들이 있었어요. 그 곳에서 둥지를 튼 지 벌써 1년이 지나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waits 2007-10-30 03:24   좋아요 0 | URL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데 에로이카님께는 항상 좋은 말만 듣는 것 같아요, 뭐든 흥분 먼저 하는 습성을 달래가면서 탈선하지 않고 길게 가는 방향을 고민하는 중이랍니다. 참 어렵다고 느끼지만요.
에로이카님도 자주 들었던 노래였다니 반갑네요. 전 한동안 이 노래 다시 들으면서,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불퉁했던 박노해 시인 생각이 났더랬지요. 늘 반성이 필요해요. 물론 이따금 따뜻한 격려도, 감사해요. ^^
 

 

 

 

 어린 소년이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늙어가는 게 인생이라는데 
 그댄 그 고운 청춘의 노래 채 부르기 전에  
 다신 못 올 곳으로 푸른 계절에 떠났지 
 미친 세상 모진 바람 안고   

 그대 떠났어도 세월은 멈출 생각 없이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흘러만 갔고 
 갈라진 건 갈라진 채로 비틀어진 건 
 더 비틀어진 채로 여기까지 왔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이   

 그대 너무 서러워마요  
 어차피 인생이 그런 걸 
 떠나간 사람 지나간 일일랑 그저
 세월에 묻혀가는 걸  
 

 작사,곡 정윤경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17707483

 

 누군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죽어가도 사람들은 별로 관심하지 않는 세상이다, 나 역시. '열사'라는 말이 오히려 그를 가두는 명명이 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외침과 죽음이 세상에 공명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양심을 긁어대던 시절이 더 살만한 건 아니었을까... 어줍잖은 생각을 해본다.

 문득 떠올랐는데, 그러니까 오늘이... 그런 날이다. 명동성당에서의 할복 투신, 이라는 뉴스를 어렸을 적 나도 봤었다. 그런 죽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해사한 얼굴의 청년, 망월동에 가면 나는 제일 먼저 그를 찾아갔었다. 

 그 많은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도 정말 일이겠다는, 싱거운 생각을 예전에 '열사력'을 보면서 한 적이 있다. 한때는 새해가 되면 정신 차리고 살아보자고 그 달력을 주문한 적도 있었지만, 책상 위에 그들을 모셔두고 상기하며 삶에 열심을 내는 척하는 일 역시 참으로 고역이었다. 그 가식, 그 익숙해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

 열사라면, '열사가 전사에게'의 비장함과 치열함 혹은 '벗이여 새벽이 온다' 같은 처연함과 비통함을 먼저 떠올렸지만... 어쩌면 이제 열사는 이렇게나 담담하게, '단지 네가 먼저 갔을 뿐'이라고 달래며 기억해야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아는 척 하기에는 너무나 도저하고 처절한 희생이지만 그나마 내놓고 수상하던 시절이어서 다행입니다, 싶은 쓸쓸한 감상. 

 전태일 열사와 허세욱씨의 차이는 무엇일까. 허세욱씨 죽음 이후의 집회에서 느꼈던 이상한 어그러짐과 웅성거림 같은 것이 떠오른다. 평소 그를 알던 사람들은 발언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했지만, 그저 '그가 분신했고 죽었다'는 사실의 확인 속에서 나는 솔직히 좀 무감했고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는 2008년의 열사력에 새로이 이름을 올릴 것이다.

 오래된 죽음일수록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일상적이고 습관적으로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조차 이렇게 잊혀져도 되는 걸까. 사는 것도 기억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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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7-05-15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 하나 더 열어놓고 음악 들으며 페이퍼 읽었어요.
수많은 열사들 중의 한 명이 아닌, 요셉이라는 세례명의
청년 조성만 열사를 구체적으로 추모해 봅니다.
1988년 5월 15일, 세상에나, 벌써 세월이 그만큼 흘렀군요.
어른들은 살만 찌는데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너는 떠났구나
라는 고은 시인이 바치는 시도 있네요.
노래 참 좋아요.

2007-05-15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7-05-16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맞아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고 들었었는데,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홀로 얼마나 번민하고 고통에 몸을 떨었을까요. 고은 시인의 시구, 저도 이미 살만 찌는 어른이 되어버린 터라... 아프네요. 이렇게라도 자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님, 그러셨군요. 예민하고 순결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어렸을 때라 실은 얼굴만 또렷이 기억할 뿐이지만요. 그 문집, 궁금하네요.
그리고 또 궁금했답니다. 이따금 주인 없는 방을 서성이기도 했는데... 어쩐지, 그 침묵의 고요를 깨뜨리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저는 4월 초에 부천으로 돌아왔지요. 보름쯤은 무기력에 시달리며 꼬장을 부리다가, 얼마 전부터 정신을 차리는 중이예요. ^^
 

 




 

어깨가 쳐진 그대여 
고개를 숙인 그대여 
그렇게 괴로워해도  
그대는 소중한 사람 
세상의 여러 사람들   
저마다 잘난 사람들
    
날마다 씨에프 속엔   
모두가 행복한 사람   
  

하지만 눈을 들어봐요  
그대는 이 우주 안에 
누구와도 바꿀 수는 없는 
그대만의 세상 있잖아 
비교는 바보들의 놀이   
최선은 우리의 권리 
    
결과는 하느님의 뜻   
감사만이 행복의 열쇠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워만 왔지 
남보다 잘났어야만 
칭찬을 받았었나봐  
공부는 재밌는 건데   
왜 인지 힘겨워 했고 
    
인생은 즐거운 건데   
왜 인지 어렵게 됐지

이제는 눈을 들어봐요  
그대는 이 우주 안에 
누구와도 바꿀 수는 없는 
그대만의 세상 있잖아
 
비교는 바보들의 놀이  
최선은 우리의 권리 
    
결과는 하느님의 뜻   
감사만이 행복의 열쇠

 

작사,곡 최성원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13833665

 

 뭐랄까, 의욕과 진전의 불균형이 불감당인 나날이다. 화-수 총회에 참가하느라 공주에를 다녀왔고, 몇 년 전부터 자료나 글로만 접했던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심란하고 실망스럽고 한편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됐다. 아직은 잘 알지 못하는 '판'에 대해 들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실제로 마주친 사람들 그 속에서 나의 정리되지 않는 생각 그러나 버릇처럼 남발하는 표현 사이에서 중심을 잃어버렸다는 느낌도 든다.

 3주 정도 흘렀나보다. 베트남 식당 아저씨가 어수룩해 뵈는 청년 하나를 데리고 좀 머뭇거리며 도서관에 들어섰다. 좀 도와달라고, 자기는 아는 것도 없고 답답해서, 동사무소에 다녀오는 길인데 여기 그런 거 하는 데 아니냐고. 11월에 부천으로 전입해왔다는 청년은 정신지체 3급의 장애인, 그의 아내는 2월 초 출산을 앞둔 베트남 이주여성이다. 장애인종합복지관이니 동사무소니 보건소니 병원이니 알아보고 쫓아다니며 이제 그런 대로, 출산 준비에 대한 걱정은 한숨 돌렸다. 

 솔직히 말하면, 대체 어쩌자고 결혼은 했을까 멋 모르고 시집 온 베트남 처녀는 얼마나 상심했을까 하는 생각에 며칠은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집으로 찾아가 만난 그녀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해맑은 웃음을 담은 얼굴이었다. 80년, 82년생인 어린(?) 부부는 대책도 가진 것도 없었지만 괜히 불안하고 답답한 건 지켜보는 사람들일 뿐, 그들은 앞에 놓인 막막함들... 생계도 출산도 육아도 그저 자연의 순리인 양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금요일에 도서관에 있으면 자원활동하는 어린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게 된다. 학교 다닐 때부터 소위 후배 '키우는' 일에는 재주도 욕심도 없었던 나는, (물론 운동가도 아니지만) 참 아는 것도 논리도 없다. 그런 주제에 불만은 또 많아서 무슨 이야기든 시작하면 주로 비판이다보니 스스로 당황스러울 때가 많은데,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온갖 비판을 일삼는 내 입의 결론이 늘 말도 안 되는 허탈한 결론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빨리 죽어야지, 그러니까 다 없어져야지, 그러니까 다 사람 나름이라니까.

 어느 날 문득 의식을 하고보니 온 세상이 '행복'을 부르짖고 있어서였는지, '행복'이라는 말 앞에서는 늘 적잖이 이물감을 느낀다. 기를 쓰고 행복해져야 한다는 빵빵한 주장에 바람 구멍이라도 하나 날리고 싶은 심술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나는 행복론으로 무장한 많은 것들에 대해 거부감을 감출 수 없다. '행복'을 말하기에는 차마 꿈꿀 수도 없는 사람이 너무 많아 미안하다,고 멋지게 말하고 싶지만 실은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순전하게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 고 말하는 게 어쩐지 멋적고 부끄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가끔 지쳤다 싶을 때 간지럽게 떠오르는 노래다. 세상만사 대체로 맘에 안 드는 삐딱한 마음, 허나 실은 따스함이나 다정함 따위를 내심 갈구하고 있음을 '들키지 않고' 즐길 수 있을 만큼의 희박한 대중성이 이 노래의 미덕이라고 위악어린 변명을 혼자 늘어놓는다. 흥얼거리며 따라부르다보면 마치 '전향'이라도 한 듯 난감과 민망이 교차하곤 하는 '세상은 아름다워라' 류의 가사도 실은 은근히 위안이 된다. 참 무기력한 노래라고 밀쳐뒀던 게 무색하다. 날이 추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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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7-01-27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랜만에 들으니 좋네요.

waits 2007-01-30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 참 따뜻하죠? 좋으시다니, 저도 좋아요! ^^
 

 



 

하늘이 자꾸만 낮아지는 날
다 지나버린 날들뿐
그렇게 모두다 사랑해봤지만
우리들 이렇게 붙잡을 수는 없어
힘들게 힘들게 울음을 참지만
네 앞에서 참지 못한 건
우리들 함께 지내오던 날들이 내겐
가장 그립고 소중하기 때문야
햇빛 비추는 날
다시 올 수 있을까
언젠지 모르는 그 날들을
또 기다려 봐

 

작사, 곡 유희열


 
 

 요즘 부천 거리 곳곳에서 꽃핀을 꽂은 아저씨를 마주친다. 스탠딩은 영 체질이 아니지만 그래도 부천인데 싶어 살금살금 알아봤더니 역시나 엄두가 나지 않는 비용. 아저씨의 공연을 비용 대비 효율로 차마 환산할 수는 없지만 암튼 그랬다. 다행히, 아쉬워 할 사이도 없이 단 한 번 공연이 있는 바로 그 날이 우리 단체의 새해 첫 운영위원회로 잡혔다. 어차피 못 갈 거 기왕이면 어긋난 일정을 핑계 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이 난 김에 아저씨 미니홈피에를 오랜만에 가봤다. 공연 중이라선지 찾는 이도 많고 방명록도 만원이다. 올라와있는 사진들이랑 아저씨 글이랑 구경을 하다가... 그러다가 문득 아주아주 옛날 노래가 떠올라 다시 찾아들었는데, 차암 새롭다. 그래, 예전의 아저씨는 이렇게 노래하던 사람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가창력 논란이야 늘 따라다니지만;; 그래도 난 다듬어지지 않은 이 목소리가 정말 좋았다. 

 주말이 아닐 때는 그 좁은 극장 몇 안 되는 객석마저 훤히 비어 오히려 민망했던, 작은 공연이 이어지던 어느 날. 마침 나오기로 한 게스트는 펑크를 냈고, '달빛의 노래'로 네 번째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대상을 받았으며 '햇빛 비추는 날'을 만든 어쩌고 하는 아저씨의 급작스런 소개에 이어, 내 등 뒤에서 수런거리던 연인 중 한 명이 당황스레 불려나갔다. 솔직히 말하면 거기 있던 사람 중 나밖에는 존재를 모를 것 같은 '새파란' 유희열은,여린 소년같은 감성과 재미난 소녀같은 수다를 겸비한 참 귀여운 청년이었다.

 나중까지도 아저씨는 이 노래를 공연에서 자주 부르셨다. 형편이 나아진 후에는 단순하고 정갈한 편곡이 꽤나 대곡스럽게 바뀌었고, '언젠지 모르는 그 날들을' 기다리는 대목에서는 원곡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이도 저도 좋지만, 정말 오랜만에 다시 들으니 많은 날들 긴 세월이 흘렀다는 격세지감이 더 간절하고 그립다. 미니홈피 배경음악을 이 노래로 바꿨더니, 독일에 있는 친구에게 바로 '반응'이 왔다. 가끔은 이런 공감의 반응 때문에 추억은 더 힘이 세지는 것도 같다. 이 노래를 부를 때의 아저씨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한참 어렸다. 아, 이상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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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7-01-22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해도 정답은 같을 것 같아요.^^;

엔리꼬 2007-01-2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토이 1집을 너무 좋아해서인지, 김장훈씨가 쎄게 부르는 것이 좀 어색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싫다는 건 아니고요.. 그나저나 라디오스타에서 김장훈씨가 좀 악역(?)으로 나오셨던데, 아무도 하기 힘든 악역연기 참 용기가 대단합니다..

waits 2007-01-22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음.... 짧은 한 문장이 너무나 심오하여...^^;;

서림님, 토이 1집 좋아하시는군요. '하나'스럽게 정겹고 예쁜 음반이었던 것 같아요. 아저씨와 유희열은, 음악적인 색깔보다 사람의 인연 덕에 묘한 조화가 나오는 게 아닐까 전 생각한답니다. 김장훈'씨'라고 호칭을 붙여주시니 괜히 제가 감사하네요. ㅎㅎ

푸하 2007-01-22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답은 아저씨는 항상 아저씨라는 말씀이에요.^^;

바라 2007-01-22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유희열을 닮았다는 얘길 들을 때가 있었는데;;(퍽) 근데 제가 스스로 볼 땐 잘 모르겠더라구요; 지금의 유희열은 아저씨지만 예전에 보셨을 땐 풋풋한 청년이었나 보네요 ㅎㅎ

waits 2007-01-23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아하. 그 말씀이시군요. 제가 좀 천진한 마음이 되면 댓글의 의미를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을 듯...^^
(연락하려다 까먹었는데, 오늘 도서관 잘 부탁해요.^^)

바라님, 훌륭한 비쥬얼을 지니셨다고 해야할런지. 유희열에, 자진납세까지 하시는 걸 보니 겸허한 품성까지 지니신 모양이군요.^^ 무려 14년 전이니, 아주 풋풋하다못해 파릇파릇했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