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내가 애초에 진동 흡수용으로이것과 저것 사이에 끼워진 부품이 아닐까 하는것이다. 그러니까 이 의자의 중심축에 있는 스프링이나 댐퍼 같은 것. 그래서 남들보다 더 빨리 닳고 지치고 더 빨리 교체해야 하는 부품이 아닐까하는 것. 언젠가 내가 팀장과의 면담이 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자 팀장은 뜻밖의 말을 했다."스프링이나 댐퍼라고 해서 더 빨리 교체해야되고 그런 건 아닌데. 그게 생각보다 잘 안 닳거든.애초에 좀 강한 소재를 고르니까."애초에 좀 강한 소재라……, 위안이 되는 말일수도 있지만 그 말이 내 의심을 덜어준 건 아니었다. 다만 팀장은 자신이 스프링이나 댐퍼가 아니라고 믿는 것 같아서, 그래서 마치 다 그런 시절이있어요.‘ 하는 것 같아서 좀 웃겼다.
"어쩌면 행복은 이런 건지도 모른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지금과는 다른 일을 하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 할 것 같은기분이 들지 않는 것. 어쩌면 스위스의 지금 상황은 그저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 쉽게 해주는 것이라서 행복해지기도 더 쉬운것 같다."
마지막 나무가 잘릴 때, 마지막 강이 비워질 때,마지막 물고기가 잡힐 때,그제야 비로소 인간은 돈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리라.
"카르마 씨, 행복하십니까?""제 삶을 되돌아보면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행복해질 수 있었던 건,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좀 이상한 말 같다. 미국에서는 높은 기대치가 엔진이자 연료 역할을 한다. 우리의 꿈을 뒤에서 밀어주는 힘이 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도 힘이 되는 것이다. "제 생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가 말한다. "전 그렇게 기어올라야 할 산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삶 그 자체가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만족스러운 하루를 살았다면, 하루를 잘 살아냈다면, 저녁에 저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도 괜찮았어.""좋지 않은 날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해냈다 해도, 그것은 우리 자신의 머릿속에서 공연되는 연극과 같습니다. 우리 자신은 아주 중요한 일을해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느 누구의 삶도 바꿔놓지 못했으니까요."
제러드는 땅에서 지열이 만들어낸 황금처럼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커피나 마시러오라며 남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특별한 화제가 없는데도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애정 담긴 목소리로 자기 나라를 ‘얼음 덩어리‘라고 부르는 모습도 좋아한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국회의원 세 명의 이름을 금방 외울 수 있다는 점도 좋아한다. 상쾌한 겨울날 발밑에 밟히는 눈이 천국에서만든 스티로폼처럼 사박사박 소리를 내는 것도 좋아한다. 12월에 시내 중심부의 쇼핑가에 늘어서는 성가대도 좋아한다. 강하고 눈부신그들의 목소리가 밤을 돌려놓는다. 다섯 살짜리 아이들이 새까만에둠 속에서 혼자 학교까지 걸어가도 안전하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와중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의 마술 같고 초자연적인 느낌도 좋아한다. 차가 눈 속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게 됐을때 항상 누군가 차를 멈추고 도와준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비행기가케플라비크의 국제공항에 내려앉으면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그저집에 돌아온 게 기뻐서 박수를 치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하늘 같은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오만하지 않은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물론 어둠도 좋아한다. 그는 어둠을 그냥 견디는 수준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한다.
현대의 사회과학은 햇볕에 탄 펭귄의 말이 옳다는 걸 확인해준다.심리학자 노먼 브래드번은 《심리적 복지의 구조라는 책에서 행복과 불행이 우리 생각과는 달리 반대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과불행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아예 다른 동전이라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행복한 사람이 가끔 발작처럼 불행을 느끼는 것도 가능하고불행한 사람이 커다란 기쁨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곳 아이슬란드에서는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조차 가능한 것 같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유전적 요인이니 공동체적 유대감이니 상대적 소득이니 하는 것들을 모두 빼버리면, 행복도 선택이 된다. 쉬운선택도 아니고, 항상 바람직한 선택도 아니지만 선택인 건 맞다.잔혹한 기후와 철저한 고립 앞에서 아이슬란드인들은 절망 때문에 술독에 빠져 사는 삶을 쉽사리 선택할 수도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그랬다. 하지만 이 바이킹의 강인한 아들딸들은 정오의 하늘에서꿈쩍도 하지 않는 검은 어둠 속을 들여다보며 다른 삶을 선택했다.행복하게 술독에 빠지는 삶. 내가 보기에 그건 현명한 선택이다. 사실 어둠 속에서 달리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작은 용기가 모여서 큰일을 만드는 거지." 박병옥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작은 용기라고 할 수 없어요. 이런 말을 하는 데도 몇 번을 망설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미 세상을 너무나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없어요. 그러니 어떻게 용기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겠어요.그건 사람들마다 천차만별인데, 용기는 셀 수도 없고,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고, 무게를 잴 수도 없어요. 각자 다른저울을 쓰니까. 그러니까 그냥, 똑같은 용기를 낸 거죠. 그모든 사람들이."
저는 지난 여름에 생에 최초의 발레공연을 보았습니다. 공연에 목마른 코로나 시국에 멀지 않은 곳에서 유니버셜 발레단의 공연이 있다하니 놓칠 수가 없었지요. 무대에서 먼 자리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무대가 한눈에 보여 모든 무용수들의 모습을 한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주연무용수의 무대도 아름답기는 하였지만 백조들의 군무가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몸이 저절로 앞으로 기울고 박수에 힘이 들어가고 눈물이 글썽일 정도였습니다. 한편 그들의 아름다움 뒤에 숨어 있을 시간과 노력이 상상되기도 하였지요.공연에 다녀와서 남편에게 발레의 굉장함과 무용수들의 노력에 대한 감탄을 쏟아내자 남편은 시큰둥하게도 ˝그 사람들은 그게 직업이니까 그렇지. 당신도 하루 8시간씩 일하고 당신이 일하는 분야에서는 전문가잖아˝ 라고 하더군요. 맥빠지는 소리이기도 하고 저를 향한 응원의 말이기도 하였습니다. 발레리나처럼 제가 일한 성과를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며 박수를 받지는 않지만 저 역시 제 일을 위해 많은 공부를 하였고 이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많은 두려움과 시험이 있었으나 모두 거쳐내며 지금의 제가 되었으니까요. 많은 사람이 그럴테지요.자신의 무대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든 사람을 격려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생각해봐, 남자 부장이랑 남자 과장이 싸우면 부장과 과장의 싸움이라고 하지, 남자의 적은 남자‘라고 안 해. 남자들은 매번 자기들끼리 전쟁하고, 대통령 경선하고, 자리다툼, 밥그릇 싸움하잖아? 여야 간 갈등이나 노사 갈등이라고하지, 누가 남자들끼리 싸운다고 해? 남자들이 더 심하게 싸우지 않나? 자기들이 가진 파이가 크니까. 그런데 여자들 간에 갈등이 있으면 공적인 지위가 아니라 성별인 여성으로 환원해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해. 그러니까 정말 이건 여성혐오, 약자혐오인 거야. 여자는 다 같다는 거지. 페미니즘은인간을 남녀로 구분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잖아? 왜 남자는 인간이고, 여자는 여자야? 결국 여자의 적은 여자‘, 이런말을 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해. 여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승격되어야 이런 말이 없어져.